(5) ‘투명인간’ 취급 받는 4단계 판정자들

2016.10.11

4단계 피해 판정자라고 해서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드러난 전형적인 특징적 폐 손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전문가들의 판정일 뿐이다. 폐 이외 질환이나 증상, 아직 우리가 잘 파악하지 못한 증상과 질환이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살핌도,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귀중한 한 생명이 9월 24일 또 스러졌다. 교사 출신의 마흔 살 김연숙씨는 일곱 살과 아홉 살 난 두 자녀를 남긴 채 한 맺힌 생을 마감했다. 교사로 일하면서 둘째아이를 가진 뒤 2010년 가을부터 가습기 살균제 제품인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이듬해인 2011년 봄까지 썼다. 2011년 호흡곤란으로 병원을 찾았다. 심각한 폐 손상이 생긴 것을 알아차렸으나 너무 늦었다. 자신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임을 철석같이 믿고 피해신고를 해 2014년 정부의 2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조사에 응했다. 하지만 2015년 봄 환경부로부터 ‘가능성 거의 없음’이라는 4단계 판정을 받았다. 그녀는 당시 정부로부터 판정 이유에 대해 이해할 만한 그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4단계는 피해 판정단계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로, 정부로부터 아무런 피해구제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뿐만 아니라 건강상태가 악화됐는지, 사망했는지와 같은 건강모니터링조차 받지 못한다. 3단계 판정자는 정부 피해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것은 4단계 판정자와 같지만 그래도 건강상태와 사망 여부 등의 모니터링 대상이다. 4단계 판정자들은 한마디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서는 유령과 같은 존재 또는 투명인간이다. 정부가 유령 취급을 하니 언론도 4단계 판정자들의 생사를 알 길이 없고, 그래서 그들은 더욱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더욱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정부의 모니터링 대상에도 빠져
그녀는 자신처럼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돼 중증 폐질환에 걸리고도 정부의 피해구제 대상이 되지 못한 이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전치 못한 몸임에도 휠체어를 타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지난 7월 21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정부가 돌보지 않는 3·4등급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하루빨리 구제해주길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소하기도 했다. 그녀가 세상에 드러낸 마지막 모습이자 세상을 향한 마지막 외침이었다. 그 뒤 김씨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폐 이식을 받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가 할퀸 폐의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결국 폐 이식은 해보지도 못한 채 숨지고 말았다. 폐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그 합병증으로 결핵 감염, 폐렴이 양쪽 폐로 급격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폐 이식을 받고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보려고 발버둥쳤던 그녀에게 우리 사회는 그 어떤 따뜻한 보살핌도 주지 못했다.

6월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애경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한 '4급판정' 피해자 가족 김미란씨(마이크를 든 여성 바로 왼쪽)./이석우 기자

6월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애경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한 '4급판정' 피해자 가족 김미란씨(마이크를 든 여성 바로 왼쪽)./이석우 기자

고통스런 투병 끝에 숨지고 나서야 그녀의 죽음은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위원인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보도자료를 내 비로소 알려졌다. 김씨는 그래도 언론에 사연이 한 줄이라도 보도됐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모르는 4단계 피해자는 뒤늦게 알려진 사례만 해도 여럿 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지 모른다. 4단계 피해 판정자라고 해서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드러난 전형적인 특징적 폐 손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전문가들의 판정일 뿐이다. 폐 이외 질환이나 증상, 아직 우리가 잘 파악하지 못한 증상과 질환이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3단계 판정자까지만 건강 모니터링을 하고 4단계는 유령 취급을 하는 것에 대해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피해신고 당사자와 가족들은 물론이고 환경시민단체, 국회 등이 이들에 대해서도 모니터링할 것을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마이동풍으로 귀를 닫고 있다.

