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초미세먼지 시대, 토템이 된 공기청정기

2016.05.31

정말로 공기청정기는 믿을 수 있는 것들일까? 내가 산 공기청정기는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숨을 쉬는 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일종의 토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2015년은 전국 단위의 미세먼지 주의보가 시작된 첫해였고, 열두 번의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다. 공기청정기는 대박을 쳤다. 작년 한 해에만 전년 대비 150% 가까이 판매량이 증가했고, 2016년에는 시장 규모가 1조원으로 늘어났다. 환경 재앙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인 블루 오션이다. 전국 미세먼지 배출 원인의 40.4%가 다름 아닌 제조업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공장 굴뚝과 공기청정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 초미세먼지는 병 주고 약 주는 ‘녹색 자본주의’의 한 단면이다.

초미세먼지는 ‘정보’이기도 하다. 대기 오염도를 알리는 통합대기정보 서비스 이용도 2015년 이후 순식간에 대중화되었다. 보이지 않고 냄새를 맡을 수 없는 미세먼지의 세계 역시 시각정보로 변역된다. 그날의 대기상태가 파란색, 녹색, 주황색, 붉은색 중에서 무엇에 해당하느냐에 따라 마스크를 비롯한 소지품 목록을 정하고 옥외활동의 시간과 동선이 조정된다. 공공정보라고는 하지만 대중의 활동을 쥐락펴락하는 강력한 명령체계이기도 하다. 건강을 살피는 사람 누구라도 이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으나, 정보체계와 전달 내용의 신뢰성, 신속성, 지속가능성에 대한 요구는 대단히 높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 모든 사회적 기대에 철저하게 부응해야 한다. 공중보건과 경제 문제가 상충하더라도 공공에 우선하는 조정자 구실을 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역량을 총동원해도 한반도를 뒤덮은 초미세먼지의 창궐을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미세먼지’는 공기역학적 지름이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인 대기 중에 떠도는 고체나 액체의 작은 입자상 물질이면서, 지구 공간에 거대하게 분포되어 있어서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관념들을 왜곡하는 ‘거대객체(Hyper object)’이기도 하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미국대사관 직원이 트위터로 발신하는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정보. 2012년 베이징에서 생긴 초미세먼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정보는 매시간 바뀐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미국대사관 직원이 트위터로 발신하는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정보. 2012년 베이징에서 생긴 초미세먼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정보는 매시간 바뀐다.

한반도를 뒤덮은 미세먼지의 창궐
근대국가 시스템은 이런 종류의 괴물을 다루는 방법을 모른다. 미세먼지의 개별 입자는 머리카락의 30분의 1 크기밖에 되지 않지만, 분포도는 동아시아 전체를 뒤덮을 만큼 광활하다. 게다가 이것들이 확산하는 과정은 인과 연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인간 인지능력으로는 쫓을 수 없는 스케일이다. 따라서 초미세먼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국적 단위를 넘어 전 지구적인 협치를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것은 국가의 탄생에 버금가는 세계사적 도전이 될 것이다. 근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본격적인 도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도전에 의욕적인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현실은 비루하기 짝이 없고 시대의 한계는 명확하다. 환경 재앙은 분명히 매일 벌어지고 있다. 초미세먼지도 어디에나 있다. 그런 소식은 텔레비전에서 뉴스로 접했고 일상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긴 하다. 그런데 별 감이 오지 않는다. 콘크리트 큐브에 갇혀 모니터 화면으로 세상을 기웃거리는 현대인은 거대객체의 존재감을 감당하기는커녕 무사유로 일관하는 편을 택한다. 내가 머무르는 장소의 실내 공기만 청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그밖에 세계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다. 내가 소유한 장소가 내가 책임져야 할 세상의 대기다.

공기청정기가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사용면적은 현대인이 자신을 가둔 생활방식과 존재감의 반경에 비례한다. 이런 식의 대응으로는 미세먼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일상은 언제까지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대로라면 공기청정기는 현대인의 외부화된 허파꽈리가 될 것이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 매달 돈을 쓰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가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뉴스 미디어 역시 거대객체인 초미세먼지를 장사 밑천으로 삼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공기청정기가 녹색 자본주의의 한 단면이라면, 뉴스를 통해 증폭 확산하는 공포는 재난 자본주의의 전형이다. 시청자를 자기 채널에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해야 한다. 물론 초미세먼지의 심각성은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을 현혹하는 거짓말이 아니다. 실체가 있는 위협일 뿐만 아니라 쉽게 바뀌지 않는 엄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뉴스 미디어가 절실히 요구하는 공포의 요건이기도 하다. 1년 내내 온종일 벌어지는 진짜 재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시대의 뉴스가 언제 끝날지 모를 냉전의 현실에 기생했다면, 오늘날의 뉴스는 경제위기와 환경 문제에 매달려 연명하고 있는 형편이다.

