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 협곡의 비극을 묘사한 ‘바비 야르’

2015.12.08

쇼스타코비치는 예프투센코의 시를 교향곡으로 만들었다. 13번 ‘바비 야르’가 그 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히틀러의 만행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러시아의 오만, 위선, 거짓을 그대로 묘사한다.

1850년대, 한양의 청계천변 거지소굴에서 한 소년이 거지패들에게 얻어맞고 있다. 지나가던 선비가 구해준다. 말을 들어보니 그림 때문에 벌어진 패악이란다. 그렇게 하여 소년의 그림 솜씨가 알려지게 된다. 조선이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한 세도정치에 굴하지 않고 개화의 새 세상을 꿈꾸던 지식인들이 이 소년, 아니 어엿한 청년이 되어 손 가는 대로 그려도 일필의 휘지가 되는 화가를 후원한다.

그러나 기구하다. 두어 번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 세도가를 비판한 지식인들은 밀려드는 외세와 급변하는 정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화가는 말이 없다. 대신 그림으로써 말을 한다. 아무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자식이라도 하나 얻어보려 하지만 들판의 야합조차 실패한다. 그의 사랑의 물방울은 여인의 허벅지 위로 흩어진다.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키예프 협곡의  비극을 묘사한 ‘바비 야르’

고교 1학년 때 처음 들은 거대한 교향곡
영화 <취화선> 이야기다. 2002년 임권택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굳이 오원 장승업 이야기라고 하지 않고 영화 이야기라고 한 것은, 이 영화가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취하되 그것을 사실대로 고증하여 재현한 영화라기보다는, 임권택 그 자신의 내적 독백에 가깝기 때문이다. 혼탁한 세상에 불우하게 태어난 운명, 예술에 의탁하였으나 세상이 더욱 혼탁하여 예술 그 자체도 여의치 않는 삶, 흡사 천형을 받은 듯한 예술가의 비틀린 삶. 해방과 전쟁과 분단의 시기에 혹독한 상처를 입은 감독이 그 후로도 오직 살아남기 위해 영화판으로 뛰어들었고, 반공영화를 만들면서 동시에 전쟁의 광기를 표현해냈으며,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한편 고뇌하고 또 한편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던 임권택 감독의 예술 혹은 예술가에 대한 생각이 장승업을 통해 재현된 것이다.

그 무렵, 그러니까 20세기 중엽의 한국 사회에서 예술 혹은 예술가에 대한 인상도 이 영화에 투영된다. 기존의 관습과 질서에 따르지 않는다는 예술가 고유의 신념이 대개는 군복 야상을 걸치고 다니거나 낮술에 취해 있거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사라지거나 그러다가 불현듯 신기에 들려 작품을 토해낸다는 식의 이미지 말이다. 이런 이미지에서 여성은 ‘천재 예술가’의 고뇌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받아주는 대상으로 흔히 묘사된다.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이런 천재주의 낭만적 예술가 이미지는 19세기 중엽 파리나 빈에서 형성된 뒤로 지금껏 자주 재현된다. 예술가들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현실 질서를 이겨내기 위해 실제로 평범한 생활 습속의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경우가 있다.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하다가 아침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 직업 고유의 패턴이 또한 존재한다.

그렇기는 해도 예술을 ‘태생의 형벌을 받은 비운의 천재’ 식으로 보면, 안 보이는 게 너무나 많아진다. 예술가의 생애는 물론이고 작품마저도 이분법으로 재단하게 된다. 한마디로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식이다.

구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대표적이다. 천재로 태어나 20대에 이미 회심의 실험작으로 정체된 러시아의 음악을 뒤흔들었으나 스탈린 체제가 들어서면서 강요와 억압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음악가라는 얘기다. 일견 그런 측면이 있다. 1934년과 1948년, 스탈린 체제가 거세게 몰아붙인 ‘사회주의적 창작 방식’의 광풍에 쇼스타코비치는 여러 차례 강타당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억압적인 체계에서 고통스럽게 살아남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식으로 묘사된다.

쇼스타코비치 13번 교향곡 ‘바비 야르’ 음반

쇼스타코비치 13번 교향곡 ‘바비 야르’ 음반

과연 그런가. 1906년 생이다. 러시아 혁명은 1917년에 일어났다. 11살 때 혁명이 일어났으며 그 이후 20대가 되는 동안 그의 성장기를 지배했던 것은 혁명의 신념과 열기였다. 그의 왕성한 활동시기가 스탈린 시대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성장기와 여러 기록들은 그가 서구식 자유주의자인데 억압적 체제에서 신음했다는 식으로 봐서는 곤란한 흔적이 많다. 그는 고민과 사색의 겨를없이 성장기 자체를 레닌혁명 시대를 보냈고,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일찌감치 내면화되어 있었다.

