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치솟는 주연, 돈 못 받는 단역

최근 방송가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소식은 드라마 제작사의 출연료 미지급 소식이었습니다. 최근 방송을 마친 JTBC의 주말극 <송곳>의 제작사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 측이 배우들에 대한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주연배우 지현우의 부상으로 촬영이 지연되자, 스태프와 단역배우들은 지연된 날짜의 임금과 출연료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제작사는 다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각각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호에 <송곳>이 외국계 대형마트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해고하려는 사측의 의도와 이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라고 전해드린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을 소재로 하고 있는 드라마에서 정작 비정규직으로 현장에 매진하고 있는 스태프의 임금과 단역배우들의 출연료를 주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방송계의 아이러니함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송곳> 말고도 tvN <일리있는 사랑>도 출연료 미지급 사태를 겪었습니다. <일리있는 사랑>은 종방 이후 6개월이 지난 8월까지 출연료를 정산받지 못했습니다. 방송사 tvN 측은 제작비를 다 지급했다는 입장을 냈으며, 그 때문에 홍역을 치렀습니다. 지난 7월 한국연기자노동조합이 MBC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을 통해 공개한 방송사별 출연료 미지급 현황에서도 2009년부터 제작된 총 9편의 드라마에서 지급되지 못한 출연료의 총액은 26억2400만원으로 집계됐습니다. 한국연기자노동조합은 2013년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 3사에서 지급하지 못한 출연료 규모가 43억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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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류열풍과 드라마 산업의 발전 때문에 드라마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때 회당 7000만~8000만원 정도 하던 드라마 한 회 제작비는 최근엔 회당 2억원을 넘는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물론 다양한 촬영장비의 발달과 해외를 비롯한 로케이션 촬영, 사운드 믹싱(재배열 작업)과 색보정, 컴퓨터그래픽 등 후반작업의 비용도 늘어 이 상황은 일견 타당한 것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드라마 제작비 상승의 1등 공신은 바로 주연 배우들의 몸값입니다. 특급 한류스타로 불리는 배우들은 한 회 평균 9000만원에서 1억원을 호가하는 몸값을 받습니다. 제작비의 거의 절반 수준인 거죠. 하지만 한류스타를 이렇게라도 고가에 섭외하지 않으면 드라마 외주제작사 입장에서는 방송사의 편성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인기 배우를 입도선매하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결국 외주제작사는 출연료를 단역까지 다 주고 스태프 임금 등을 주고나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 적자는 어떻게 메우느냐, 바로 간접광고 PPL(Product Placement)로 충당합니다. 제작사들은 기업들의 제품을 드라마에 노출시키는 대가로 제작비를 충당합니다. 광고처럼 보이지 않게 제품을 노출시키는 방법이 드라마 촬영의 관건입니다. 결국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생겨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무더기 출연료 미지급 사태로 결말지어진 셈이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많지 않아 보입니다. 일단 한국에는 드라마가 너무 많습니다. 이에 따라 제작사의 수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소수의 스타 배우들을 잡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집니다. 회당 70분을 넘는 방송시간 역시 제작비 상승의 주요 원인입니다. 드라마 인기가 높아질수록 이러한 그림자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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