사망 소식 알려지는 것도 극소수
김씨의 사망 소식을 ‘가습기 살균제 항의행동’ 밴드에 9월 27일 올린 김미란씨는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며 아침부터 슬픔에 잠겼다. 그녀의 아버지도 4단계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1년 전에 숨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밴드에 거의 매일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소식을 올려 밴드 가입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어떤 날에는 2~3건씩 올리기도 한다. 그녀의 일과는 중학교에 다니는 딸을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를 한 뒤 인터넷과 국정조사위원들의 페이스북 등 SNS를 팔로잉 해 1000명 가까이 되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가입한 밴드에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것이다. 아버지가 2015년 10월 오랜 투병 끝에 숨진 뒤 옥시레킷벤키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올봄부터 본격적으로 피해자와 그 가족 모임에 참여해 시위와 기자회견 등에 열성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아버지 김명천씨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경기도 안양에서 살았다. 부부는 각 방을 썼다. 2007년 집 부근 롯데마트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인 애경 가습기메이트를 사다가 사용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란씨도 애경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두 달 사용하다 숨이 막히는 등 호흡기에 이상을 느껴 더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사용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고, 세균도 잘 없애준다는데…”라며 한 귀로 흘려보냈다.

최근 롯데마트에 구매 조회를 해 영수증 의무보관기간인 5년이 지났음에도 협조를 받아 2007년 1월 27일 아버지가 산 가습기 살균제 구매 영수증을 찾을 수 있었다. 김씨는 옥시 제품도 구매해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홈플러스에서는 5년이 지난 구매 영수증에 대해서는 없다며 주지 않아 이를 증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얼마 후부터 결막염과 잦은 감기, 비염, 부비동염(축농증)으로 고생을 했다. 미란씨가 요청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진료기록 자료에 이런 내용들이 나와 있었다. 가벼운 증상이라 아버지는 의심 없이 계속해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2010년 4월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등산을 하다가 숨이 심하게 차는 증상을 느꼈다. 비극의 신호였다. 처음에는 동네병원에서 감기로 진단받았다. 큰 병원으로 가자고 아내가 졸랐지만 그해 6월 받을 예정인 정기건강검진을 기다렸다. 안양샘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결과 엑스레이에서 폐 섬유화가 의심되는 영상이 발견됐다. 병원에서 3차병원으로 가보라고 해 고대구로병원을 찾았다. 특발성간질성폐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건강하던 시절의 아버지 김명천씨와 다정하게 사진을 찍은 김미란씨./김미란씨 제공

건강하던 시절의 아버지 김명천씨와 다정하게 사진을 찍은 김미란씨./김미란씨 제공

아버지의 병세가 나빠지자 미란씨는 10년 넘게 살던 충남 논산을 떠나 친정집 인근으로 이사 왔다. 아웃도어 매장에 취직해 병간호를 하는 등 효심을 다하기 위해 무던 애를 썼다. 하지만 하늘은 이런 정성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자식들에게 휴대폰에 이미 해놓은 유언을 보여주었다. 미란씨는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아웃도어 매장 일까지 그만두었다.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미란씨가 울먹였다. 잠시 전화 인터뷰가 끊어졌다. 나와 미란씨가 얼굴을 마주한 것이 10여 차례이고, 함께 밥 먹은 것도 몇 차례나 되었기에, 또 지난 8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던 가습기 살균제 책 <빼앗긴 숨> 출판기념회 때는 책 판매에도 힘을 써주었기에 그녀가 울먹거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혀 질문을 더는 던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순여덟, 요 근래 기준으로 보면 농촌에선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할 나이의 아버지를 잃은 것도 정말 서러운데 4단계 판정을 받았으니, 조용한 성격의 미란씨 마음에는 남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한 응어리가 많은 것이 분명하다.

