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독 그랑크뤼 등급의 ‘전통과 모순’

2014.11.18

메독은 어딜 가나 황금빛 포도원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고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샤토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160년 전에 태어난 그랑크뤼 와인들은 변함없이 오늘도 황금알을 낳고 있다.

메독 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호에서 언급했던 그랑크뤼 등급과 크뤼 부르주아 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등급 5대 샤토인 마고, 라투르, 라피트 로칠드, 무통 로칠드, 샤토 오브리옹과 함께 총 61개의 메독 그랑크뤼 와인은 1855년 세계만국박람회 때 결정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네고시앙(와인중개상)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비공식적으로 가격과 샤토에 따라 그 등급이 매겨져 왔다.

그러나 160년이 지나는 동안 당시의 샤토들이 소유하고 있던 포도밭 면적이 늘어나고 네고시앙 대신 샤토에서 직접 양조하여 병입하는 등 환경의 변화와 함께 와인의 품질 역시 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하위등급이 상위등급을 능가하는 품질이거나 더 높은 가격으로 팔리는 기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18세기에 지은 메독의 그랑크뤼 와인메이커 ‘샤토 퐁테-카네’의 아름다운 모습.

18세기에 지은 메독의 그랑크뤼 와인메이커 ‘샤토 퐁테-카네’의 아름다운 모습.

상위등급을 능가하는 하위등급 등장
참고로 3등급인 샤토 팔메르는 거의 1등급 수준으로, 5등급인 샤토 랭쉬바주나 퐁테-카네는 2등급 수준의 가격으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메독을 대표하는 5대 샤토 못지않게 우수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수많은 샤토들이 그들의 억울함과 등급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고 있지만, 샤토 무통 로칠드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승급한 사례가 없다. 사실 무통 로칠드의 승급은 와인업계에 여러 가지 파장을 몰고 왔다.

소테른의 특1등급 와인 샤토 디켐은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이 와인의 1등급 승격 무효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한 바 있다. 물론 무통 로칠드의 1등급 자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없지만, 승급은 최근에 작고한 필리핀 여사의 아버지인 바론 필립 로칠드와 전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의 특별한 관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는 얘기가 와인업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필리핀 여사의 영결식에 시라크 전 대통령의 부인이 특별히 참석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73년 무통 로칠드가 1등급으로 승급할 당시 주무부처인 농무부 장관이 바로 시라크였다.

메독의 와인명가 ‘샤토 랭쉬바주’의 양조장에 전시되어 있는 현대미술품들. 와인박물관 수준이다.

메독의 와인명가 ‘샤토 랭쉬바주’의 양조장에 전시되어 있는 현대미술품들. 와인박물관 수준이다.

이러한 등급제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메독 지역의 포도주 생산자들을 중심으로 1932년 새로운 ‘크뤼 부르주아’라는 분류법을 제안하게 된다. 1966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분류법은 내부적인 경연대회와 수정과정을 거쳐 2003년에 공식적인 등급이 결정되었다.

등급은 ‘크뤼 부르주아’, ‘크뤼 부르주아 쉬페리외르’, 최고 등급인 ‘크뤼 부르주와 엑셉시오넬’의 3개 등급으로 제정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등급 심사결과에 불만을 가진 샤토들의 소송으로 2007년부터는 크뤼 부르주아 단일등급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랑크뤼 등급을 능가하는 ‘샤토 샤스-스플린’과 ‘샤토 드 페즈’와 같은 새로운 명품와인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크뤼 부르주아 제도가 낳은 위대한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샤토 코르데이앙 바즈’에서 마셨던 샤토 퐁테-카네 1998년산 와인.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샤토 코르데이앙 바즈’에서 마셨던 샤토 퐁테-카네 1998년산 와인.

생산자 중심으로 새 분류법 만들어
‘부르주아’라는 말은 원래 프랑스어의 ‘성’(城)을 뜻하는 bourg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것은 중세 이후 상공업의 발달로 부를 축적한 신흥부자들이나 자본가들이 영주들에게 막대한 재물을 바친 대신 성내 거주권을 획득하여 안전하고 윤택한 생활을 누린 성내인(城內人)을 지칭하였다. 17~18세기 부르주아 시민혁명 이후 노동자에 대칭되는 자본가 계급으로 발전하였지만, 새로운 크뤼 와인 명칭을 부르주아라고 부른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필자는 오랜 전통의 그랑크뤼 등급체계로 억울하게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되는 샤토 중 대표가 되는 ‘퐁테-카네’와 그밖의 그랑크뤼 생산자들을 찾았다. 무통 로칠드와 D205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는 퐁테-카네는 무통 로칠드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그랑크뤼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메독 그랑크뤼 와인 생산자 중 120ha로 가장 넓은 포도 재배면적을 갖고 있는 이곳은 18세기에 설립된 이후 1975년, 코냑의 와인상이며 생테스테프 그랑크뤼인 ‘샤토 라퐁-로쉐’의 오너인 ‘테세론’ 가문이 구입하여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다. 삼촌 알프레드와 공동소유자인 멜라니 테세론이 필자가 왔다는 전갈을 받고 회의 중인데도 달려나와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금발의 미녀인 그녀와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녁과 함께 와인 시음을 하면서 유익한 시간을 가진 바 있었다.

