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얀 황금’의 도시 드레스덴

2015.08.18

드레스덴은 ‘영원한 공사장’이라고도 불린단다. 츠빙거 궁을 복원하는 데 20년이 걸렸고, 복구 작업은 늘 현재 진행형이기에, 진행 속도만큼 하루하루 아름다움을 더해가고 있는 도시 드레스덴!

“여행 중에 잠시 독일에 들를 거야. 독일과 체코를 다 보고 싶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어딜 가야 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이런 황당한 질문을 받고 나는 한참을 웃었다. 적어도 두 달은 휴가를 내야 겉핥기 여행이라도 가능할 것 같은 지역을 선정하고는 이틀이라니! 너의 질문에 나는 5초 만에 대답했지. “드레스덴으로 가자!”

서울 면적 60%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박물관만 28개가 있는 곳. 독일의 예술·경제·교통·문화의 중심지이자 서독과 동독 그리고 체코의 프라하를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의 도시. 트램을 타고 다니기엔 놓칠 구경거리가 너무 많은 곳. 그래서 걸어다닐 수밖에 없는 도시. 독일 전역은 물론 가까운 서유럽·동유럽으로 가는 값싼 버스 노선이 모여 있는 이곳은 심지어 물가도 싸다. 몇 년 전에 하루 일정으로 들렀다가 홀딱 반해서 한 달을 눌러 앉아버렸던 드레스덴, 그곳으로 가자.

괴테는 드레스덴을  '유럽의 테라스'라고 불렀다.

괴테는 드레스덴을 '유럽의 테라스'라고 불렀다.

엘베강의 피렌체
괴테가 붙인 이름이지만, 나는 여전히 불만이야. 드레스덴이 피렌체보다 아름답기 때문이지. 여행 전문가들 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드레스덴을 꼽는 이들이 많아. 드레스덴은 독일 라이프치히 남동쪽에 있는, 아름다운 엘베강이 흐르는 작센주의 핵심도시이자 바로크시대 건축과 미술의 중심지란다.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 궁전, 드레스덴 미술관,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젬퍼오퍼 오페라극장 등 구경해야 할 곳을 나열하기도 벅차구나. 경제, 과학, 기술, 예술, 교통, 문화와 자연이 잘 어우러진 이 도시는 관광객의 취향에 따라 구경할 거리가 무궁무진한 마력을 지녔어.

겉모습만 보며 걸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올 거다. 하지만, ‘융단폭격’이란 말이 유래된 곳이 드레스덴이라 하면, 이 도시가 지닌 상처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니? 1945년 2월, 미·영 연합군 폭격기 1000여대 이상이 드레스덴의 하늘을 덮었대. 융단폭격으로 도시는 그야말로 잿더미가 됐어. 기록을 살펴보면, 폭탄의 열기에 녹은 도로는 진흙처럼 물컹거렸고, 사람들의 발은 불구덩이 도로 속으로 빠져들었대. 한 여인의 두 발에 붙은 불이 온몸에 번지자 금방 재로 변해버렸다는 믿기 어려운 증언도 있더라.

물로도 끌 수 없는 강력한 불을 지르는 ‘소이탄’을 폭격에 사용했기 때문에 드레스덴은 용광로의 온도인 1500도까지 올라갔대. 도시 전체가 박물관과 다름없는 예술도시를 폭격하진 않겠지? 라고 예상한 100만명 이상의 피난민이 모여들었기에 인명피해는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였지만, 13만명 이상이 그 불구덩이 속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이상의 피해를 입은 도시를 새로 세우는 데 100년은 족히 걸릴 거라고 모두들 예측했어. 전통을 중시하는 독일인들은 그 폐허 속에서도 무너진 건물의 벽돌 두 장만 찾을 수 있다면, 번호를 매기고 그것을 중심으로 건축물들을 재건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어.

