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지 마세요, 자식 몫의 인생이 있어요

2013.06.18

서울 홍제동 아파트단지 상가에서 김밥과 반찬을 파는 임숙자씨(60)는 맛뿐만 아니라 인심이 좋아 늘 동네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자식농사를 다 지어서인지 요즘은 더러 가게 문을 좀 늦게 열 때도 있어 아침에 김밥을 찾는 어머니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지만 말이다. 옆 점포에서는 남편 황인호씨(61)가 옷수선을 한다. 황씨는 재단일만 40여년을 해왔는데 맞춤양복점을 운영하다 벌이가 줄어들자 옷수선으로 전업했다. 이곳에서 15년 전에 함께 일을 시작한 이들 부부는 김밥을 말고 옷수선을 하면서 남매를 키워냈다. 지금은 남매 모두 출가했다.

꿈 많은 문학소녀였던 임씨는 여고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남매를 낳으면서 일과 육아를 놓고 선택해야 했다. 요즘의 여느 직장 맘처럼 임씨 또한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열심히 자식 뒷바라지에 나섰다. 아들은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라 아줌마 인생의 희망이었다. 이들 부부는 남아선호 세대여서인지 딸보다 아들 교육에 집중했다. 아들은 부부의 희망대로 공부를 잘해주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학교일에도 열심이었고 어머니회장도 도맡다시피 했다. 선생님들도 주기적으로 찾아가 상담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 치맛바람이 매우 거셌다. 임씨는 아이가 기죽지 않도록 세세하게 신경을 많이 썼다. 아들은 집 근처 중학교에 다녔는데 반에서 줄곧 1~2등을 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여느 엄마들처럼 임씨 역시 점점 욕심이 났다. 이왕이면 ‘명문’ 소리를 듣는 고등학교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명문으로 꼽히는 B고교 근처에 고등학교 배정을 받기 1년 전부터 집 하나를 얻어 위장전입까지 해놓았다. 엄마의 열성대로 아들은 B고교에 배정받았다. 아들이 다닌 중학교에서 혼자 그 고교에 배정받았다.

고2 때 뒤늦은 사춘기로 방황한 아들을 키우느라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임숙자·황인호씨 부부. | 자녀경영연구소 제공

고2 때 뒤늦은 사춘기로 방황한 아들을 키우느라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임숙자·황인호씨 부부. | 자녀경영연구소 제공

B고교에서 아들은 반에서 한 자릿수 등수에도 들지 못했다. 첫 시험에서 반 11등에 그친 아들의 성적표에 실망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들도 열심히 해서 1학년 말에는 반 석차를 7등까지 끌어올려주었다. 임씨는 좀 더 하면 5등 이내도 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과외 뒷바라지에 나섰다. 그때 시작한 게 김밥장사였다. 하지만 2학년 2학기에 접어들자 아들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중학교 때 아들이 사춘기를 무사히 넘기게 하려고 아버지 황씨는 휴일이면 아들과 운동을 했다. 그런데 뒤늦게 사춘기의 방황이 찾아온 것이다. 중학교 때 혼자 고등학교를 배정받아 친한 친구도 없었고, 학교에 적응하지도 못한 게 한 원인이었다.

아들은 공부를 안 하는 건 물론이고 툭하면 싸움질을 하더니 같은 반 학생의 눈까지 찢어놨다. 치료비를 대주며 겨우 무마했다. 그때는 자식이 원수처럼 느껴졌다. 아들은 싸움을 하다 손가락까지 부러졌다. 하루하루 사고의 연속이었고, 너무 속을 썩였다. 수능을 봤는데 결과가 기막혔다. 일말의 기대마저 무너졌다. 그때만 해도 그 학교에서 중간 정도만 해도 웬만한 서울 중위권 대학은 갈 수 있었다. 아들은 강원도에 있는 대학교의 생명공학과에 들어갔다. 아들은 자기보다 공부 못하던 애들도 서울에 있는 중위권 대학교에 갔다며 재수를 하겠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주변에서 정신 못차린 애들은 재수해도 안 되더라. 제대로 공부할 의지가 없다면 그냥 다녀라”며 말렸다. 대학에 가서도 아들은 부모의 기대와 달리 공부에는 뜻이 없었다. 한 번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는가 하면 귀걸이를 한다며 여동생 귀걸이까지 가져갔다. 술에 취한 아들과 옥신각신하다 현관 유리를 깨뜨리기도 했다. 툭하면 용돈을 달라고 했다. 아들에게는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였다. 정신 못차리는 아들을 아버지가 군대에 자원 입대시켰다.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응급처방이었다.

