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간 ‘동원행사체제’

‘참여’정부에 대한 사무친 반감 때문일까. 이명박 정부는 ‘동원’ 정부라 부를 만하다. 정부청사 식당에 들어간 참치 이야기는 아니다.

“농사일로 바빠 참가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장이 참가하면 기념품과 빵을 준다고 해 관광버스를 타고 왔다.” “서울 갈 일이 있었는데 공무원인 친구가 부탁해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
10월22일 ‘4대강 새물결 맞이’ 행사에 나온 사람들이 경향신문 취재진에게 털어놓은 말(2011년 10월 24일자, 4대강 완공 축제 “기념품 준대서 관광버스 타고 왔지”)이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22일 공주보 개방행사에서 주민들에게 나눠준 기념품들. /김종술씨 제공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22일 공주보 개방행사에서 주민들에게 나눠준 기념품들. /김종술씨 제공

이날 전국 4개 보(洑) 공개 행사에 수만명의 동원 인파가 몰렸다. 동원 능력? 뒷감당도 제대로 못 한다. 이날 충남 공주에서 열린 ‘공주보’ 행사에서는 기념품(휴대용 조명기, 매트 등 5가지)을 받지 못한 주민들이 집단 항의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동원 주체, 대상은 전방위다. 정부가 자랑하는 G20 대성공(?)도 알고보면, 동원 덕분이다.

‘클린데이’와 ‘G20 맞이 열흘간 대청소’ 보도자료에 나온 관련 청소 사진.

‘클린데이’와 ‘G20 맞이 열흘간 대청소’ 보도자료에 나온 관련 청소 사진.

1978년 새마을운동에 동원돼 거리에서 환경미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여학생들. /경향신문

1978년 새마을운동에 동원돼 거리에서 환경미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여학생들. /경향신문

최근 일부 교육청은 관할 학교에 ‘G20 정상회의 관련 행사 및 홍보 결과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중략) 교육청 공문에는 모의 정상회의 개최·동아리 콘테스트·포스터·백일장 등 개최할 행사의 종류까지 예시하고 있다.(경향신문 2010년 6월 28일, 교과부, G20 정상회의 홍보 ‘학교 동원’ 논란)

윤숙자 참교육학부모회 정책위원장은 “전쟁·반공 포스터를 그리던 군사독재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지자체도 군사독재 시절로 회귀하는 복고풍에 적극 동참했다.

2010년 2월 4일 오후 충남 연기군 조치원역에서 열린 ‘세종시 원주민 생계 및 재보상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집회에서 집회가 끝나자 주민들이 자신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김기남 기자

2010년 2월 4일 오후 충남 연기군 조치원역에서 열린 ‘세종시 원주민 생계 및 재보상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집회에서 집회가 끝나자 주민들이 자신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김기남 기자

21일 오전 8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일대에서 대청소 행사가 열렸다. 수백명이 ‘G20 정상회의, 세계가 강남으로’ ‘G20 손님맞이 환경정비’ 등의 파란색 어깨띠를 두르고 출근 인파 속에서 쓰레기를 주웠다. 20여년 전 눈에 익었던 새마을운동이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청소에는 구청 공무원과 강남·수서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동원됐다.(경향신문 2010년 7월 22일자, 강남구, G20 맞이 관제청소)

이날 구청 공무원 580여명과 관내 경찰관 50여명을 차출·동원해 원성을 샀다. 서울시와 강남구는 그해 11월 1일 공동주관으로 코엑스 잔디광장에서 G20 손님맞이 ‘클린데이’ 행사를 열고 열흘 동안 대청소를 벌였다.
국가 동원체제가 정점에 이르렀던 1970~80년대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4대강 사업, G20에다 세종시 때도 ‘동원’이 이뤄졌다. 게다가 돈 살포 논란까지 나왔다.

4일 낮 12시 55분쯤 대전 서구 둔산동 대전지방노동청 옆 도로. ㅎ대학 로고가 새겨진 대전 75바○○○○ 버스에 40~60대 남녀 40여명이 올라탔다.(중략) 차 안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 남자가 “여러분들을 인솔하게 될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정부가 세종시 홍보를 위해 여러분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중략)대전지역 주민들 중 상당수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1인당 3만원씩 일당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경향신문 2010년 2월 5일, “세종시 집회 참석 주민 돈주고 동원”)

2008년 3월 31일 경찰이 법질서 확립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어린이 명예경찰이 오픈카에 타고 서울시내에서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2008년 3월 31일 경찰이 법질서 확립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어린이 명예경찰이 오픈카에 타고 서울시내에서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하지만, 이 돈살포 사건에서 돈을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찾지 못했다. 정권 초기부터 ‘동원 드라이브’가 걸렸다. 서울시 자치구들은 2008년 8월 건국 60주년 기념행사에 구청 공무원들을 강제 동원해 물의를 빚었다. ‘법과 원칙’ 캠페인도 빼놓을 수 없다. 경찰은 기초질서 확립 캠페인을 벌이며 초등생 아이들까지 동원했다. 신동원체제의 신호탄 같은 전시행정이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007년 대선 이후 경향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국정방향으로 제시한 선진화·신발전체제를 두고 한 말이다. “(선진화·신발전체제는) 국가 발전의 목표를 정부 지도자가 설정하고 국민을 위에서 동원하는 구조다. 그런 측면에서 박정희 개발 모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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