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창작 노블컬

2016.10.04

뮤지컬은 예술의 ‘십자로(crossroad)’와 같다는 말이 있다. 다양한 소재를 빌려와 무대용 콘텐츠로 재가공할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노블컬이 전형적인 경우다. 뮤지컬의 원작이 소설이라는 의미의 용어다.

<도리안 그레이>는 새로운 한국산 창작 노블컬이다. 바로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 소설을 무대용 콘텐츠로 재가공한 경우다.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그는 극작가이자 소설가 그리고 시인이다. 특히, 그의 문학적 명성은 고딕풍의 멜로드라마이자 그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인 1891년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의해 완성됐다고 할 수 있는데, 책의 서문에서 “책에는 도덕적인 것도 부도덕적인 것도 없다. 그저 잘 썼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문제다”라고 말한 주장이 발표됐을 때 세간의 논쟁과 비난의 표적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다.

<도리안 그레이> 1막 8장, 너를 보낸다, 최재웅 / 씨제스컬쳐

<도리안 그레이> 1막 8장, 너를 보낸다, 최재웅 / 씨제스컬쳐

지극히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악행을 일삼는 도리안 그레이의 이중성은 초상화 속 자신은 늙고 추하게 변해가지만 정작 본인은 여전히 젊고 아름답다는 환상적인 설정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다양한 파생상품의 등장을 가져왔다. 그 중에는 오락성 짙은 판타지 영화도 있고, 서스펜스 연극이나 괴기담으로 꾸민 경우도 있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것도 국내 창작 뮤지컬보다 10여년 빠른 2008년 매튜 본에 의한 댄스 뮤지컬로 선보인 적이 있다. 댄스 뮤지컬은 원작 소설보다 매튜 본에 의해 해체와 재구성이 된 이야기 - 현대 패션 산업을 배경으로 너무나도 아름답게 생긴 남자 모델 도리안 그레이가 겉모습과 달리 추잡하고 더러운 패션계의 뒷모습을 경험한다는 - 로 꾸며져 각광을 받았다. 비교하자면, 창작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댄스 뮤지컬보다 원작 소설에 가까운 형태와 내용으로 꾸며진, 비교적 원작에 충실한 노블컬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도리안 그레이> 1막 1장, Beautiful World / 씨제스컬쳐

<도리안 그레이> 1막 1장, Beautiful World / 씨제스컬쳐

이지나 연출, 김문정 작곡, 조용신 극본 등 국내 뮤지컬계의 스타급 제작진의 의기투합이 더해지다보니 작품은 외견상으로도 일반적이지 않은 수준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관습적이거나 틀에 박힌 극 전개가 아니라 실험적인 이미지의 활용이나 파격과 일탈의 시도가 도드라지는데, 예를 들자면 체코에서 촬영해 온 것으로 알려진 여러 흑백톤의 영상이미지를 활용한 무대의 비주얼이 그렇다. 스테이지에서 노래하는 배우의 모습을 다시 공연장 뒤쪽으로 투사된 영상과 같이 보여주며 마치 쇼 프로그램이나 콘서트의 장면을 방불케 하는 이미지를 선보인다. 다른 창작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던 시도로, 영상매체에 익숙한 요즘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무대의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해내는 재미있고 뒷맛이 길게 남는 여운을 느끼게 해 준다.

요즘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뮤지컬 배우인 김준수가 도리안 그레이로 나오고, 그의 주변인물인 화가 베질로는 최재웅이, 도리안을 탐구하는 학자 헨리 역으로는 박은태가 등장한다. 이미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흥행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동방신기 시절 춤추고 노래하던 ‘시아준수’를 좋아한 관객이라면 이 작품의 만족도는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별나지만 독특하고, 특이하지만 대중적인 환상을 지닌 작품이라 매우 이색적이다. 무대라서 허락되는 일탈과 판타지를 꿈꾼다면 놓치지 말기 바란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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