그래서 드레스덴은 ‘영원한 공사장’이라고도 불린단다. 츠빙거 궁을 복원하는 데 20년이 걸렸고, 복구작업은 늘 현재진행형이기에, 진행 속도만큼 하루하루 아름다움을 더해가고 있는 도시 드레스덴!

파괴된 구시가지는 대부분 복원돼 츠빙거 궁전, 젬퍼오퍼, 프라우엔 교회 등 세계적인 건축물들은 옛 모습을 되찾았어. 새카만 벽돌과 하얀 벽돌이 뒤섞여 있는 건물의 표면을 보면 신기할 거야. 불에 탄 벽돌을 중심으로 건물을 재건했기 때문이지. 유럽인들이 평생에 꼭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드레스덴 국립미술관의 작품들은 폭격 속에서도 손상되지 않았어. 드레스덴을 가로지르는 30㎞의 엘베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그만 이쯤에서 멈춰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

프라우엔 교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드레스덴 전경

프라우엔 교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드레스덴 전경

‘하얀 황금’을 만든 마이더스의 손 연금술사
나는 이곳을 ‘연금술사들이 빚은 도시’라고 부르고 싶어. 드레스덴에 머무는 동안 나는 ‘도자기’에 홀린 사람이 돼버렸어. 츠빙거 궁전 도자기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 ‘마이센 자기’는 ‘황금’ 만들기에 실패한 연금술사들 덕분에 탄생한 결과물이란다. 그래서 이곳에선 도자기를 ‘하얀 황금’이라고 부르지. 그럼 ‘하얀 황금’을 탄생시킨 연금술사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16세기 말에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이 새 항로를 개척하자 유럽인들은 인도, 중국, 그리고 일본을 왕래하며 실크, 차, 도자기 등을 유입하기 시작했어. 그 중에 도자기는 황금보다 비싸고 아름다웠기에 왕과 귀족 중에는 수집광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도자기 값은 천정부지로 올랐지.

중국의 도자기 기술은 유럽인들이 보기에도 놀라웠어. 당시 40년간 폴란드의 왕을 겸하기도 했던 독일 작센의 왕 아우구스트 2세는 황금과 도자기를 좋아하기로 유명한 수집광이었어. 그런데 당시의 작센왕국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대. 텅 빈 국고를 채울 방도를 궁리하다가, 가장 능력 있는 연금술사를 불러들여서 황금을 만들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한 아우구스트는 화학 분야에서 총명하기로 이름난 J F 뵈트거(1682~1719)를 지목했어. 그에겐 불행이었을지 모르나 우리에겐 행운인 역사가 쓰여지는 순간이었지.

마이센 자기 2만4000여개로 만든 작품 '군주의 행렬'

마이센 자기 2만4000여개로 만든 작품 '군주의 행렬'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연금술사로 소문난 뵈트거를 잡아들이기 위해서 고액의 현상금을 제시한 광고문이 도시 곳곳에 붙기 시작하자, 뵈트거는 작센으로 도망을 쳤대. 하지만 ‘강력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작센의 왕 아우구스트는 뵈트거를 잡아다가 감금한 상태에서 황금 만들기를 명령했어.

연금술사의 실력이 너무 뻥튀기된 게 아니냐고? 그러게 말이야. 당시엔 값싼 철, 구리, 아연 등을 금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고 믿었대. 연금술이야말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왕과 영주들은 물론 성직자와 대장장이까지 당시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연금술에 쏠려 있었어.

연금술사들은 자연계의 모든 물체에는 신성한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대. 금의 정령을 가진 돌을 발견한다면 전 세계의 모든 사물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은 거지. 그 시절엔 금속을 금, 은, 구리, 수은, 주석, 철, 납 일곱 가지로 구분하고, 이 중에서 금이 가장 완벽한 금속이라고 규정했어. 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속은 금처럼 완벽에 도달하고자 애쓰는 물질이라고 보았대. 은, 구리, 수은, 주석, 철, 납은 금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보았던 거야. 금은 오스트리아, 독일, 스페인에서 극소량이 나올 뿐이었으므로, 현자의 돌을 찾는 것은 연금술사들의 꿈이었어.