헤파필터(HEPA Filter)란 공기 중의 미세한 입자를 제거하는 고성능 필터의 일종이다. 이때 헤파(HEPA)는 ‘고효율 미립자 공기 필터(High Efficiency Particulate Air Filter)’의 줄임말이다. 미국 원자력위원회(US AEC·U.S. Atomic Energy Commission)의 정화 기준으로는 0.3㎛(미크론) 크기 이상의 입자를 99.97% 제거할 수 있으면 헤파필터로 인정한다. / 위키피디아

헤파필터(HEPA Filter)란 공기 중의 미세한 입자를 제거하는 고성능 필터의 일종이다. 이때 헤파(HEPA)는 ‘고효율 미립자 공기 필터(High Efficiency Particulate Air Filter)’의 줄임말이다. 미국 원자력위원회(US AEC·U.S. Atomic Energy Commission)의 정화 기준으로는 0.3㎛(미크론) 크기 이상의 입자를 99.97% 제거할 수 있으면 헤파필터로 인정한다. / 위키피디아

초미세먼지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과정이 트위터가 한창 인기를 끌었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중국 주재 미국대사관 직원이 2012년에 트위터 계정 @BeijingAir를 통해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발신하면서 이 문제는 세계적 이슈로 부상했다. 한국 언론에서도 2012년에서 201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중국발 초미세먼지 문제를 보도했다. 이 시기는 한반도 대기에서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급격히 짙어진 때이기도 했다. 당시 보도에서는 중국에서 날아온 초미세먼지가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라고 주장했는데, 중국 정부가 반론을 제기하면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앞으로도 ‘초미세먼지’를 둘러싼 정보는 수명이 긴 유행이 될 것이다. 이 유행이 보장하는 흥행은 결국 자본으로 창출된다. 5조원 규모의 전 세계 공기청정기 시장도 미디어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두려움이 소비자가 제품을 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니즈를 형성한다. 이 시장이 앞으로 더 성장하려면 더 많은 사람이 숨 쉬는 일에 공포와 불안을 느껴야 한다.

숨 쉬는 일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
미디어에 의해 유포되는 ‘초미세먼지’라는 대중서사는 웬만한 공포영화 줄거리 못지않게 살벌하다. 우선 초미세먼지는 ‘PM2.5’라고 표기한다. 총알처럼 입자 크기로 이름을 나눠 부른다. P는 particulate(미립자 상태), M은 matter(물질)의 머리글자다. 한국에서 채취된 초미세먼지는 황산암모늄과 질산암모늄의 질량이 가장 크다고 한다. 두 물질의 구성 비율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겨울에는 37%, 여름에는 76%까지 높아진다. 인체에 흡수되면 강한 산성을 띠기 때문에 건강을 해친다.

초미세먼지는 지름 10㎛ 이상의 황사 미세먼지보다 위험하다. 10㎛ 이상이면 어쩌다가 기관에 들어왔어도 기침이나 가래와 함께 체외로 배출되지만, 초미세먼지는 이게 안 된다.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이물질은 점막의 점액과 섬모운동을 통해 걸러진다. 기관에는 섬모로 불리는 가는 실 같은 털이 나 있는데, 이물질이 들어오면 섬모가 움직여서 이물질을 밖으로 밀어낸다. 점막의 점액도 외부에서 이물질이 들어오면 기침이나 가래의 형태로 이물질과 함께 몸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공기역학적 지름이 10㎛보다 작은 물질은 섬모 사이를 통과해 폐에 이르게 된다. 폐에 도달한 뒤에는 폐포에 부딪혀 조직을 망가뜨리고, 다른 장기에까지 들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 몸에는 구멍과 주름이 무수히 많다. 털구멍과 땀샘뿐만 아니라 폐·장·혈관에는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는 구멍이 있다. 초미세먼지는 이런 구멍으로 들어가거나 혈관을 막을 수 있다.

