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대표의 ‘언어 쇠파이프’

2015.09.15

[유승찬의 눈]여당대표의 ‘언어 쇠파이프’

‘트루시니스(truthiness)’라는 말이 있다. 우발적이거나 심지어 의도적인 거짓말도 어느 정도 진실하게 들리기만 한다면 우리가 진실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인 메리엄 웹스터는 이 단어를 200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바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트루스니스 증후군’에 걸린 것 같다. 대통령에게 줄을 서는 것인지, 집토끼를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앞뒤 맥락을 자르는 의도적인 거짓말을 쏟아내고 있다. “노조의 쇠파이프만 없었으면 국민소득 3만 달러 갔을 것”이라는 말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정면 부정한 파시스트적 언술이다. ‘언어 쇠파이프’로 노동자를 내리쳤다. 살벌하다. 쇠파이프와 3만 달러를 연결시킨 대목은 가히 천재적(?)이다. 그런데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해 노동자를 두들겨 팬 것은 공권력 아니었나. 김 대표의 발언을 듣는 쌍용차 해고자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겨우 10% 남짓한 데 비해 상대적 빈곤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국가의제를 ‘노조 탓’으로 전가하는 모습은 여당 대표 이전에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야당은 언제까지 이런 막말을 두고 봐야 할까. 뭔가를 의논하기에 민망한 수준의 여당 대표를 둔 야당 지도부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답답했는지 가수 이승환씨가 “친일파 청산해서 재산 환수하고 사자방(4대강사업, 자원외교, 방산사업)에 엄한 돈 쓰지 않았으면 소득 5만불 됐을 것”이라며 되치기했다. ‘페북 사이다’답다.

김 대표는 “유신체제 아니었으면 경제성장도 못했다”는 주장도 했다. 여당 대표가 위대한 국민이라는 정치적 주어를 무시하고 경제성장의 공을 오직 대통령의 아버지에게 돌리는 발언을 한 셈이다. 김 대표의 역사인식은 이미 경계를 넘었다. 야당의 정확하고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여야의 애매한 동거는 ‘무슨 말이든 해도 상관없다’는 인식을 부추기고 있다. 여당 대표가 이 정도인데 다른 세력의 준동은 어떨 것인가.

최근 정부 지도자들의 민주주의와 인권 불감증이 도를 넘고 있다. 정종섭 행자부 장관이 여당의원 연찬회에서 총선 승리 건배사를 외친 것이나 최경환 부총리의 선거개입 의혹 발언 등은 우리가 어렵게 지켜온 가치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공중파 방송인 MBC는 이미 2012년에 병무청과 검찰이 확인한 박원순 시장 아들의 병역문제를 악의적으로 보도해 박 시장 측으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한 상태다. MBC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재판 중인 피의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내보내 빈축을 샀다.

김 대표의 쇠파이프 발언은 정부·여당의 대기업 노조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노동개혁 드라이브가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들이 정부의 노동개혁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노동개혁이 청년 일자리 창출에 효과적이라는 의견은 29.9%에 불과했고, 비효과적이라는 의견은 55.0%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개혁이 아니라 710조원에 이르는 3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활용하고, 소득재분배와 근로시간 단축, 청년고용할당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동개혁보다 재벌 대기업들이 나서서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다가올 20대 총선의 뜨거운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이 김 대표 발언을 대충 넘기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소셜미디어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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