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한때 기적의 치료제였다

2011.10.04

<식물, 역사를 뒤집다><br />빌 로스 지음·서종기 옮김<br />예경·1만8000원

<식물, 역사를 뒤집다>
빌 로스 지음·서종기 옮김
예경·1만8000원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며 동아시아의 절대 패권국 지위를 누리던 중국은 왜 19세기 중반 이후 쇠락했을까. 민주주의 이념의 발상지인 서양은 왜 300년간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을 했을까. 두 사건 모두 여러 가지 키워드로 읽어낼 수 있겠지만,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원예 저술가인 빌 로스의 책 <식물, 역사를 뒤집다>를 보면 흥미로운 키워드 하나를 추출할 수 있다. 4억7000만년 전부터 지상에 존재하고 있는 식물이 바로 그것이다.

붉은색, 하얀색, 분홍색, 자주색 꽃을 피우는 양귀비는 수세기 동안 정원을 장식했다. 성숙기의 양귀비 열매에는 아편, 모르핀, 헤로인의 원료가 되는 우유 빛깔 유액이 포함돼 있다. 성숙 중인 양귀비 열매 표면에 칼로 흠집을 낸 후 그 상처에서 스며나온 즙을 하룻밤 동안 모은 것이 바로 생아편이다.

20세기 초 중국에서는 전체 성인의 4분의 1 이상이 양귀비에서 추출한 마약에 중독돼 있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열강은 중국과의 통상을 통해 이윤을 남기길 원했지만 중국은 서구 국가들을 변방의 오랑캐쯤으로 취급했다. 서구 국가들은 영국이 소유한 인도 벵골 지방의 아편을 중국으로 밀수출했다. 미국은 터키에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비싼 값에 팔았다. 아편 교역권을 빌미로 영국과 두 차례 아편전쟁을 치른 중국은 국력 약화로 쇠락을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탕수수를 생으로 먹는 대신 정제해 설탕을 만든 것은 2500년 전 인도 사람들이다. 이 설탕이 유럽에 전해진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가 끝난 직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490년대 이슬람이 지배하던 스페인 지역을 유럽인들이 다시 되찾으면서 사달이 생겼다. 이 무렵 유럽에 불어닥친 신대륙 개척의 광풍을 타고 서인도 제도로 이동한 사탕수수 경작을 위해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흑인 노동력을 사용한 것이다. 유럽인들은 경작기술의 발전으로 대규모 노예 노동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노예무역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취하기 위해 노예노동을 존속시켰다.

1800년대 중반 이후 사탕수수 농장에 동원되는 노예무역이 사라진 것도 경제 논리 때문이었다. 사료용 작물로 사용되던 비트에서 설탕을 추출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사탕수수의 상업적 가치가 폭락한 것이다. 최근에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명목으로 사탕수수를 에탄올 생산에 사용하면서 아마존의 밀림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저자는 이외에도 식물에 얽힌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소개한다. 최초의 코카콜라에는 코카인이 함유돼 있었고, 양배추가 없었다면 로마의 멸망은 더뎌졌을지도 모르며, 담배는 한때 기적의 치료제였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렇다.

저자는 이처럼 식물들이 문명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촘촘하게 소개한다. 벼, 밀, 커피, 차, 라벤더 등 50가지 식물들이 문명과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낸 크고 작은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갈피마다 관련 사진과 그림, 토막 상식을 깔끔한 편집으로 담아 읽는 맛과 보는 맛을 돋우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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