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불감증을 향한 강펀치

2011.10.18

말과 글을 도구 삼아 세상에서 자기 영역을 구축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 먼저 글은 유려한데 말은 어눌한 사람. 이 부류에 속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을 흠이라고 할 수도 없다. 누구도 말을 글처럼 정교하게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류는 말투와 글투가 쌍생아처럼 일치하는 사람이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학장이 대표적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의 말은 받아 적으면 그대로 문장이 될 정도로 정교하다.

<닥치고 정치><br> 김어준 지음·지승호 엮음· 푸른숲·1만3500원

<닥치고 정치>
김어준 지음·지승호 엮음· 푸른숲·1만3500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도 이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 1998년 딴지일보를 창간하면서 그는 일종의 문체 혁명을 일으켰는데, 비어와 속어를 자유롭게 문장에 끼워넣어 풍자의 맛을 살린 그의 글투는 그의 말투를 쏙 빼닮았다. 직설적이고 화끈하다. 언어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통념에 따르자면, 그의 생각이 그려내는 궤적 자체가 곡선이 아니라 일직선이기 때문일 듯도 하다. 인터뷰 전문작가 지승호씨가 김어준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닥치고 정치>는 이 추측을 확신으로 만들어준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닥치고 정치다. 누구를 향해 ‘닥치라’는 것인가. “평소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쿨한 건 줄 아는 사람들에게, 그놈이 그놈이라는 사람들에게, 좌우 개념 안 잡히는 사람들에게,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당들 행태가 이해 안 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대선이 아주 막막한 사람들에게, 그래서 정치를 멀리하는 모두”가 그 대상이다. 그가 정치 불감증을 향해 말의 펀치를 날리려는 이유는 “시국이 아주 엄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국이 엄중하니 정치 불감증을 그냥 놔둘 수 없다고 나선 만큼 책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이건희 회장, 이명박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유시민 참여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심상정 전 진보신당 의원 등 정치인부터 천안함 사건, BBK, 삼성 에버랜드 주식 편법증여 등 시사 이슈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직설’을 쏟아낸다.
인물과 현안에 대한 직설적 논평을 두루 거치는 이 책의 종착역은 대선이다. 

인물로 치면 문재인 이사장이다. 문 이사장에 대한 그의 평가는 이렇다. “보통 사람들하고는 의사결정의 프로세스 자체가 달라. 어떤 결정이 내게 어떤 이익을 줄 것인가, 이런 건 아예 고려 대상 자체가 안 되는 사람이야.” 그는 그래서 문 이사장이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또 “문재인이 가진 힘의 본질”이라고도 말한다.

문재인 이사장이 대통령이 되면 과연 좋은 세상이 올 것인가. “하지만 오바마가 천국을 도래시키지 못했듯, 노무현으로 천국이 오지 않았듯, 문재인으로도 천국은 오지 않는다니까.” 그걸 알면서도 그는 문 이사장의 대선 출마를 바란다. “인간이 모두를 구해야 하는 시대다. 이념과 명분과 논리와 이익과 작전과 조직으로 무장한 정치인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보편준칙을 담담하게, 자기 없이, 평생 지켜온 사람이 필요하다. 시대정신의 육화가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다.

“해보자. 쫄지 말자. 가능, 하다. 씨바.” 노골적으로 편향적인 이 책의 결론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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