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와 자본주의 문명의 미래

2013.08.13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예술가에 대해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사적인 체험이 글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알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글쓰기를 자제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인상적일 때 글을 쓸 수밖에 없는데, 오늘 이야기하게 될 예술가가 그런 사람이다.

1990년대 초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모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복학한 그를 만났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러 나눴는데, 예술적 감수성은 물론 사회적 문제의식이 뛰어난 후배이자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란다스의 개>로 그가 감독으로 데뷔했다고 해서 영화를 보러 갔다. 내겐 인상적인 작품이었으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는 연이어 발표한 <살인의 추억>과 <괴물>로 작가적 명성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성취했다. 영화감독 봉준호다.

봉준호가 <설국열차>를 발표했다. 여기서 이 작품을 다루게 된 것은 사회학 연구자인 내가 보기에 더 없이 뛰어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에게 대학시절 전공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화감독의 전공은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장 뤽 고다르 감독은 인류학을, 빔 벤더스 감독은 철학과 의학을, 스파이크 리 감독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고, 봉 감독은 사회학을 공부했다.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7월 29일 열린 영화 ‘설국열차’ 공식 기자회견에서 제작진과 배우들이 질 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봉준호 감독, 메이슨 역 틸타 스윈튼, 커티스 역 크리스 에반스. | CJ엔터테인먼트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7월 29일 열린 영화 ‘설국열차’ 공식 기자회견에서 제작진과 배우들이 질 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봉준호 감독, 메이슨 역 틸타 스윈튼, 커티스 역 크리스 에반스. | CJ엔터테인먼트

막 개봉한 영화라 줄거리를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지구에 빙하기가 닥치고 오직 계속 달리는 열차에 탄 사람들만 살아남는다. 기차는 앞에서부터 계층에 따라 배분되어 꼬리 칸 사람들은 비참하게 살아간다. 식량으로는 단백질 블록만 제공되며, 앞 칸 사람들은 부부를 갈라놓고 아이를 빼앗는 등 횡포를 일삼는다. 꼬리 칸 사람들이 이런 질서에 맞서 폭동을 일으킨다는 내용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설국열차>를 보면서 두 명의 사회학자가 떠올랐다. 한 사람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다. 베버는 모더니티의 사회이론가다. 그는 과학과 관료제의 등장이 현대사회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봤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과학과 관료제가 갖는 양면성이었다. 한편에서 그것은 합리성의 증대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에선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규제함으로써 비인간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관료제가 ‘쇠 우리’(iron cage)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베버의 유명한 통찰이다.

다른 한 사람은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이다. 월러스틴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사회이론가다. 1990년대 초반 그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해 세 가지 전망을 제시한 바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신봉건주의다. 이는 혼란의 시대에 나타나는 분할된 주권, 자급자족적 지역, 지역적 위계제로 이뤄진 세계가 매우 안정된 형태로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 번째 유형은 민주주의적 파시즘이다. 이는 카스트제도처럼 세계를 두 개의 계층으로 나누고 5분의 1 정도의 세계 인구가 그 상위계층에 편입되는 체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 번째 유형은 탈중심화하고 평등주의적 세계질서다. 이는 우리 인간의 집합의지가 구현된 유토피아적 전망인데, 월러스틴이 소망하는 미래이기도 하다.

전문적 영화평론가가 아닌 내가 <설국 열차>에 담긴 영상과 기법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려는 봉준호의 메시지다. 나는 그 메시지의 일단을 베버와 월러스틴의 이론에서 구하고 싶다. 우리 인간은 관료제와 사회 시스템을 발전시켰으나 결국 자유로운 정신과 가치가 규제받게 됐다는 게 하나라면, 그 사회 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인간의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다른 하나다.

영화 설국열차의 포스터. | 모호필름

영화 설국열차의 포스터. | 모호필름

월러스틴 이론에 주목할 때, 특히 그가 자본주의 문명을 전망한 지 20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볼 때, 세계 자본주의는 두 번째 유형과 첫 번째 유형에 가까운 현실을 구체화해온 것으로 보인다. ‘20대 80 사회’ 또는 ‘1대 99 사회’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이 증대하는 두 번째 유형이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부를 집중적으로 소유한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들이 마치 바다의 군도처럼 떠 있는 첫 번째 유형을 관찰할 수 있는 게 오늘날 세계사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지구적 불평등 체제를 강화시킨 가장 중요한 원인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다.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경고는 2011년 가을에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통해 지구적으로 울려퍼졌다. 물론 점령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인류가 신자유주의의 황혼 속에 위태롭게 서 있다면, 황혼에서 새벽으로 가는 길은 구체적인 대안과 그 대안의 일관된 추진을 요구한다. 탈중심화하고 평등주의적 세계질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기획이다.

<설국열차>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계사회에 대한 봉준호의 문제의식이다. 개인은 시스템의 부속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게 열차라는 ‘쇠 우리’의 사회를 유지시키는 논리다. 이 시스템 바깥으로 나가려는 시도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지속가능하고 실현가능한 새로운 사회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설국열차>는 던지고 있다.

이러한 단상들은 물론 나의 사회학적 감상일 뿐이다. 예술작품은 사회과학적 사유의 그물망으로 포획할 수도 없고 또 포획해서도 안 된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다른 것이라고 베버가 이야기했듯이, 예술과 사회과학은 서로 개입은 할 수 있되 서로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설국열차>는 봉준호의 예술적 영감과 사회적 문제의식이 서로를 훼손하지 않은 채 탁월하게 결합돼 있다.

<설국열차>가 내게 특히 반가웠던 것은 봉준호의 영화에서 관찰할 수 있는 어떤 변화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이 한국적 현실에 주목한 것이라면, <마더>와 <설국 열차>에서 그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과 세계사회에 대한 전체적 전망으로 이동한다. 이탈리아를 생각하면 페데리코 펠리니가, 스웨덴을 생각하면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먼저 떠오르듯이, 한국 하면 봉준호가 먼저 떠오르는 그런 영화감독으로 더욱 성장하길 바란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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