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박지원씨 사퇴요구 정당성 없지만 결국 물러날 것”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사진·김석구 기자
2012.11.27

안경환 문재인 캠프 새정치위원장

요즘은 ‘반전’이 대세다. 고급스러운 옷차림에 저렴한(?) 모습으로 춤을 추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흔들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올 초까지 정치와 거리가 멀어 보이던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이해찬·박지원씨 사퇴요구 정당성 없지만 결국 물러날 것”

안경환 교수(64·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도 반전의 대가다. 소년처럼 해맑은 얼굴에 늘 온화한 표정을 짓지만 신념과 원칙만은 누구보다 강직하다는 평을 듣는다. 보통 사람들에겐 어렵고 딱딱하기만 한 법을 그는 마치 시처럼 부드럽게 해석하고, 영화나 문학과 관련한 법 이야기를 친근하게 전달한다. 국가인권위원장 시절에는 이명박 정부의 탄압에도 끝까지 인권위와 직원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다가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란 말을 남기고 사표를 던졌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새로운정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되었을 때도 그랬다.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다지만 대부분 그런 자리에 위촉되면 “막중한 사명감을 느낀다, 당원 모두와 함께 우리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말할텐데 그는 “젊은 국민은 민주당에 대해 분노한다. 그들이 왜 우리나라 정당정치에 냉소하게 됐는지 성의 있는 성찰과 반성이 아쉽다” “안철수 후보를 어떻게 민주당에 입당하라고 요구하느냐” 등의 쓴소리로 인사를 대신했다.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란 책을 펴내며 셰익스피어 대표작 12편을 법률가의 시선으로 해부한 책을 쓰며 정년을 기다리던 그가 왜 갑자기 정치판에 뛰어들었는지, 반전의 연속인 단일화는 어떻게 예상하는지 궁금해 안 위원장을 찾았다. 인터뷰 장소도 당사나 연구실이 아닌 방배동 자택이었고, 그는 청년처럼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새 자리에 대한 인사보다 단일화 문제부터 물어봤다.

새정치위원장으로 위촉되신 후 ‘단일화’를 그토록 강조했는데 단일화 첫 협상 하루만에 기류가 바뀌었다.
“결혼에 비유하자면, 기본적으로 사랑하고 호의를 갖고 결혼을 약속하고도 예물이나 예단 등 세부적 조건을 따지다보면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결혼도 당사자보다 양가 부모, 심지어 친척들이 더 말이 많지 않은가. 이럴 때는 보다 더 형편이 나은 쪽에서 마음을 열어주는 자세가 옳다. 문재인 후보도 측근들 때문에 안 후보가 속상했다면 사과하겠다고 했다. 단일화만이 아니라 모든 협상에는 애로와 난관이 있게 마련이다. 근본적인 목표와 사명감을 공유하면 풀리게 돼 있다. 기본적으로 두 후보는 서로를 신뢰한다고 하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단일화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 아니까 곧 오해를 풀고 단일화 협상을 하리라 믿는다.”

안 후보 측에서는 문 후보 측에서 의도적으로 안 후보 양보설을 흘렸다고 하고, 문 후보 측에서는 안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니 국면전환용이라고 한다. 또한 여권에서는 야합이라고도 한다.
“일단 안 후보는 기존 정당정치의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받아들이는 입장이니 서로 오해나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 또 야합이란 말은 맞다. 야권 성향끼리 합치는 것이 야합이 아닌가.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호의를 갖고 밀실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공공연하게 국민 다수의 뜻을 존중해 하는 단일화가 어떻게 비난받을 일인가.”

아름다운 단일화가 가능할까.
“당연히 단일화는 이뤄진다. 두 후보 모두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합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되건 상대방이 되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도 좋다는 마음이면 지지하는 세력층이 합쳐져 상승효과를 낼 것이다. 중립적이거나 수동적인 국민들도 미래의 비전이 있다고 판단되면 지지를 보일 것이다. 단일화 협상에서도 주요 의제가 두 진영의 권력 배분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융합하는 것이다.”

문 후보 측에서는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다 하고, 새누리당이나 안 후보 측에서도 주요 자리 영입설이 오갔다는데, 왜 문 캠프를 선택했나.
“문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렵에 처음 만났다. 좋아하고 신뢰하는 분이다. 안 후보는 개인적인 친분은 깊지 않지만 새로운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분이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생각은 박근혜 후보가 절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래 밖에서 두 후보간의 단일화를 돕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데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상승효과를 내기 위해 고민 끝에 새정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정책 합의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새정치위원회는 그동안 양쪽이 제기한 정치혁신 문제를 검토해, 현실적이고 단계적으로 실천할 로드맵을 만들 것이다. 또 단일화 논의에 걸림돌로 지적됐던, 민주당 내부 개혁에 대해서도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낼 것이다.”

