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란 단어마저도 악용하는 시대

2016.05.10

내용은 없고 포장만 화려한 껍데기 정치, 가치와 철학보다 공허한 슬로건만 앞세우는 말장난 정치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단어와 개념은 속절없이 길을 잃고 헤맨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부의 대표 슬로건이었던 ‘녹색성장’은 꽤나 괜찮은 개념이었다. 환경 보호와 경제 발전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가지 가치의 대립구조를 혁파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보다 진화된 패러다임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아주 매력적인 용어였다. 문제는 녹색성장을 단지 정치적 슬로건이 아닌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심지어 철학마저도 이명박 정부에는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대통령 임기 내내 건설업체 CEO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한답시고 고작 벌인 일이라는 것이 4대강 사업이었고, 그 결과는 잘 알다시피 녹조가 둥둥 떠다니는 죽어버린 강이었다. 녹색의 녹조만 남겨둔 채 성장은 멈췄다. 그리고 녹색성장이란 멋진 슬로건도 4대강처럼 죽어버렸다.

더이상 두근거리지 않는 ‘새 정치’
박근혜 정부가 내걸었던 ‘창조경제’도 제대로만 잘 했다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좋은 개념이었다. 처음 이 말이 등장했을 때 생소한 개념을 둘러싸고 그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실체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온갖 해석이 분분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대통령은 물론이요 정부의 고위급 관료들 입에서조차도 끝내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 창조경제라는 말은 곧바로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만들어 쓴 공허한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공유경제와 제4차 산업혁명이 세계적으로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창조경제란 말은 때는 잘 만났으나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린 비운의 개념이라 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8일 오후 전주 완산구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조현상 효성그룹 부사장(왼쪽)으로부터 탄소소재 분야 성공사례 설명을 듣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8일 오후 전주 완산구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조현상 효성그룹 부사장(왼쪽)으로부터 탄소소재 분야 성공사례 설명을 듣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지난 대선 정국에서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 낸 ‘새정치’란 말도 마찬가지다. 정치 불신과 정치 혐오가 갈수록 팽배해지면서 누구나 정치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생각을 갖게 되었을 바로 그 즈음이었다. 혜성같이 정계 입문을 선언한 안철수가 들고 나온 새정치란 간결한 키워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막연한 말이지만 그래도 안철수라면 틀림없이 기성의 정치와는 전혀 다른 정녕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보여 주리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지지도가 자신에게 훨씬 못 미쳤던 박원순에게 흔쾌히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했던 안철수가 아니었던가. 사람들은 이런 것이 바로 새정치라며 안철수에게 열광했다. 하지만 박근혜에게 창조경제가 그랬듯이 안철수 역시 새정치의 구체적인 실체를 보여주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20대 총선에서 교섭단체 구성이라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지만 국민의당이 새정치의 산실이 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새정치의 결과는 새로운 정치도 새로운 인물도 아닌 그저 새로운 제3당의 국회 입성일 뿐이었다. 심지어 안철수 본인조차도 이제 가장 많이 입에 담는 단어는 ‘새정치’가 아니라 ‘캐스팅보트’이다. 더 이상 새정치란 말은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지 못한다.

보통명사로 흔히 사용되던 개념마저 정치적 혹은 정파적 목적에 의해 채택되는 순간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자유’, ‘애국’ 같은 단어들이 대표적이다. 자유는 민주사회의 보편적 가치이다. 특히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정상적인 민주사회라면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가치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우파들의 전유물로 사용 범위가 협소해졌다. 상당수의 우파 시민단체들이 자기 조직의 명칭에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들 자유라는 이름을 건 우파 단체들이 가장 열성적으로 나서는 일은 바로 자신들과 이념과 신념을 달리 하는 집단의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시키려는 활동이다.

2009년 12월 2일 대구시 달성군 낙동강 둔치에서 열린 낙동강살리기 희망선포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상징하는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지역 인사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기자협회

2009년 12월 2일 대구시 달성군 낙동강 둔치에서 열린 낙동강살리기 희망선포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을 상징하는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지역 인사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기자협회

우파 단체의 전유물이 된 자유·애국
‘애국’이란 단어도 지금은 우파 단체들의 전유물이다. 사실 1980년대만 해도 ‘애국’은 학생 운동권에서 즐겨 쓰던 말이었다. 1986년 건대 사태의 주동 세력의 명칭이 ‘애국학생투쟁연합’이었고, 이듬해인 1987년에는 ‘애국학생회’라는 학생 운동 조직이 공안당국에 의해 검거된 사건도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1980년대에 ‘애국’을 표방했던 학생 운동 조직이 민족해방 계열, 즉 주사파였는데, 지금 ‘애국’을 표방하는 우파 단체들은 한결같이 ‘종북 척결’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80년대 좌파에게 애국은 반미였고, 2000년대 우파에게 애국은 반북이다. 하나의 보통명사가 정파적 입장에 따라 이렇게 완전히 상반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요즘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적 단어는 ‘어버이’이다. 그동안 청와대가 지시하고, 국정원이 지휘하고, 전경련이 지원했다는 어버이연합이란 단체 때문이다. 애초에 사회단체 명칭에 버젓이 ‘어버이’란 말을 붙인 것부터가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사회단체라면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나 목적을 명칭에 내세우는 것이 상식인데, 생뚱맞게 ‘어버이’라는 호칭을 전면에 내세웠으니 말이다. 엄마부대라는 이름의 또 다른 우파 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단체가 대한민국의 모든 어버이 혹은 엄마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혹시라도 자신들은 그렇게 생각했다면 대단한 오만과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됐건 존경과 존중의 대상이어야 할 ‘어버이’라는 단어는 어버이연합 때문에 졸지에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이미 어버이연합이란 작명에 맞불을 놓는 의미를 띤 효녀연합과 자식연합이란 단체가 만들어져 있고, 급기야 최근엔 우리는 어버이연합 같은 부모를 두지 않았다며 후레자식연대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좋은 단어나 개념이라도 정치적 수식어로 활용되는 순간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탈색되고 마는 것이 한국 사회의 독특한 특징이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내용은 없고 포장만 화려한 껍데기 정치, 가치와 철학보다 공허한 슬로건만 앞세우는 말장난 정치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단어와 개념은 속절없이 길을 잃고 헤맨다. 환경을 파괴시킨 ‘녹색성장’, 실체를 알 수 없는 ‘창조경제’, 새로울 게 하나도 없는 ‘새정치’,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들만의 ‘자유’, 국민을 편 가르는 자의적인 ‘애국’, 그리고 진짜 어버이를 욕보이는 ‘어버이’처럼 얄팍한 언어유희의 혹세무민 정치도 그만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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