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네타 와이너리 뿌리는 500년 이어온 농업

2012.11.13

플라네타는 1995년에 설립된 비교적 신생 와이너리다. 와인을 만들 때 전통과 혁신, 친환경 농업을 강조하고 있다.

시칠리아 최고의 휴양지 타오르미나는 그리스 시대에 건설된 아름다운 도시다. 일찍이 모파상은 이 도시를 극찬했다. 에트나화산에서 북쪽 메시나를 향해 A18고속도로를 따라 30여분을 달리면 해발 200m가 넘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건설된 타오르미나 구도시에 도착할 수 있다.

플라네타 와이너리의 울모 포도원. 멀리 아란치아 인공호수에 수몰된 로마 유적이 보인다.

플라네타 와이너리의 울모 포도원. 멀리 아란치아 인공호수에 수몰된 로마 유적이 보인다.

호텔에서 나와 타오르미나의 상징 고대 그리스 노천극장을 찾아갔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인에 의해 건설된 극장은 후에 로마인들이 재건해 지름이 109m나 되는 웅장한 반원형극장이 되었다. 지금도 여름철에는 각종 공연이 열린다. 찬란한 태양 아래 선홍색 부켄빌레아와 분홍색 유도화가 현란하게 피어있다. 흰빛 아라비안 재스민 꽃의 향기가 바람에 날리는 담장 너머에는 아름다운 해안선이 펼쳐진다. 코발트색의 이오니아해가 멀리 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에트나화산과 조화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일찍이 괴테는 이 장면을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관”이라고 감탄했다.

겨울에도 해수욕하는 천혜의 휴양지
극장 방문을 마치고 영화 <그랑 블루>의 배경이었던 아름다운 두 해변, 마차로와 지아르니디 낙소스를 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는 해발 200m 높이에서 해변으로 내려간다. 백사장에 설치된 화려한 색깔의 파라솔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투명한 쪽빛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타오르미나는 겨울에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축복받은 천혜의 휴양지다. 밤의 타오르미나는 여행객에게 또 다른 낭만을 선사한다. 아련한 중세의 거리를 따라 ‘4월9일 광장’에 도착하면 고깃배와 요트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이오니아해를 볼 수 있다.

영화 <그랑블루>의 배경인 타오르미나의 지아르디니 낙소스 해변. 투명한 이오니아해가 아름답다.

영화 <그랑블루>의 배경인 타오르미나의 지아르디니 낙소스 해변. 투명한 이오니아해가 아름답다.

저녁에 시칠리아의 전통음식을 맛보기 위해 광장 인근에 있는 다 로렌조 식당을 소개받았다. 와인리스트에 있는 사시카이아(슈퍼토스칸 와인) 2005빈티지의 파격적인 가격을 보고, 주저 없이 한 병을 주문하였다. 와인의 색깔과 향을 관찰하고 테이스팅하자 주위 테이블의 유럽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동양인을 관찰하였다. 명불허전, 적절한 타닌과 산도, 바닐라, 블랙커런트, 후추의 복합적인 풍미가 슈퍼 토스칸의 스타일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강한 제비꽃 향에서 좀 더 숙성이 필요함을 느꼈다.

타오르미나를 떠나 이탈리아 본토 칼라브리아가 지척에 보이는 섬의 북동쪽 끝 메시나항을 향해 달렸다. 페리를 이용하여 말바시아로 유명한 에올리안 군도를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아쉽게도 포기하기로 하였다. 메시나에서 북부해안 고속도로 A20번을 타고 밀라초라는 조그마한 항구에 도착했다. 말바시아는 그리스인이 전파한 고대 포도 품종이다. 스위트 와인인 말바시아 파스티토는 햇빛에 말바시아를 건포도에 가까운 상태로 말려 만든다. 은은한 호박색 빛깔에 살구와 레몬의 풍미가 매혹적인 최고의 와인이다. 에오리안 군도에 있는 살리나 섬은 와인뿐만 아니라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칠레의 문학가 파블로 네루다의 망명실화를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의 배경이 바로 살리나 섬이다. 이오니아의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젊은 우체부와 네루다의 우정과 사랑이 눈앞에 아련(?)하다.