메독의 그랑크뤼 와인메이커 ‘샤토 퐁테-카네’가 시험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고대 암포라 형태의 숙성통.

메독의 그랑크뤼 와인메이커 ‘샤토 퐁테-카네’가 시험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고대 암포라 형태의 숙성통.

등급체계의 억울한 피해자 ‘퐁테-카네’
퐁테-카네는 1990년대 말부터 최고 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몇 가지 획기적인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우선 1999년 전설적인 와인메이커 미셸 롤랑을 컨설턴트로 영입하여 전통적인 양조방법을 개선하였다. 또한 최고의 와인은 1차적으로 포도재배에서 시작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모든 역량을 포도밭에 집중하였다. 이에 따라 이 지역 최초로 포도를 2004년부터 유기농보다 한 단계 위인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으로 재배하고, 트랙터 대신 말을 이용하여 원시적으로 포도 밭이랑을 갈고 있다. 말갈이는 기계보다 땅을 부드럽게 하여 풍부한 산소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샤토 마고와 라투르도 퐁테-카네의 영향을 받아 현재 이 방법을 쓰고 있다. 또한 포도 수확부터 양조과정까지 모든 단계가 인간의 손으로 진행된다. 대부분의 샤토들이 현대양조기법으로 도입한 컴퓨터시스템도 배제하고 있었다.

이곳 양조시설을 둘러보는 동안 900L 용량의 고대 암포라 형태를 한 숙성용 콘크리트 통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이곳 포도밭에 있는 자갈과 석회암을 시멘트와 혼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숙성과정에서도 이곳 테루아의 특성을 발현하도록 한 배려였다. 이 암포라 통에서 숙성된 와인은 아직 시판되지 않고 있지만 그 결과가 못내 기대되었다. 시음은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예술적인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2층 베란다 앞에서 했는데 수확량이 적었던 2013년 빈티지였다. 풍부한 과일향과 함께 블랙커런트, 흙, 시가향, 그리고 풀바디의 풍부한 질감을 가진 와인이었다. 65% 카베르네 소비뇽, 30% 멜롯과 기타 카베르네 프랑과 프티 베르도를 배합하여 16~20개월 동안 60% 프렌치 새 오크통에서 숙성시켰다고 한다.

메독의 그랑크뤼 와인메이커 ‘샤토 퐁테-카네’ 소유의 포도원을 전망할 수 있는 2층 시음실의 예술적인 창문.

메독의 그랑크뤼 와인메이커 ‘샤토 퐁테-카네’ 소유의 포도원을 전망할 수 있는 2층 시음실의 예술적인 창문.

샤토를 떠나기 전 필자는 그녀에게 이렇게 좋은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면서 이웃인 무통 로칠드처럼 왜 승급을 위한 로비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언젠가”라고 대답하면서 웃는 그녀의 미소는 160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메독 와인의 전통과 그랑크뤼 등급제도의 패러독스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였다. 샤토 방문을 마치고 샤토 랭쉬바주가 운영하고 있는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샤토 코르데이앙 바즈’에서 점심을 하였다. 1998년산 퐁테-카네 와인을 곁들였는데 파워풀하면서도 부드러운 타닌과 복합적인 풍미를 발산하는 전형적인 메독 그랑크뤼 와인의 향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양조장에 항상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포이약의 와인명가 샤토 랭쉬바주, 보르도 샤토의 아름다운 전형을 보여주는 샤토 피숑 롱그빌 바롱, 메독 그랑크뤼 중 가장 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칼롱 세귀르, 목재를 쓴 특이한 샤토 건축물로 유명한 마고의 샤토 지스쿠르 등은 지면관계상 일일이 그 방문기를 소개할 수 없어 아쉽다. 메독은 어딜 가나 황금빛 포도원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고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샤토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160년 전에 태어난 그랑크뤼 와인들은 변함없이 오늘도 황금알을 낳고 있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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