마이센 자기 인형들

마이센 자기 인형들

하지만 정작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진 연금술사로 소문난 뵈트거는 그런 사실도, 자신의 능력도 믿지 않았대. 실패가 거듭되자 화학 조합만으로는 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우구스투스 2세는 뵈트거에게 큰 실망을 했지. 드레스덴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불태우던 아우구스트 2세는 다른 대안을 찾기로 마음먹었어.

유럽의 왕실에서는 중국의 오채자기(五彩瓷器)를 무척 좋아했대. 오채의 연원은 백자 위에 채색을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인데, 오채라고 해서 꼭 다섯 종류의 색채 사용을 의미하는 건 아니고, 홍, 녹, 청, 황 등이 주를 이루고, 흑색으로 윤곽선을 그렸대. 그런데 전란으로 오채자기를 만드는 도요지(陶窯地)가 파괴되자 일본의 아리타 자기의 인기가 급상승했어. 너도 들어봤을 거야. 아리타 자기는 임진왜란 당시에 납치된 조선의 도공이 일본에서 조선백자를 재현한 것이라는 사실! 일본 규슈의 아리타 지역에 끌려간 이삼평의 후예가 만든 것이 아리타 자기라는 것을!

아우구스트 2세는 일본의 아리타 자기의 매력에 빠져 있었대. 그 시절 일본에서 유럽까지 공수해 온 아리타 자기는 황금보다 값이 비쌌단다. 아우구스트는 아름다운 자기를 작센에서 생산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어. 연금술사 뵈트거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지.

“연금술을 이용해서 하얀 황금 아리타 자기를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졌어.

이미 자기 제조비법을 연구하고 있는 취른하우스에게 뵈트거와 함께 엘베강 북쪽 마이센으로 가서 자기를 개발하도록 명령했어. 비밀리에 ‘하얀 황금’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거지. 취른하우스는 결실을 보지 못하고 1708년 10월에 사망하는데, 1709년 3월 28일에 이르러 뵈트거는 드디어 유럽 최초로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 왕은 유럽에서 최초로 자기 생산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공포하고, 1714년이 돼서야 뵈트거를 감금생활에서 해방시켜 줬지.

그 후에 뵈트거는 부귀영화를 누렸느냐고? 천재들의 인생은 대부분 불행한 것일까. 1719년 3월 13일, 드레스덴에서 독극물질을 다루는 실험을 하다가 그는 죽고 말았어. 향년 37세. 너무 똑똑하면 삶이 고단한 거같지 않니.

불운한 천재 뵈트거의 삶을 들여다보는 내내, 뵈트거가 간절히 만나고 싶었을 한 사람이 떠올랐어. 아리타 자기를 만든 사람을 만나서 비법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을까. 이제 너에게 이삼평의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야.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

마이센 자기의 근원은 조선백자
충청도 금강 출신 이삼평.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에게 잡혀 일본에 끌려간 도공 중 한 명이야. 일본에선 가네가에 산베에라는 이름으로 불렸지. 이삼평은 자기의 원료인 고령토를 찾기 위해 전전하다가 아리타 동부지역에서 고령토를 발견하고 가마를 지어 일본에서 첫 백자를 굽는 데 성공한 사람이야. 아리타 자기가 그로부터 시작된 거지. 작은 시골 간이역인 아리타역에 내리면 ‘아리타 도기의 역사’가 기록된 안내판이 있대.