새정치위원장의 하루 일정은 어떤가.
“회의는 분야별로 이뤄지고,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한다. 중간중간 보고를 받고, 자주 문 후보와 교감한다.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해서 자리 지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

왜 인터뷰나 칼럼마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절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소신 때문에 정책마다 크게 실패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국민을 재산 가진 자와 재산 없는 자로 분열시킨 장본인이다. 박 후보의 지지층이 MB 지지층과 유사하니 그 노선이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 청년들은 기본적으로 가난한 존재다. 부모 상속을 받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학등록금 걱정부터 구직난까지 가난에 허덕인다. 이미 입법부를 장악한 새누리당 정권에 행정부까지 주어지면 이런 분열과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대통령이나 후보 개인보다 새누리가 지향하는 정책이나 생각이 문제다. 박 후보로 상징되는 기득권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가난한 청년층이 더욱 희망을 잃고 좌절해 전 국민이 가난하게 살 것이다.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에 국민이 분노하고 나라가 흔들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새정치위원장 취임사에서 민주당과 의원들에게 매서운 지적을 해서 파장이 컸다.
“파장이 컸다면 나의 결단이 긍정적인 셈이다. 평생 정치권에 가지 않겠다는 소신을 깨면서까지 갔는데 무슨 효과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나라의 위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위기의식을 못느끼는 것 같았다. 이제 계파 기득권, 지역 기득권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또 젊은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정쟁은 심화됐고, 많은 계파들이 담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젊은 사람들은 민주당의 모습을 ‘정치적 후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슈도 미래 중심적으로 이동하지 못했다. 정수장학회와 역사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나, 현재의 삶이 힘든 젊은이들에게는 그 역시 과거의 문제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안 후보의 등장과 그를 지지하는 이들의 동력과 요구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변화나 개혁의 조짐이 보이나.
“당장 바꾸기는 어렵다. 조만간 정치개혁 문제와 함께 프로그램이 나올 것이다. 내가 마치 이해찬·박지원씨를 향해 당장 물러나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상 이 대표는 선대위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내대표 자리도 지금 공석으로 두기 어렵다. 당 지도부가 물러난다면 대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두 분을 야당 역사에 결정적 기여를 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정치쇄신의 걸림돌이라고 일각에서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분들에게 갑자기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다만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물러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정치를 혐오하던 문 후보, 그리고 정당과 조직이 없는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치혁신과 성공적인 국정수행이 될까. 이렇게 될 경우 국정운영을 잘할 수 있을까.
“대통령 후보들의 경우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정당, 세력이 있는 가운데 경선 등을 통해 픽업(선택)된 것이다. 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두 후보가 구체제에 있지 않았던 점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다.”

평소 페미니스트로 불릴 만큼 여성들의 권익에 대해 호의적이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 딸이 탄생한 날이라고도 했는데 요즘 화두가 되는 ‘여성 대통령’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책상에 <미즈 프레지던트>라는 책도 놓여있던데….
“대통령직에 남녀 차별은 안 된다. 여성 대통령의 탄생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여성의 미덕, 즉 부드러움과 포용성도 인정한다. 그러나 특정인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박 후보를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새누리당 대표라는 것, 둘째 개인적 행보다. 박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의 공은 다 받으려 하고 과는 다 부정한다. 또 공약을 살펴봐도 그 어떤 공약도 그늘진 곳을 책임지고 성의있게 보듬으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이해찬·박지원씨 사퇴요구 정당성 없지만 결국 물러날 것”

새정치란 무엇인가.
“민주국가에서 정치란 나라 주인인 국민에게 희망과 일상을 챙겨주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며 갈등이 생길 때 소외계층을 보듬어주는 것, 국민의 인권과 복지를 챙기는 것이 정치다. 구체적 정책과 시행에서 정부는 국민을 탄압해서도 안 되고, 국민을 이간질해서도 안 된다. 이 정부와 새누리당은 앞선 사람만 끌어줄 뿐 처진 사람에게 다가서는 의지가 약하다. 이런 정부가 5년 더 이어진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아무리 후보들이 새정치를 주장해도 더욱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의식이 아닌가. 말로는 개혁과 새정치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학연, 지연, 그리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더 따진다.
“지연과 학연에 연연하는 유권자의 정서는 그것을 능가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그동안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엔 후보들의 정책이 다 비슷비슷하다고는 하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다. 경제민주화, 복지 등 정책이 비슷한 것은 시대의 방향이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걸 시행하려는 진정성과 능력, 진심이 보이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최근 잡지에 국가인권위원장 시절의 회고록을 연재하기도 했다.
“인권위원장으로서 치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전직 인권위원장으로서 부끄러움을 토로한 것이다. 이 정부의 인권위에 대한 탄압이 도를 넘고, 직원들이 자리를 잃어 임기를 몇 달 남기고 떠났다.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내 믿음과 주장은 양쪽에서 다 배척받았다. 특히 인권위원장 자리는 격려보다는 견제와 비판을 항시 받으며 살아야 한다. 나를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과도 나중엔 껄끄러운 관계가 됐다. 인권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 학자로서 여유롭고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세상은 오로지 나를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인권위원장, 이명박 대통령과 맞장 뜬 투사로 기억하고 끊임없이 이 사실을 환기시켰다. 빈번하게 들어오던 언론의 기고 요청과 강연 청탁도 딱 끊겼다. 무엇보다 재임 시절에 촛불집회 등의 문제 이후에 계속 기구가 축소되고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는 자책감이 나를 심히 괴롭혔다.”

새정부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새정치위원장은 45일짜리 단기 프로젝트 책임자일 뿐이다. 넓은 의미의 정치이긴 하지만, 난 정당인은 아니다.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 법과 문학을 더 연구할 계획이다. 아름답게 정년을 마무리하고 싶다.”

단일화 문제와 인권위원장 시절의 아픔을 토로할 때는 살짝 매서운 표정을 짓던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 다시 소년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가 늘 주장하듯 문학이나 음악처럼 아름다운 정치가 가능할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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