뜻밖에도 아들은 군대에 가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지방대였지만 생명공학과를 다닌 아들은 약 조제과에 배치를 받았다. 거기서 군의관을 만났는데 아들에게는 인생의 ‘귀인’이었던 것이다. 강남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출신의 그 군위관은 아들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제대 후 강남에 있는 자기네 빌딩 CD 판매점에서 일해볼 것을 제안했다. “아들은 거기서 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눈을 떴다고 해요. 투자하는 것도 직접 보게 되고 사람들이 모여서 재테크하는 얘기도 들으면서 세상을 배워나가게 됐다고 해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하더군요.” 뿐만 아니라 그 의사는 자신의 서재 책을 읽게 했는데 아들은 그 책에서 자신의 적성을 찾았다고 한다. 부동산에 적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황하는 아들에게는 멘토 같은 존재가 되어준 셈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 황씨는 아들에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라고 했다. 학원도 안 다녔는데 아들은 4개월 만에 땄다. 또 부동산에 관심 있다면 감정평가사 자격증도 따라고 조언했다. 아들은 1차 시험에 합격했다. 2차 시험을 볼까 하다가 그때 나이가 29살이어서 좀 늦으면 취직을 못할 거 같았다. 아들은 대기업 취업부터 하기로 맘을 먹었다. 모 대기업에 들어가 자산관리부서에서 일을 하게 됐다. 이제는 고등학교 때 그렇게 속을 썩이던 아들이 아니었다. 어머니 임씨는 “오히려 좋은 대학 나온 친구들보다 더 잘 풀리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주위에서 명문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단다.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 게다. 올해 34살 된 아들은 결혼을 해서 아들을 두고 있다. 임씨가 보기에 행복하게 산단다.

임씨는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면서 마치 살얼음 걷듯 마음고생이 심했다. 엄마가 아들에게 공부 욕심을 내면 낼수록 아이는 공부와 멀어져갔다. 임씨는 “아들이 중·고등학교를 힘겹게 보낸 것은 다 엄마의 욕심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토로한다. “명문 학교, 공부를 세게 시키는 곳에 넣어두면 그래도 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중학교 때 잘했으니 명문 소리 듣는 고등학교에서도 잘 버텨주지 않을까 하는 엄마의 욕심이 문제였어요.” 임씨는 “뜻밖에도 엄마가 마음을 내려놓으니 아이의 인생은 풀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참으로 자녀교육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때로는 집착하면 할수록 어긋나는 게 삶의 이치이기도 한데, 자녀교육에서도 이율배반의 법칙이 적용되곤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때로는 자녀를 방관하듯이 내버려둘 때 공부든 일이든 더 잘 풀릴 수 있다는 말이다.

아들과 달리 임씨의 딸은 공부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대에 들어갔는데 만족하며 다녔다. 부모는 공부를 못해 전문대를 나오면 어떻게 사람 구실할까, 시집은 제대로 갈까 고민했는데 건실한 신랑을 만나 결혼을 했단다. 임씨가 보기에 남편 사랑 받으면서 재미있게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손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식 걱정 하지 않는 부모가 없어요. 그럴 때면 아이들 키우던 시절이 생각나고 때로는 그때가 그리워질 때도 있어요. 자식 걱정 하는 엄마를 보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주고 싶지만 자식을 키울 때는 그 말이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김밥아줌마는 엄마가 욕심을 버리고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며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그 힘든 세월을 통해 깨달았단다. 그래서 자녀로 인해 마음고생하는 엄마들에게도 이런 애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아이마다 자기 몫의 인생이 있는 거라고….” 자식농사는 부모가 필사적으로 달려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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