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고 귀여운 뱀 연하우표

신동호 경향신문 논설위원
2012.12.18

생김새는 징그럽고 움직임은 혐오스럽다. 차갑게 노려보는 눈과 날름거리는 두 가닥 혀는 소름마저 돋게 한다. 인간의 영생을 앗아간 사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창세기 신화’에서 이브를 유혹해 인간을 낙원에서 쫓겨나게 만들었고, ‘길가메시 신화’에서는 인간이 먹기로 한 불로초를 훔쳐 먹었다. 태초부터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싫었고, 지금도 애완용이나 식용(?)으로 기르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한 공간에서 공존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곧 맞이할 2013년은 계사년(癸巳年), 뱀의 해다. 혐오와 적대의 대상이던 뱀에게 잠시나마 최고의 찬사를 쏟아내는 때다. 뱀은 ‘저주의 표적’에서 ‘지혜의 영물’로 새롭게 태어난다. 정반대의 얘기가 만발할 것이다. 뱀은 제주도를 비롯한 여러 토속신앙 속에서 숭배의 대상이다. 뱀의 탈피는 신성불사의 신비로운 능력으로, 그리고 묵은 허물을 벗고 거듭 나는 교훈으로 상찬된다. 구렁이의 경우 집안 살림을 지키고 흉사를 알려주는 수호신 반열에 오른다. 수컷이 두 개의 성기를 갖고 있는 데다 긴 시간 교미를 지속하는 생식 습성으로 인해 정력의 상징이자 강정식품으로 마초남들의 군침을 돋운다.

지난 12월 3일 발행된 뱀 연하우표 소형시트.

지난 12월 3일 발행된 뱀 연하우표 소형시트.

사실 뱀은 인간이 혐오하고 무서워할 게 아니라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생김새나 습성이 혐오감을 주기는 하지만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이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성질이 온화하여 자기 방어 이외에는 사람을 공격하는 법도 없다. 맹독을 가진 뱀은 얼마 안 되고 그 독도 자기 보호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인간이 뱀을 본능적으로 무서워하는 까닭을 진화 과정에서 잠재된 의식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뱀은 공룡이 번성하던 중생대 백악기에 도마뱀과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칼 세이건은 저서 <에덴의 용>에서 우리가 상대방을 조용히 하게 하거나 주의를 이끌고자 할 때 보편적으로 내는 ‘쉿’ 소리가 파충류의 쉭쉭대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데 주목했다. 뱀에게 그런 소리를 내는 기능이 남아 있다는 게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면 인간에게 남아 있는 공포와 악몽도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게다. 매우 특이하게 진화한 파충류인 뱀은 이렇듯 인간이 원시포유류이던 시절부터 변화무쌍한 관계를 맺어온 존재였던 것 같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12월 3일 발행한 연하우표는 뱀에 대한 이런 잡다한 생각을 일거에 날려버린다. 뱀 그림을 이리도 예쁘고 귀엽고 정겹게 느끼기는 아마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분명히 뱀이다. 뱀 몸통의 흰색 부분과 바탕에 있는 눈(雪)의 결정은 형광잉크로 인쇄돼 있어 그런 느낌을 배가시킨다. 놀라운 이미지를 창조한 디자인의 마술이라고 할 만하다.

뱀 연하우표는 띠를 나타내는 열두 동물 연하우표의 최종판이다. 우정사업본부는 2001년 말을 시작으로 2002년 양, 2003년 원숭이, 2004년 닭, 2005년 개, 2006년 돼지, 2007년 쥐, 2008년 소, 2009년 호랑이, 2010년 토끼, 2011년 용에 이어 올해 뱀 연하우표 발행을 마지막으로 시리즈를 완결지었다. 연하우표는 매년 연말에 발행하기 때문에 우표는 다음해의 동물을 담았고, 별도로 연도를 표기하지 않았다. 이번 연하우표는 뱀 우표와 함께 설 민속놀이인 제기차기 우표가 한 시트를 이루고 있다. 2장의 우표로 구성된 이 소형시트 외에도 상품권 형태의 10장짜리 전지로도 발행해 연말연시 선물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우정사업본부는 뱀의 해인 2013년은 풍요와 불사의 상징인 뱀처럼 풍성하고 건강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뱀 연하우표를 발행했다고 한다.

우정사업본부가 2001년 말을 시작으로 양·원숭이·닭·개·돼지·쥐·소·호랑이·토끼·용(위 왼쪽부터) 등 열두 동물 연하우표를 발행한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우정사업본부가 2001년 말을 시작으로 양·원숭이·닭·개·돼지·쥐·소·호랑이·토끼·용(위 왼쪽부터) 등 열두 동물 연하우표를 발행한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신동호 경향신문 논설위원 hu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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