초미세먼지의 입자 크기가 작을수록 연마력도 강해진다. 크기가 작으면 물체에 부딪히는 면적이 커진다. 쪼개면 쪼갤수록 부피는 작아지지만 모서리는 늘어나는 원리다. 깨지면 전체 겉넓이가 커져서 그만큼 물체에 닿는 부분이 많고, 초미세먼지가 몸속을 흘러다니면서 작은 상처를 낸다. 각종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대기오염과 초미세먼지의 영향을 따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초미세먼지를 둘러싼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다름 아닌 정보 부족이다. 한국의 경우, 초미세먼지 배출량에 대한 인벤토리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2차 입자 생성에 대한 연구도 대단히 부족한 상태다. 엄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초미세먼지의 원인으로 중국만 탓할 수도 없게 되었다.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에어코리아. 전국의 대기현황정보를 얻을 수 있다. / https://www.airkorea.or.kr/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에어코리아. 전국의 대기현황정보를 얻을 수 있다. / https://www.airkorea.or.kr/

공기청정기가 근본해결책이 될까
공포와 불안은 무지를 먹고 자라는 법이다. 소리도 냄새도 없이 인체에 들어와 심각한 상처를 입히는 위험요소가 PM2.5라는데, 알려진 내용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상황에서 의지할 거라고는 공기청정기뿐인 형편이다. 공기 장사꾼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악용할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체로서의 초미세먼지와 미디어가 실어 나르는 대중서사 혹은 마케팅 언어가 된 ‘초미세먼지’를 각각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10㎛ 크기의 미세먼지도 끔찍한 재앙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점점 더 작은 크기의 입자를 경계하게 되면서, 10㎛급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한 위험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상대적 차이가 새로운 모델의 공기청정기를 구매할 동기로 작동한다.

미세먼지 PM2.5는 1990년대 후반에 미국이 미세먼지 PM10을 대기환경기준에 포함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은 2007년 무렵부터 PM2.5 문제를 주목했고, 2009년에 대기환경기준이 설정됐다. 한국은 2011년 3월 29일 환경정책 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대기환경 기준 신설과 전국 단위의 미세먼지주의보를 작년부터 시행했다.

이보다 앞서 공기청정기 업계에서는 각국 정부 기준보다 높은 수준의 정화 능력을 갖춘 제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2.5㎛ 크기의 초미세먼지를 정화하는 능력은 한물간 구모델도 할 수 있는 기본 기능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정말로 이 제품은 믿을 수 있는 것들일까? 내가 산 공기청정기는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숨을 쉬는 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일종의 토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시장에 출시된 공기청정기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헤파 필터(High Efficiency Particulate Air filter) 제품은 0.3㎛ 크기의 입자까지 걸러낼 정도로 성능이 우수하다. 하지만 공기청정기를 이용해서 실내공기를 수시로 정화하는 노력만으로는 초미세먼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시대가 작동되는 삶의 방식 전체를 총체적으로 재편해야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초미세먼지에 대한 우리나라의 국가 기준 농도는 24시간 평균 농도를 기준으로 중국보다 3배나 높고, WHO 기준과 비교해도 무려 4배 차이가 난다. 연평균 농도도 2배 차이가 난다. 오염도가 아니라 대기환경 기준이 이런 수준이다. 서울의 초미세먼지 오염 수준은 오늘이라도 ‘재난지대’나 ‘긴급대피지역’으로 진단한다고 해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환경관리 능력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번 옥시 사태에서 보여준 우리 정부의 작태만 해도 무사안일과 무책임의 극치였다. 실내공기의 안정성을 관리·감독하는 일조차 제대로 못 했다. 이런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공기청정기는 토템이 되고 있다.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자꾸만 의심하게 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안도감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2010년대의 유사 신앙이다. 어쩌면 우리는 변화의 시작조차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런 식의 기조라면 산업적 솔루션을 되풀이하는 총체적 경제학의 논리로 생태학은 전락하게 될 것이다. 대자연과 건강, 웰빙을 걸고넘어지는 권력에 모든 것이 허용되는 통제시스템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죽은 마르크스가 이 시대의 공기를 마시고 깨어난다면, ‘미세먼지’라는 유령이 전 지구를 배회하고 있다고 탄식하지 않을까. 우리 시대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

<임태훈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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