4단계 판정을 받은 가정 가운데 우승하·이혜옥 부부는 매우 특이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우씨는 변호사다. 그것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편에서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해기업과 민사소송을 벌이는 변호사다. 아내 이씨는 서울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오랫동안 일했던 의료인이다. 이씨는 지난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헌신적인 간호로 SBS가 선정하는 ‘2015년 한 해를 빛낸 의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의사나 간호사이면서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가정은 내가 직접 가정환경조사를 했거나 알고 있는 사례만도 제법 되기 때문에 이씨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리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이씨는 2010년 10월 친정집에 있으면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했다. 둘째아이 산후조리를 위해 두 살 된 큰아이를 함께 데리고 친정으로 가 있을 때였다. 엄마와 두 자녀와 한 방을 사용했다. 가습기 청소를 잘 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남편이 듣고 가습기 살균제를 사주어 사용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지 보름 남짓 지나 가습기에서 가장 가까이서 잠잤던 큰아이가 기침을 심하게 해댔다. 감기려니 여겼다. 열이 심하게 났다. 간호사라 응급처치 요령을 잘 알고 있었다. 열을 내려주는 응급처방을 했다. 하지만 이는 그때뿐이었다. 밤만 되면 열이 심하게 났다. 결국 자신이 근무하는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큰아이는 목에서 피가 나기도 하고 하도 심하게 기침을 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7월 21일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왼쪽)의 주선으로 국회 정론관에서 3, 4단계 판정자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김연숙씨의 생전 마지막 모습./하태경 의원실 제공

7월 21일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왼쪽)의 주선으로 국회 정론관에서 3, 4단계 판정자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김연숙씨의 생전 마지막 모습./하태경 의원실 제공

지금도 겨울 내내 감기증상에 시달려
병원에서는 둘째와 첫째가 떨어져 지내도록 했다. 감염병을 의심한 것이다. 큰아이를 입원시켜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일주일 만에 좋아졌다.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급성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피검사와 소변검사 등을 받았지만 특별히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첫째는 겨울 내내 감기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비염도 잘 낫지를 않는다. 호흡기가 약하다. 또래보다 키가 작고 몸무게도 적게 나간다. 아버지와 엄마 키가 173㎝와 168㎝로, 엄마의 경우 키가 큰 편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열심히 수영 등 운동을 시키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 5월 원인미상 폐질환으로, 2011년 8월 말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난 역학조사 결과, 2011년 11월 동물독성실험 결과로 사실상 드러났다. 그때마다 언론들이 제법 눈에 띄게 크게 다루어주었다. 하지만 당시 이씨는 이런 사실을 잘 몰랐다고 한다. 과거 중환자실에 근무할 때 산모들에게서 원인 모를 질환으로 죽어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두 자녀를 키우느라 너무나 바빠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2년 10월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과 관련이 있음을 알았다. 1차 신고 때 피해접수를 했지만 4단계 통보를 받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임흥규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로서는 폐 이외 질환에 대해서는 판정을 하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재심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씨는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도 다행이라 여긴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또 많은 가정들이 고통을 겪었고 고통을 겪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특히 2014~2015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이를 자신의 일처럼 자세하게 알고 있다. 피해자 모임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강찬호씨 아내와도 잘 아는 사이다. 서울대병원에서 같이 근무하는 간호사이면서 피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잃을 뻔했던 강씨 가정의 사연을 잘 안다.

현재까지 정부는 1·2차 피해신고자와 3차 신고자 일부를 대상으로 피해 판정을 했다. 4단계 판정자들은 3단계보다 훨씬 많다. 이들은 어찌 보면 전문가(판정위원회)한테서 ‘증상이나 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관련 없음’이라는 낙인을 찍힌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어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도 않고 피해신청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노골적으로, 또는 은근하게 드러내며 적대시하는 이들도 있다. 피해자와 일반 국민, 언론 등한테서도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4단계 판정자 가운데 분명 완벽하지 않은 잣대와 판정에 의한 억울한 희생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4단계 판정자는 아직 미완성의 잣대에 의한 결과라는 점을 헤아린다면 조금이라도 이들에게 보내는 따가운 시선을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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