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 시, 장년세대의 쓸쓸한 풍경

2013.08.27

황지우는 현재 활동하는 시인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대학 시절부터 그의 시를 읽어 왔으니 지난 30여년의 삶을 함께 해온 시인인 셈이다. 젊은 시절에는 그의 날카로운 풍자와 현란한 기법 및 실험 속에 깃든 재치와 통찰을 무척 좋아했다. 나와 같은 세대에게 황지우는 김남주, 박노해와 함께 늘 ‘현재의 시인’이다.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 우리도 우리들끼리 / 낄낄대면서 / 깔쭉대면서 /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 한 세상 떼어 메고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 길이 보존하세로 /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 주저앉는다”

1983년, 젊은 시절에 그가 내놓은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실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한 구절이다. 암울한 군부 귄위주의 시대를 견뎌내야 했던 젊은 세대의 현실을 담은 이와 같은 시로부터 당시 작지 않은 위로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베이비붐 세대란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이들의 삶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변동의 축소판이다. 시청 앞을 지나던 시민들이 국기 하강식을 하는 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속 여고생들이 바로 베이비붐 세대들이다. 1978년 10월 6일. | 경향자료 사진

베이비붐 세대란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이들의 삶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변동의 축소판이다. 시청 앞을 지나던 시민들이 국기 하강식을 하는 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속 여고생들이 바로 베이비붐 세대들이다. 1978년 10월 6일. | 경향자료 사진

황지우의 매력은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면서도 예리하게 시로 표현해 왔다는 데 있다. 1998년, 이제는 장년이 된 그가 내놓은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 실린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우리말을 다루는 그의 솜씨는 여전히 비범하고 탁월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바로 젊은 세대의 자유분방함이 아닌 장년 세대의 쓸쓸한 내면 풍경이다. 1952년에 태어났으니 이 시집을 발표했을 때 그는 마흔 여섯이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황지우 시를 통해 볼 수 있는 우리 사회 베이비붐 세대의 자화상이다. 이 기획을 시작할 때 50대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이 세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 ‘상스럽게 느껴지는 슬픔’과 대면하고 있는 낯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베이비붐 세대란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이들의 규모는 712만명에 달하며 전체 인구의 15%에 육박한다. 이들의 삶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 변동의 축소판이다. 유소년기와 10대에는 산업화 시대를 겪었고, 20대와 30대에는 민주화 시대를 경험했으며, 40대 전후부터는 외환위기 이후의 시대를 살아왔다. 대체적으로 젊은 시절에는 고도성장의 주역이자 수혜자였던 반면, 중년 이후의 시절에는 정리해고 등을 포함해 외환위기의 일차적인 희생자들이었다.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 문학과지성사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 문학과지성사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게 되는 나이는 53세 정도다. 그리고 현재 평균수명은 여자의 경우 84세, 남자의 경우 77세이다. 기대수명을 고려하면, 주된 일자리에서 떠난 다음 지금의 50대에겐 30년 이상의 삶이 남아 있다. 성년이 된 후 지난 30년 삶의 전반부가 마감하고 후반부 30년이 새롭게 열리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의 노후다. 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퇴직 당시 약 3억원의 집과 현금 1억원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자녀가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이 금액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인간적인 노후를 보내기 위해선 세 가지가 중요하다.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고, 65세나 70세 전까지는 일을 하는 게 좋고, 마지막으로 연금 등을 포함해 경제적 삶의 최저선을 확보하는 게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국가·시민사회·개인 차원에서의 대응이 모두 필요하며, 특히 국가와 개인 사이의 일종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국가는 연금 등 노후 복지를 강화하고 사회적 일자리 등 고용 창출에 주력하는 동시에 기업의 노후 일자리 창출의 조건을 조성해야 한다. 더불어 개인 역시 전반부를 끝낸 자신의 삶을 차분히 돌아보고 후반부 생애의 로드맵을 구체화할 수 있는 평생교육, 재취업프로그램, 사회적 공헌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요컨대, 국가의 책임과 개인의 책임을 적절히 결합할 수 있는 노후대책 및 정책이 더 없이 중요한 시점에 우리 사회는 이미 도달해 있다.

“어느 날 나는 혼자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 있을 것이다 /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삶에 대한 연륜이 더해지는 것을 뜻하지만, 동시에 화려했던 젊은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황지우는 그것을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보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다시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이른바 돌직구를 던지고 있다.

100세 시대가 열리는 현재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삶이란 ‘등산’이 아니라 ‘걷기’와도 같다는 점이다. 산을 오르면 정상에서 하산해야 하는 게 등산인데, 삶은 그런 등산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는 길과도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걷고 또 걷는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 동행하기도 하고 또 헤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여행의 경로가 조금씩 변경되면서 새로운 풍경 속을 지나갈 수도 있는 게 바로 삶이다.

이런 기나긴 여행을 하는 게 축복이 아니라 두려움이 되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나 세대에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다. 나이 든 세대가 사회의 부담이 되는 게 아니라 사회의 지혜가 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은 게 나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다. 노후문제에 대한 개인의 책임은 물론 국가의 엄중한 책임이 더욱 발휘되길 바란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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