‘1600년대 초 조선의 도자기공 이삼평(李參平)은 아리타의 이즈미야마(泉山)에서 자기의 원료인 도광(陶鑛)을 발견했다. 이것으로 그는 일본 최초의 자기를 굽게 된다. 아리타 자기는 17세기 중반부터 무역항 나가사키의 데시마(出島)를 통해 유럽으로 대량 수출됐다. 유럽의 왕후와 귀족들이 이 도자기에 매료됐다. 독일 드레스덴의 왕은 아리타 자기를 참고해 자국 내에서 도자기 생산을 꾀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 마을은 아리타에서 꽃핀 자기의 400년 전통과 기법을 지키고 갈고 닦으면서, 젊은 작가들이 의욕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신동아> 544호 참조)

조선백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아리타 자기의 모태가 되고, 다시 연금술사 뵈트거의 손을 거쳐 마이센 자기로 태어난 것이야. 아우구스트 2세는 크게 만족하여 마이센의 알프레트부르크성에 왕립 자기제작소를 만들었고, 마이센 자기는 유럽 왕실에 고가로 팔려나갔대. 마이센 자기는 이후 세계 도자기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지. 유럽인들의 정교한 솜씨는 세계 도자기 시장을 석권하기에 이르렀어.

세계 도자기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유럽 도자기 마이센. 이 아름다운 도자기의 근원이 조선백자라는 사실을, 마이센 도자기를 보며 감탄하는 독일인들을 만날 때마다 설명하고 싶은 건 나만의 욕심일까.

감탄의 연발, 츠빙거 궁전 박물관
바로크 건축의 대표적인 궁전인 츠빙거 궁전은 우리가 꼭 들러야 할 곳이야. 십자형의 넓은 뜰에 있는 바로크 양식으로 조각된 분수가 장관이야. ‘요정의 샘’에서는 꼭 사진을 찍어야 해. 광장에서는 매년 여름 드레스덴 음악제가 열린단다. 네가 이곳에 도착할 즈음엔 같이 음악회를 볼 수 있겠다. 지금 이 궁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미술관에는 15~18세기의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의 미술품이 전시돼 있는데 루벤스, 렘브란트, 뒤러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역사박물관, 동물학박물관 등 여러 종류의 박물관이 궁 안에 있지. 그 중에서도 나를 도자기에 홀린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작품들을 만나러 우리는 도자기 박물관(Porzellansammlung)으로 갈 거야. 츠빙거 궁전 안에 있는 이 박물관엔 18세기에 제작된 다양한 마이센 자기와 중국 및 일본에서 제작된 동양 자기가 전시돼 있어.

뵈트거가 떠난 후 훼롤트와 캔들러는 마이센 자기의 미학적 가치를 최고봉에 올려놓았어. 훼롤트는 금속산화물을 이용해 화려한 도자 채색이 연출하는 미의 극치를 보여줬고, 조각가 캔들러는 입체적인 도자기 공예의 진수를 보여주었지. ‘독일 꽃’ 문양은 특히 유명한데, 나비와 잔잔한 꽃과 벌레들이 흩어져 있는 입체 도자기 앞에서 나는 말을 잃은 채 감탄사만 연발했단다. 캔들러가 만든 미니어처 같은 작은 자기인형들은 식탁을 꾸미는 데 사용됐대. 식탁 위의 음식보다 이 자기인형의 정교한 아름다움에 군침이 돌 것같지 않니?

츠빙거 궁전 구경이 끝나면 거리에 전시된 마이센 자기 작품을 보러 가자. 2만4000여개의 마이센 자기 타일로 만든 101m의 벽화 ‘군주의 행렬’을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탄성을 지르더라. 지금은 교통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슈탈호프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이 거대한 작품은 35명의 작센 군주들이 말을 타고 행진하는 모습인데, 잘 보면 아우구스트 2세의 모습도 보여. 행렬의 마지막 부분에는 작가가 몰래 자기 모습을 그려 넣었대. 나는 잘 못 찾겠더라. 네가 오면 함께 찾아볼 생각이야. 이렇게 거리에서도 마이센 자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기는 드레스덴.

저녁 노을이 엘베강에 몸을 적시기 시작했어. 너는 지금 어디쯤 왔니?

<박상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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