1917년 혁명이 일어나자 서방으로 망명을 간 라흐마니노프나 프로코피에프 같은 연배와는 다르다. 그는 로마노프 왕조 유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마야코프스키, 메이어홀트, 리시츠키 같은 자유파의 일원으로 러시아를 사랑했으며, 스탈린 체제 이후에는 당의 획일적인 방법을 승인하되 그것의 극한 혹은 그 너머까지 음악의 진격을 펼쳐냈던 음악가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당이 원하는 음악, 즉 알리바이 성격의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교향곡 5번은 너무도 강렬하다. 그의 12번 교향곡 ‘1917’, 즉 러시아 혁명의 묘사는 진실하다.

불운한 예술가 아닌 당대의 예술가였다
예프투센코라는 시인이 있다. 그가 1961년 장시 <바비 야르>를 발표한다. 파격의 형식은 물론 그 내용이 러시아를 강타했다. 바비 야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외곽에 있는 협곡의 비극을 묘사한 시다. 이 협곡에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9월,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독일군은 9월 29일에서 30일까지 이틀 동안 이 협곡에서 유대인 3만3000여명을 학살했다.

독일군이 유태인을 학살했는데 왜 러시아 시인이 분노의 시를 썼을까. 스탈린이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독·소 불가침 조약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선제공격으로 스탈린과 히틀러가 맞싸운 세계대전이지만, 두 제국이 동시에 경멸했던 인종, 즉 유태인에 대한 학살사건에서는 두 제국의 감정이 동일했던 것. 심지어 이 학살 당시 스탈린 체제가 묵인 방조 내지는 공모까지 했다는 기록이 나오면서 예프투센코는 이 야만적 학살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물론 스탈린이 죽은 후 들어선 흐루시초프 체제가 스탈린 격하운동 차원에서 문화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비판과 실험을 허용한 다음의 일이지만, 그래도 이 같은 작품이 숨죽이고 있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예프투센코의 시를 교향곡으로 만들었다. 13번 ‘바비 야르’가 그 곡이다. 원작시가 그랬던 것처럼, 그 시를 원형 그대로 오선지로 옮긴 교향곡에서 쇼스타코비치는 히틀러의 만행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러시아의 오만, 위선, 거짓을 그대로 묘사한다. 4악장 ‘두려움’에서 “마치 지나간 세월의 망령처럼. 교회 현관에서만, 늙은 여자가 아직도 여기저기서 빵을 구걸한다”고 노래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조용히 있어야 할 때 그들은 우리에게 소리 지르도록 가르쳤고, 우리가 소리를 질러야 할 때 그들은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하였다”고 절규한다.

나는 이 교향곡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들었다. 고교 1학년이라면 세상의 모든 것이 몸에 저장되는 시기다. 처음 마셔보는 술, 처음 만나는 사람들, 처음 읽은 책들, 그리고 처음 듣는 노래들. 고교 1학년의 나에게 이 거대한 교향곡은 전체로서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다만 1악장의 벨 소리는 지금도 어디선가 들려온다. 조종(弔鐘) 혹은 경종(警鐘) 말이다. 거대한 스케일의 합창과 연주가 거침없이 전개될 때, 그 틈 사이로, 데엥~~ 하고 들려오는 종소리가 환청처럼 지금도 들려온다.

그러한 소리와 더불어 합창과 베이스 가수가 노래한다. “내 안에는 유대인 피가 흐르지 않지만, 이 곳 바비 야르에 서면 나는 증오심을 느낀다. 누구는 ‘러시아국민연합’이니 뭐니 하면서 희롱하고 죽이면서 낄낄거리지만, 이 곳에 서면 나는 한 명의 총에 맞은 노인이며 총에 맞은 아이다. 나는 분노를 느낀다. 왜?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진정으로 러시아인이다.”

바로 이런 정신이 필요하다. 쇼스타코비치는 불운한 예술가가 아니라 당대의 예술가다. 그런 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도처에서 종소리가 울려온다. 경종이 울린다. 자칫 잘못하면 그 소리는 조종이 될 수 있다. 이 도시에서, 이 거리에서, 우리는 분노의 종소리를 들어야 한다. 인사동에서 술 기운에 허우적거리며 예술 운운하며 흰소리나 할 때가 아니다. 당대의 종소리를 들어야 한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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