플라네타 울모 와이너리에는 500년 된 농가를 개조한 와인 박물관이 있다.

플라네타 울모 와이너리에는 500년 된 농가를 개조한 와인 박물관이 있다.

영화 <시네마천국>의 배경지, 체팔루
밀라초에서 다시 A20번 고속도로를 타고 팔레르모 방향으로 150km를 달려 체팔루에 도착했다. 영화 <시네마천국>의 배경지로 유명한 이 작은 해안도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했다. 라로카라는 거대한 바위산이 시 전체에 왕관을 씌운 듯한 모습이 흥미로웠다. 자동차 출입이 금지된 중세의 고색창연한 골목을 걸어서 두 개의 탑을 가진 12세기 노르만 양식의 두우모 광장을 거쳐 해변까지 가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하다. 좁은 골목 베란다에 빨래가 널려 있는 모습, 결혼 전 신랑 신부가 해변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하는 것을 보니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 정겨웠다.

플라네타 가문, 500년 이상 농업 종사
SS624번 도로를 따라 먼저 도나푸카타의 콘테사 엔텔리나의 광활한 포도원을 촬영하고, 남쪽 인근 삼부카 디 시칠리아에 있는 플라네타 와이너리를 찾았다. 내비게이션 안내와 지도가 일치하지 않아 몇 번을 헤매다, 운 좋게 플라네타에서 일한다는 노인을 만나 입구까지 안내받았다. 계획보다 늦은 방문이었지만 플라네타 가문의 딸인 키아라 플라네타가 직접 반갑게 맞았다. 플라네타는 1995년에 설립된 비교적 신생 와이너리다. 와인을 만들 때 전통과 혁신, 친환경 농업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시칠리아 전 지역 여섯 군데에 총 350ha의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는 국제적인 와이너리로 명성을 얻고 있다.

타오르미나 그리스극장에서 바라본 이오니아해의 아름다운 해안선. 멀리 에트나 화산이 흰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타오르미나 그리스극장에서 바라본 이오니아해의 아름다운 해안선. 멀리 에트나 화산이 흰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뿌리는 삼부카와 멘피를 중심으로 500년이상 농업에 종사해온 플라네타 가문이다. 17대에 이른다. 필자가 방문한 와이너리는 플라네타의 본사에 해당되는 울모(Ulmo) 와이너리로 93ha 포도원에서 토착품종 그레카니코와 피아노 그리고 샤르도네로 화이트 와인, 네로 다볼라와 맬롯으로 레드와인을 생산한다.

와이너리는 아름다운 인공호수 아란치오 언덕에 위치해 있는 단층의 주황색을 띤 오랜 농가 건물을 개조하였다. 올리브 나무가 인상적인 포도원과 호수 가까이에 있는 와인셀라를 구경하고 준비된 와인을 시음하였다. 총 7종류의 와인이었는데 이 중 울모에서 재배한 그레카니코 100%로 만든 알라스트로는 옅은 밀짚색깔, 열대 과일향에 미네랄과 적절한 산도가 가미되어 청량감이 일품이었다. 일과시간이 지나 피곤해 보였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진지하게 와인을 설명하는 키아라 플라네타 여사의 열정이 더 향기로웠다. 필자가 집필했던 <와인 & 와이너리>를 방문기념으로 증정하자 500년 된 농가를 개조하여 만든 와인 박물관에 진열하겠다고 한다. 박물관은 플라네타 가문이 줄곧 머물렀던 곳에 만들어졌다. 필자도 언젠가 다시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로마 유적이 수몰되어 있는 아란치오 인공호수를 뒤로하고 플라네타를 떠날 때 기온은 여전히 37도를 넘었지만, 마음은 시원했다.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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