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를 관조하는 이야기, ‘페르세폴리스’

2015.12.01

<페르세폴리스>는 만화책으로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란에서는 정식으로 출판되지 못했다. 이란 정부가 이 작품의 출판을 꺼려해서다.

웃픈 경험담으로 시작하자. 올봄, 나는 이스라엘에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그리고 귀국하자마자 메르스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내게서 메르스가 옮는 거 아니냐며 장난스럽게 몸을 사렸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던 내 아내는 남편이 ‘중동’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며칠간 수업을 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중동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도 지정학, 문화, 종교 등 여러 측면에서 다른 다양한 답이 제출될 수 있지만 길게 말할 여유는 없다.

어쨌거나 결론만 말하자면 질병관리본부가 특정한 메르스 발병국에 이스라엘은 해당되지 않았다. 나는 다행히 건강했고, 이 경험은 그보다 더 건강한 선물을 내게 주었다. 바로 나와 우리의 여러 ‘무지’와 ‘무능력’에 대한 깊은 자각이다. 내가 모른다는 걸 모르는 ‘무지’와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의심하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무능력.’ 하지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다녀오기 전에는 나도 이스라엘과 중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모른다는 것조차 몰랐으니 탓하자면 나부터 탓해야 할 일이다. 이 이야기는 그저 우리가 ‘무지’와 ‘무능력’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낫게 살아갈 수 있다는 가벼운 믿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믿음과 잇닿은 훌륭한 만화를 한 편 소개한다. 마르잔 사트라피의 걸작 <페르세폴리스>는 그러한 ‘무지’와 ‘무능력’을 관조하는 자전적인 이야기다. 사트라피는 이란에서 태어나 이란-이라크 전쟁 중이던 1984년에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란에 돌아왔고, 스물네 살부터는 다시 프랑스에서 살았다. 이 인생 여정을 담아낸 작품 <페르세폴리스>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사트라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94년 프랑스에 살게 되고 나서, 나는 친구들에게 이란에서 내가 보낸 시절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TV를 통해 이란에 대한 단편적인 부분들만을 알고 있었고, 내 경험에 대해서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이렇게 말해야만 했다. “아냐, 아냐, 이란은 그런 곳이 아니라구!”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이 휩쓴 시기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 새만화책 제공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이 휩쓴 시기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 새만화책 제공

이란 출신 마르잔 사트라피의 걸작
하지만 사실은 그녀 역시 몰랐다. 이란에 대해서나, 그가 살았던 나라의 여러 문화에 대해서나, 심지어는 그녀 자신에 대해서도. 하지만 그녀는 모르는 상태에 머물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가 부끄러워할 것은 무지가 아니다. 부끄러운 것은 그 무지의 상태를 알려고도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는 무능력이다. 다행히 그녀는 알고자 하는 욕구가 넘쳐나는 사람이었고, 모든 삶을 통해 알아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열 살 무렵부터 시작해 스물네 살까지, 1980년부터 1994년까지 그녀가 비틀거리며 알아간 많은 것들에 대한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예술적이면서도 정치적인 기록이 <페르세폴리스>다. 그리고 이 작품의 여러 미덕 가운데 하나는 그 알아가는 과정에 독자를 자연스럽게 동참시킨다는 점이다.

나 역시 <페르세폴리스>를 보며 자연스럽게 알아나갔다. 특히 이란에 대해 알게 된 것을 말하려면 얼마나 몰랐는지부터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페르세폴리스>를 읽기 전의 나는 이란이 과거 페르시아였다는 것도 몰랐다. 알았던 것은 이란이 산유국이며 이란-이라크 전쟁을 겪었다는 것 정도였다. 잘못 알았던 것도 많다. 나는 이란이 중동이니 당연히 아랍문화권에 아랍어를 쓸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이란은 아랍민족이 아니라 아리아인 계통 파르사족이며, 페르시아어를 쓰고, 이슬람 국가이긴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대부분 수니파인 데 비해 시아파라서 다른 점이 상당히 많다. 물론 나는 무슬림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다는 것도 대충만 알았고 구체적인 차이는 거의 몰랐다. 이렇게 모르던 것이 많았다. <페르세폴리스>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바로 그 ‘무지’를 알았다.

