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 여전히 현재진행형”

2014.05.20

‘5월의 작가’ 임철우 “한 품고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는 건 결국 산 자 이야기를 하는 것”

영화감독 이창동은 임철우의 장편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1991)를 읽고 쓴 서평에서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인간들은 마치 햇빛이 짱짱한 세계,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 같다”고 했다. 2년 뒤 소설가였던 그는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임철우의 소설은 지독하게 아픈 현실의 공간 속에 별과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눈물겹게 따뜻한 서정의 세계가 마술 같은 상상력과 어우러져서 마치 ‘묘약’과 같은 위안을 안겨준다.

5월이 왔다. 33년이 지났지만 5월은 여전히 아픈 계절이다.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가 오로지 풍문과 유언비어로만 떠돌던 시대의 한가운데에 소설가 임철우(60)가 있다. 그는 오늘까지 살아남았고, 1981년부터 33년 동안 ‘가열차게’ 광주항쟁과 그 정신에 관한 소설을 써왔다. 그는 오랜 시간 ‘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불려왔고, 그 평가는 결코 과분하지 않다. <봄날>, <백년여관>, <이별하는 골짜기>와 같은 걸출한 작품들이 좋은 본보기다. 먼저 떠나보낸 자와 살아남아서 현재의 시간을 살아내야만 하는 자, 그 모두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서 일제시대부터 제주 4·3항쟁, 6·25 때의 보도연맹 사건, 80년 광주항쟁까지, 무려 우리나라 100년의 역사를 다루며 글을 써온 소설가 임철우. 그는 최근에 ‘가장 임철우다우면서도 임철우를 넘어서는’ 연작소설집 <황천기담>을 내놓았다.

여고 1학년 때 <사평역>이라는 소설을 읽고 작가 임철우를 알게 됐어요.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읽고 쓴 소설이죠. 전남대 동기고, 같은 해에 등단했고, 같은 동네 출신이고, 심지어 생일도 같아요.(웃음) 그래서 주민번호 앞이 똑같고, 뒤도 거의 같죠. 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친구가 전화로 읽어줬는데,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는 첫 행을 듣고 가슴에 ‘쿵’ 하는 진동이 있었어요. 친구는 기분 나빠 해요.(웃음) 좋은 시 망가뜨려 놨다고…. 저는 ‘내가 시를 더 빛나게 만들었다!’ 그러죠.”

97년에 <봄날>이 나왔을 때,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서 어떤 기자가 “언제까지 과거의 이야기, 광주 얘기만 할 거냐”라는 질문을 한 게 생각납니다.
“5·18은, 광주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에요. 그 고통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데, 그게 어찌 과거인가요. 비극의 역사는 우리의 현재예요.”

[사회]“5월 광주, 여전히 현재진행형”

