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전태일, 비정규직의 눈물

2010.11.09

기아차 모닝 제조 동희오토 사내하청 해고 근로자들의 ‘노숙’ 이유

경술국치 100주년·한국전쟁 60주년·전태일 분신 40주년·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때이른 겨울이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왼편 인도에 비닐 천막 두 동이 서 있다. 빌딩숲 사이의 비닐 천막은 어색하다.

동희오토 해고자들이 양재동 기아차 사옥앞에서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유정인 기자

동희오토 해고자들이 양재동 기아차 사옥앞에서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유정인 기자

10월 28일 목요일 오전 9시 30분쯤. 최진일씨(33)는 이 천막 안에서 먹고 잔다. 지난 7월 12일부터 꼬박 108일째다. 오갈 데 없는 신세라서가 아니다. 가족들이 사는 집이 서울에 있다. 충남 서산에는 지난 4월에 결혼한 아내도 있다.

최씨가 건네준 얇은 이불을 무릎까지 끌어올린 채 그와 마주앉았다. 그가 다른 동료 5명과 함께 노숙을 결정한 것은 온전히 그 자신의 선택이다. 그러나 세상에 길바닥이 좋아서 노숙하는 사람은 없다.

최씨는 기아차 모닝을 제조하는 동희오토 해고자다. 노조 결성 등을 이유로 2008년 9월에 해고됐다. 2001년 기아차가 지분 49%를 출자해 설립한 동희오토는 정규직 노동자 없이 100%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만 차를 생산한다. 완성차 조립업체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사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동희오토 소속이 아니다. 형식적으로 이들은 14개 사내 하청업체에 고용돼 있다. 서로 다른 14개 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모두 한 공장에서 같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씨 또한 지난 2006년 동희오토가 아니라 동희오토 사내 하청업체 중 하나인 대왕기업과 고용계약을 맺고 동희오토에서 일했다.

“동희오토는 사실상 기아차 서산공장”
기아차-동희오토-복수의 사내 하청업체로 이어지는 하청-재하청 구조인 까닭에 해고되는 방식도 일반 회사와는 다르다. 동희오토에서는 징계해고만이 아니라 폐업 자체가 곧 해고다. 동희오토가 하청업체와 하청계약을 취소하면 해당 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일괄 퇴출된다. 2005년 소속 하청업체에서 첫 노조가 결성된 이후 2007년, 2008년, 2009년, 네 차례 폐업이 있었다. 

모두 해당 업체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업체가 퇴출되면 다른 업체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최씨가 고용돼 있던 대왕기업은 2008년에 노조 문제로 쫓겨났다. 대신 다른 하청업체 두 곳이 들어왔다. 사내 하청업체 사장들은 이런 일들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하청업체 사장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어요. 그렇다고 동희오토에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결정권은 기아차가 갖고 있죠. 동희오토는 사실상 기아차 서산 공장입니다.”

형식적으로는 노조 때문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노조냐가 문제다. 2005년, 금속노조 사내 하청 지회가 생기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르자 동희오토 사내 하청업체들에도 노조가 생겼다. 하지만 노조라고 다 같은 노조는 아니다. “그 이전에는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요. 노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 엉망인 거예요. 관리자가 어느 직원한테 문제가 있다고 하면 다음날 노조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훈계를 늘어놓기도 하고, 사측과 교섭을 한다고 하고선 노조원들 의사와는 무관하게 서명을 하고 오는 경우도 있었죠.” 사내 하청업체 노조는 ‘유니온 숍’ 방식이었다. 입사의 전제조건이 노조 가입이고 노조원 자격을 잃으면 해고되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노동자들의 금속노조 지회 가입은 원천 봉쇄된다.

최씨는 동희오토 공장에서 2년 동안 12개 공정을 경험했다. “힘들지 않은 공정은 하나도 없지만 배선 공정이 특히 까다로웠다”고 그는 말했다. 배선 공정은 H자 형태의 차체에 차랑에 들어가는 전선 뭉치들을 1분 30초 동안 손으로 연결하고 배치하는 작업이다. 최씨는 주야 맞교대로 매일 10시간씩 일하고 상여금 600%에 120만~130만원을 받았다.

“잘못된 것 바로잡는 당연한 권리 주장”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최진일 사무장. | 정원식 기자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최진일 사무장. | 정원식 기자

동희오토에서는 한 공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살갑게 대하기는 어려웠다. 어수룩한 신입이 들어오면 관리자들만이 아니라 동료들도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감정이 앞섰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1년 안에 공장을 떠났다. 2008년 이백윤 지회장, 심인호 대협부장, 박태수 조직부장 등을 중심으로 몇 명이 모여 현장의 불만사항 해결을 요청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뿌렸다. 당시 이백윤 지회장과 심인호 대협부장이 하청업체 노조 대의원이었다. 이들 네 사람은 2008년 9월 해고됐다. 2009년 1월 다른 해고자 20여명과 힘을 합쳐 금속노조 산하 노조를 만들었다. 동희오토 사내 하청 지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해고자들 중 6명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방 2개짜리 임대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했다.

해고자들이 생각하는 유일한 해법은 기아차의 직접 고용이다. 이들이 지난 7월 상경한 이유다. 무작정 기아차 건물 앞에 버티고 섰다. “인도에 주저앉아 있는데 한밤중에 물청소를 한다면서 소화전을 가져와서 물을 뿌리더라고요. 나무에 물을 줘야 한다면서 나무에 물을 뿌리기도 하고…. 우리가 앉아 있던 바닥이 금세 홍건해졌죠.”

이들은 누구를 상대로 교섭해야 하는 걸까. 이들은 간접고용 문제에 대해 진짜 사용자인 기아차가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기아차의 입장은 다르다. 홍보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동희오토는 모닝을 위탁생산하고 있습니다. 동희오토 근로자들은 엄밀히 따지면 기아차와 관련이 없어요. 농성하는 분들은 각 하청업체에 있던 사람들로 동희오토가 고용한 근로자들도 아닙니다. 기아차는 동희오토가 생산한 모닝을 판매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아차가 이분들 고용문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룰 때마다 기아차의 입장을 표명해달라고 연락이 옵니다. 저희로선 관련이 없는데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죠.”

겨울이 눈앞이다.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8월 초까지만 해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지금은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힘들지만 그만둘 수 없어요. 지금은 계속 이어가자는 생각입니다. 지난 7월 대법원에서 현대차에서 2년 이상 일한 파견노동자는 회사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한 만큼 우리에게도 좋은 계기가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기와 자존심도 생겼어요. 잘못된 것 앞에서 우리는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오전 11시 30분쯤, 기아차 사옥 오른편 인도에는 7명의 남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서 있었다. 앞에는 ‘기업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 뒤에는 ‘회사 경쟁력 제고’라고 쓰여져 있다. 구호는 없었다. 그들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선 채로 무릎을 폈다 움츠리기를 반복했다. 집회인지, 그저 서있기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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