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이야기> 일본판 ‘국가권력 횡포와 백남기 농민’

2015.12.15

“정말 국가 권력이라는 것은 무섭네요” 향년 22세였던 한 청년의 유서에 적힌 말이다. 산노미야 후미오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신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 투쟁 5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의학전문대학원 데이트 폭력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의 행동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불씨는 우리들의 앎이었다. 4시간 동안의 감금 폭행 상황을 담은 녹음과 녹취록이 일부 공개되면서 공중의 분노가 실로 폭발했던 것이다. 피해자 보호에 미온적이던 학교 측은 이어진 사회적 압력에 결국 사건 발생 후 8개월여 만에 가해자 남성의 제적을 결정했다. 우리가 문제를 알고 행동에 나서는 것은 이처럼 큰 힘을 이룬다.

그런데 눈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앎과 행동의 힘이 이렇게 약해 보일 수가 없다. 그 방향에 있는 것은 국가의 문제다. 국정원의 대선 부정선거 문제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여러 문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알려질 만큼 알려졌음에도 그렇다. 고 성완종 전 한나라당 의원이 목숨을 바쳐가며 폭로한 집권여당 인사들의 정치자금 수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 흔하디 흔한 총리 낙마가 생명과 바꾼 폭로에 값할 리 만무하다. 역사 속에 이 외에도 수두룩하게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가장 가까운 사례로 얼마 전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뇌출혈로 의식불명 상태에 처한 백남기 농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분과 그분을 구하러 뛰어든 분들을 겨냥해 계속 쏟아지던 거센 물줄기를 기억한다. 하지만 영상이 그렇게 많이 조회됐고 각계의 성토가 이어졌음에도, 국가는 사과 한마디 없다. 도리어 저항하는 시민사회를 복면 쓴 테러리스트 취급할 뿐이다.

만화 <우리마을 이야기>는 일본의 신나리타공항 건설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에 짓밟힌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 길찾기 제공

만화 <우리마을 이야기>는 일본의 신나리타공항 건설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에 짓밟힌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 길찾기 제공

공항은 개항했지만 50년째 지루한 싸움
“가장 인간답게 살려고 생각하는 인간이 왜 비인간적으로 대접 받는 건가요. 정말 국가권력이라는 것은 무섭네요. 살아보려는 농부들의 삶을 빼앗고 짓뭉개니까.” 병상의 백남기 농민을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말이지만, 사실 이 말은 거의 50년 전 일본어로 쓰여졌다. 그것도 향년 22세였던 한 청년의 유서에 적힌 말이다. 산노미야 후미오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여러 절차적 문제 속에 강행되었던 신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투쟁 5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리즈카 공항 분쇄! 마지막까지 산리즈카에서 살아가 주세요. 모두 잘 있어.” 이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난 그를 오제 아키라의 만화 <우리마을 이야기>는 야노하라 준이라는 인물로 되살렸다. 산리즈카 마을의 이야기를 만화 안팎에서 되짚어 보자. 이는 국가가 버티는 모양새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1966년, 산리즈카 마을 사람들은 신나리타 공항이 그 마을에 지어진다는 소식을 TV에서 처음 들었다. 마을에 무언가가 생긴다면 그 마을 사람들과 먼저 상의해야 할 것일진대, TV 뉴스가 덜컥 통보를 해온 거다. 마을은 난리가 났다. 20여년을 고생해가며 가꾸어 겨우 땅을 알게 되고 좋은 작물을 거둘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땅이 활주로가 된다니, 처음엔 모두 반대였다. 그러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막무가내로 채찍질하고 썩은 당근을 제공하니 어느새 마을 사람 절반 이상이 ‘조건’만 좋으면 땅을 내놓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들 ‘조건파’와 달리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반대파’가 서로 반목하니, 한 학급에서도 조건파 집 아이들과 반대파 집 아이들은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한 집안 형과 아우가 서로를 헐뜯는다.