80년 5월, 광주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고, 살아남아서 그것을 증언하는 길을 택한 사람이 있다면 후자를 택하신 셈인데요.
“한을 품고 죽어간 사람들도 고통스럽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고통스럽죠. 그 아픔을 안고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하는 건 결국 산 자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작가는 적어도 자기가 살아온 시대의 문제를 재단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서영채 평론가가 며칠 전 작가 임철우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어요. “죄의식의 밀도와 무게를 가지고 임철우를 말해야 한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작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300년 이내엔 장자크 루소와 임철우밖에 없다.”
“그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서울 친구들에게 말을 하니 믿지를 못해요. 그래서 거짓 없이 진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친형도 광주 31사단 대위였고 계엄군이었어요. 친구들도 군대에 있었고…. 사실 계엄군, 시민군 모두 우리 자신이에요. 10년에 걸쳐서 5권짜리 장편소설 <봄날>을 겨우 완성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거의 미쳐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 소설을 못 끝내고 죽으면 어떡하나… 제발 끝낼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봄날> 쓰고 나서 나는 이제 소설 못 써도 좋다,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 뒤 4년 동안 아무런 글도 쓰지 못했어요. 풀리지 않는 뭔가가 있었죠. 불면증으로 고생하면서 눈물과 술, 분노로 저를 학대했어요. 결국 뇌졸중으로 길바닥에 쓰러졌어요. 그 순간에 깨달았죠. 죽음은 삶과 항상 함께 있었다는 것을….”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살고 있는 가상의 섬 ‘영도’ 이야기로 이어지는군요.
“그래서 <백년여관>을 썼고, 이제 조금 자유로워졌지만, 인간적 부채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백년여관>은 한국 현대사의 희생양이 된 원혼들의 신내림을 받은 작가 임철우가 한바탕 굿판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환상소설’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무녀 조천댁은 이 땅을 떠도는 구슬픈 혼령들을 초대해 굿판을 벌이잖아요. 백년 만에 딱 한 번 찾아온 개기월식일 밤이었던가요?
“그 곳은 산 자와 죽은 자, 기억하는 자와 망각하는 자가 함께 어우러진 환상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공간이죠. 혼령이 산 자를 구해내고, 살아남은 자가 죽은 원혼을 달래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보여주는 ‘한국의 마르케스’라는 평가를 받으시는데요.
“고통이 너무 크면 울음도 안 나오지요. 울음으로도 담을 수 없을 때 ‘허허허’ 웃음이 터지고 미친 사람이 되는 거죠. 하늘에서 피가 쏟아지고 나무도 사람도 동물도 함께 미치는 듯한…. 온 세계가 함께 뒤틀리고 피범벅이 돼서 비명을 지르게 되죠. 인간의 고통을 자연이 함께 조응하고, 죽은 자가 튀어나와서 산 자와 같이 이야기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일어나죠. 마르케스 작품들을 읽으면서 토속적인 발상과 문화가 우리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이번에 나온 연작소설집 <황천기담>에 실린 이야기들은 리얼리즘의 틀을 깨고 나와 설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토해낸, 해학과 익살이 넘치는 타고난 이야기꾼 임철우의 원래 모습이 잘 드러나서 반가웠어요.
“그동안은 힘들게 글을 썼어요. 역사적인 소재가 주는 압력의 하중에 눌려 있다가 어느 정도 벗어난 순간, 내 안에 꾸물대던 상상력이 막 터져나오는 걸 느꼈어요.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썼죠. 이제껏 비통한 마음으로 글을 썼다면, <황천기담>은 통곡이 그친 다음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냐’ 그런 마음으로 썼어요. 그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워 글을 써왔는데, 이번엔 전혀 계획 없이 그냥 내 몸을 내 상상력에 맡기고 재밌게 썼어요.”

학창 시절 가출도 많이 하고 정신과 진료를 받기도 했다면서요.
“저는 원래 도시나 문명, 학교보다는 자연이나 우주와 친화감이 커요.(웃음) 사실 사회적 자폐아에 가깝죠. 원시세계에서 극도의 상상력을 과도하게 가동하며 자라다가 10살에 들어선 도시는 심한 충격이었어요. 학교도 마찬가지였죠. 그 상태로 청년이 되고 5·18을 만났어요. 제 내면은 여전히 너덜너덜한 채로 얼룩져 있어요. 글을 쓰는 행위는 갈가리 찢겨진 내 정신을 봉합하는 행위라고 할까요?”

힘든 시절입니다.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우리 사회가 어찌해야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자기 욕망만 보지 말고, 우리를 생각해야죠. 함께 사는 우리가 힘들다면 나도 결코 행복할 수 없죠. 시대의 삶이 내 삶이 될 때,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고통과 비극적인 시대의 아픈 이야기는 무한한 상상력의 옷을 입고 또 하나의 ‘증언설화’로 거듭 태어난다. 신이 그를 살아남게 한 이유는 산 자들에게 ‘묘약’과 같은 위안을 안겨주고, 한 서린 영혼들이 못다한 증언을 대신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은 아닐까.

<글/사진·박상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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