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으로 몰아붙이는 ‘괴담’

동서고금에 괴담(怪談)이 항상 떠돌았다. ‘무섭고 괴상한 이야기’라는 뜻의 괴담은 <전설의 고향> 같은 드라마나 영화의 주요 소재였다. 아래는 1970년 4월 어느날 경향신문 하단에 실린 ‘이조괴담’ 영화 광고다. 조선시대에 여인을 덮치는 흑고양이를 다룬 영화다. 옛날 괴담의 주인공은 요괴나 귀신들이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괴담 주인공은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를 존재로 바뀐다. 지금 30~40대에게 익숙한 화장실 괴담이나 택시 괴담, 아파트 엘리베이터 괴담 같은 것들은 과학기술 발전 시대에 인간 소외나 인간 간 불신을 반영한다는 평도 있다. 때론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괴담이 유행했다. 중국에 신혼여행 갔다가 팔다리가 잘린 채 구걸을 하고 있다는 ‘중국 신혼여행 괴담’이나 놀이기구에 끼여 머릿가죽이 벗겨져 죽었다는 ‘놀이공원 괴담’이 그것이다. 여기선 사람이 주인공이다.

[정동늬우스]‘괴담’으로 몰아붙이는 ‘괴담’

경향신문에서 ‘괴담’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게 영화다. 그 중에서도 많은 것은 <여고괴담> 시리즈다. <여고괴담>도 귀신이 등장하지만 억압적인 교육현장을 주무대로 하고 있다.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건 말건 지금의 괴담은 현실을 반영하는 셈이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괴담이라는 단어는 점점 현실세계에 발을 붙인다. 전근대와 미개를 표상하던 괴담의 주인공도 죽은 미국소부터 ‘투자자-국가소송제(ISD)’라는 국제사법제도까지 다양해졌다. ‘괴담’을 만들어내는 주체도 작가나 이야기꾼에서 정치인, 언론으로 넓어졌다. 지금 괴담은 일종의 ‘정치용어’가 되었다.

김황식 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위 종합 정책질의에서 전날 박원순 서울시장의 ‘FTA 재검토’ 주장을 반박했다. 김 총리는 “서울시가 한·미 FTA로 큰 피해를 보는 것과 같은 괴담을 내용으로 성명을 발표하는 게 가능하냐”는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의 물음에 “정확한 사실관계와 법적 판단에 따라 건설적 취지로 하는 것은 좋지만, 잘못 이해하거나 왜곡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2011년 11월 10일자, 이 대통령 “여야 FTA 논쟁은 정치 논쟁”)

‘괴담’이라는 ‘괴담’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언론과 정치권이다. 합리적 비판과 의심, 우려를 일단 괴담으로 치부하는 맹목의 행태를 보인다. 먼저 보수언론이 ‘괴담론’의 불을 지핀다. ‘터무니없는 ISD 괴담으로 국민 현혹 말라.’ 중앙일보의 11월 3일자 사설 제목이다. 지난 11월 7일엔 검찰이 한·미 FTA를 비판하는 담론을 ‘괴담’이나 ‘유언비어’로 규정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유포하면 구속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하루 만에 처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괴기스런’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조·중·동이 쓰면 정치권이 받고 이어 검찰이 치고나가는 ‘괴담’ 3박자는 이 정권의 율동방식 중 하나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실로 ‘괴담 공화국’이라고 부를 만큼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와 음모론에 휘둘려 왔다.”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3월 29일 일본 원전사고 때 라디오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는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것은 ‘신뢰’라는 우리의 소중한 ‘사회적 자본’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하는 ‘반(反)사회적 범죄’”라고도 했다.

2008년 5월 촛불집회 때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제기한 ‘인터넷 괴담’을 풍자한 김용민 만평.

2008년 5월 촛불집회 때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제기한 ‘인터넷 괴담’을 풍자한 김용민 만평.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3월 21일 “일본의 방사성 물질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의 방향과 상관없이 우리나라까지 날아올 수는 없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3월 29일 서울 등지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2008 촛불 때 ‘괴담’ 담론은 절정이었다.

동아일보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논란이 커지자 지난해 5월 9일자 1면에 과학계 전문가들의 설명을 동원해 ‘광우병 괴담, 근거 없는 과장 많다’고 보도했다. (중략) 정부 관계자들의 기자회견을 다룬 5월 3일자에선 ‘미국산 쇠고기 괴담 근거 없어’ ‘한국인 유전자 광우병에 취약하다 단정 못해’라는 제목으로 정부의 주장을 상세히 전했다.(경향신문 2009년 6월 8일자, 조선·동아일보 ‘미디어 공세’ 왜? / 동아, 균형감 상실 ‘정권 편향’)

동아일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3월에는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광우병 괴담’의 유포자 중 하나 아닌가.
천안함 사건 때도 정부와 입장이 다른 주장은 괴담과 유언비어로 몰아붙였다. 인간어뢰가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해군 관계자의 말을 보도한 조선일보는? 괴담을 유포한 또다른 배후세력은 이렇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향신문은 최근 검찰의 FTA 괴담 구속수사 방침을 두고 이런 사설을 썼다.

천안함 사건 당시 조선일보가 보도한 북한의 ‘인간어뢰’ 개념도.

천안함 사건 당시 조선일보가 보도한 북한의 ‘인간어뢰’ 개념도.

검찰은 ‘유언비어 구속수사’를 거둬들여야 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허위사실 유포사범 처벌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난 사안”이라며 검찰 조처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헌재 결정까지 갈 것도 없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의 기본권조차도 ‘체포·구속’ 운운하며 감옥에 가두려는 것은 민주공화국을 부정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진짜 유언비어’가 있긴 하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무조건 ‘괴담’으로 매도하면서 강경 공안몰이를 부추기는 수구세력의 선전 선동이 바로 그것이다.(경향신문 2011년 11월 9일자, FTA 유언비어 구속수사, 검찰 제정신인가)

조선일보는 11월 11일자에 ‘젊은 세대가 괴담에 쏠리지 않는 사회로 가려면’이란 사설을 실으면서 세대 간 소통의 길을 찾아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괴담이라 써놓고, 소통이라 읽으면 불통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은 이택광 경희대 교수의 괴담 해결론.

자신들이 내세우는 ‘과학적 증거’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모두 괴담이나 음모론에 사로잡힌 것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이 사실만은 밝혀두자. 진정한 과학은 서둘러 결론 내리고 반대의견이나 의문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는 대화의 자세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괴담을 잠재울 수 있는 지름길인 것이다.(경향신문 2010년 5월 29일자, <이택광의 왜?> 반대의견 존중될 때 괴담도 사라진다)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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