벌써 이 시점에 공항건설 통보 이전의 산리즈카 마을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한줌 남은 마을의 의미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국가와 공권력에 대항해 싸운다. 경찰 기동대는 마을 사람들이 만든 저항의 기점들을 모두 파괴한다. 행정대집행에서는 사람이 올라가 저항하고 있는 나무등걸을 톱으로 잘라 넘어트리기까지 했다. 생명을 걸었음에도 그 생명을 무시한 것이다. 이런 폭력적인 진압과 막무가내 공사가 이어지면서 마을 사람들은 갈수록 수세에 몰렸지만 그래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신나리타 공항은 1978년에 개항했다. 그들의 저항이 끝나서 개항할 수 있었던 걸까? 아니다. 그들은 50년째인 2015년 지금도 싸우고 있다.

오제 아키라 작가의 만화 <우리마을 이야기>의 한 장면. / 길찾기 제공

오제 아키라 작가의 만화 <우리마을 이야기>의 한 장면. / 길찾기 제공

왜곡과 무책임으로 버티는 국가
왜 이렇게 긴 싸움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마을 이야기>는 이 지난한 싸움의 첫 5년간을 단행본 일곱 권 분량에 담아낸 만화 다큐멘터리다. <나츠코의 술>로 잘 알려진 작가답게 “살아보려는 농부들의 삶”을 현미경과 망원경과 육안으로 보고 그려낸 이야기와 표현도 매우 탄탄하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뎃페이와 그 가족의 시선을 중심으로 여러 사안을 바라보면서도 조건파로 돌아선 마을 주민들, 연대하는 운동권 학생들, 공항공단 직원이나 경찰도 허술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나는 무척 뭉클했다. “민주주의란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로 시작한 작품인 만큼,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국가의 주인들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예의를 갖춘 듯했다. 작품은 과격한 진압과 저항을 그리면서도, 경찰 기동대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시위대나 시위대를 구해주는 공단직원 등도 함께 그렸다. 인간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듯이, 작가의 시선은 지옥도 속에서도 치열하게 인간을 본다. 그리고 거기에 긴 싸움의 이유를 알려주는 답이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않는, 오히려 폭력으로 “살아보려는 농부들의 삶을 빼앗고 짓뭉개”는 국가에 예의를 요구하는 것이 그들의 싸움이다. 아직도 여전히 국가가 예의를 다하지 않기에, 그들은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국가는 어떻게 문제를 책임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일까?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산노미야의 유서를 한국어로 번역해 일본인 선생님께 번역 검토를 부탁했다. 선생님은 이 유서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산리즈카 투쟁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선생님은 산노미야 후미오와 동갑이었고, 그 역시도 학생운동을 했던 이였다. 게다가 선생님보다 두 살 위인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던 그 자리에서, 일본인 선생님도 나와 함께 물대포를 맞았다. 이처럼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말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그분조차 산노미야 후미오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는 데서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었다. 알려졌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충분히 혹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보니 알 것 같았다. 국가는 때림으로써 버티고, 버팀으로써 버틴다. ‘때림으로써 버티기’는 국가는 국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저항하는 시민을 오히려 문제 있는 이들로, 테러리스트로 만들어 오히려 그것을 부각하는 ‘왜곡’의 방식이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그것에 속는다. ‘버팀으로써 버티기’는 어떤가. 국가는 너무 많은 문제를 책임지지 않는 것을 통해 시민사회의 성원들이 문제 각각을 면밀히 볼 수 없게 만든다. 학생운동을 했던 일본인 선생님도 그가 집중하던 문제에 저항해 싸우느라 산노미야의 죽음을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무책임으로 일관하여 시민사회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국가가 버틸 수 있는 이유 가운데 일부는, 이런 왜곡과 무책임에 있다.

‘민중총궐기’는 버티기 위해 때리는 국가에 민중이라는 시민사회의 이름으로 예의를 요구하는 투쟁이다. 그리고 ‘총궐기’는, 국가가 버티기 위해 책임지지 않은 많은 문제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다함께 책임을 요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글이 나올 때쯤이면 2차 총궐기가 끝나고, 그 가운데 또 다른 백남기 농민이 폭력에 희생당해 있을지도 모른다. 국가는 또 새로운 왜곡과 무책임으로 때리며 버티려 할 것이다. 이런 국가의 버팀에 우리는 어떻게 예의를 요구해야 할까? 총궐기는 이 질문의 과정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궐기하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아직 국가에게서 받아 마땅한 예의를 얻지 못했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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