그런데, 이란에 대해서나 이슬람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까? 올해 들어 우리는 이슬람 관련 뉴스를 적잖이 접했다. 가장 큰 뉴스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두 번의 테러 소식이다. 한 번은 만평잡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또 한 번은 최근 파리에서 13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IS의 테러다. 이 소식들은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테러에 대한 분노 등의 감정과 함께 우리에게 ‘무슬림’ 가해자들에 대한 도드라진 정보를 함께 준다. 그리고 그 정보는 때로 불충분하고 잘못된 지식, 즉 편견으로 이어진다.

이를테면 ‘모든 무슬림·아랍인은 위험하다’와 같은 편견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국내에 거주하는 아랍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대표적이다. 당장 파리 테러 뉴스에 달린 댓글들만 봐도 이주민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표출되는 차별과 혐오가 판친다. 이럴 때에 다른 지식은 우리가 차별과 혐오로 쉽사리 빠지지 않도록 돕는다. 테러에 매몰되지 않은 이슬람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IS의 이슬람 종교관에 어떤 문제가 있고, 다른 이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등을 구분해 생각하게 하는 인지적 기반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란 출신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만화 <페르세폴리스>의 한 장면. / 새만화책 제공

이란 출신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만화 <페르세폴리스>의 한 장면. / 새만화책 제공

한국 정부, 치사한 방식으로 지식 제한
게다가 이런 지식들은 우리 자신의 삶에도 충분히 확장해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유용하다. 단순히 말해, 더 많은 지식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만사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바로 드러난 것과 크게 보이는 것의 이면에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잘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다. 전쟁에 대한 국내 언론 뉴스를 늘 영국 BBC 뉴스와 대조해보는 마르지 아버지의 까다로움은, 미디어 정치가 ‘단순하지 않음’을 아는 명민한 태도다. 이란 정부가 종교적 근본주의로 무장하던 때에 취한 교육시스템과 교과서에 대한 ‘조치’에 엄마가 “안 돼!”라고 혼잣말이나마 할 수 있는 것도, 그 조치가 어떤 다른 억압과 잇닿아 있는지를 지각한 덕분이다.

모르면 그저 따를 수밖에 없다. <페르세폴리스>가 주는 지식으로 한정해 말하자면, 이런 적용도 가능하다. 이란에서 일어난 혁명, 반혁명, 독재, 전쟁과 그 속에서 변해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에 작동하는 여러 요소들을 되짚을 수 있다. 이를테면, <페르세폴리스>를 다시 읽으며 나는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한 ‘국가의 테러’를 몰랐던 우리네 과거를 떠올렸다. 며칠 전 민중총궐기와 그에 대한 경찰의 진압을 거의 다루지 않거나 편향적으로만 다룬 국내 주류 언론의 보도 역시도 생각했다. 태부족인 보도와 나 자신의 주의 부족으로 인해 프랑스 테러만 알고 같은 시기 이라크와 레바논에서 일어난 테러는 알지 못했던, 그래서 더 잘 애도하지 못했던 나를 반성했다. 모르면, 우리는 잘못 판단한다. 잘못 판단해서 애꿎은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타자를 부지불식간에 배제한다. 이는 불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도 문제다. 모르면,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면, 또 우리의 앎과 모름에 대한 의심조차 할 수 없으면, 현재를 아쉽게 살 뿐만 아니라 미래도 전망할 수 없다.

<페르세폴리스>는 만화책으로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란에서는 정식으로 출판되지 못했다. 이란 정부가 이 작품의 출판을 꺼려해서다. 작품 속에 담긴 여러 지식이 사람들에게 퍼지는 것이 거북하고 두려웠던 까닭이다. 이란만의 상황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금지보다도 치사한 방식으로 지식을 제한하고, 우리 중 다수는 지식을 거부한다. 다른 것도 아닌 한국에 대한,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알려면, 우리에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어쩌면 이 질문이 다음 출발선일지도 모르겠다. 모른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알고 싶다. 알기 위한 노력과 함께.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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