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박영준

2008.09.02

재활 프로젝트설 솔~솔 암중모색하는 MB책사

"사감은 없다. 신뢰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선 정보와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처지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니냐. 정두언 의원은 그게 섭섭했던 모양이다.”

‘정두언 반란’의 희생양인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게서 독기는 찾을 수 없다. 지난 6월 9일 청와대에서 짐을 쌀 당시 인간적 배신감을 토로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권력의 달콤한 맛을 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 줄지언정 권력은 나눠 갖지 않는다는 게 통설이다. 그만큼 권력의 마법은 강력하다는 얘기다. 사실 박 전 비서관이 마법에 걸렸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명박 대통령(MB)의 절대적 신임 그리고 그가 맡은 역할 때문이다.

이 대통령도 ‘왕비서관’으로 인정
정두언 의원은 그를 향해 “김현철, 박지원, 이광재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권력사유화 문제를 제기했다. 박 전 비서관이 이 대통령의 뜻을 왜곡, 자신의 역할을 확대해왔다는 얘기다. 이 전 대통령도 지난 4월 2일 “청와대에는 실세가 없다. 누구든 열심히 뛰어주는 사람이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몇몇 비서관의 이름을 거명했다. 박 전 비서관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역설적으로 이 대통령도 ‘왕비서관’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형인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 11월 한나라당의 한 행사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박민규 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형인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 11월 한나라당의 한 행사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박민규 기자>

어떻든 그는 실세(實勢)에서 실세(失勢)로 전락했다. 그가 비록 권력싸움의 희생자라고 하더라도 그의 상실감은 상당히 컸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박영준’에게서 상흔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쓴맛을 본 뒤 80여 일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지난 16년 동안 앞만 보고 살아왔다”면서 “쉬면서 뒤를 돌아보고 있다. 또 다산 정약용에 흠뻑 빠져 있다”고 말했다. 다산의 실학정신은 한마디로 ‘실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실용주의’와 맥이 닿아 있다. MB식 실용주의의 구현에 일조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때마침 박 전 비서관이 선진국민연대를 재정비하는 데 나섰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지난 7월 22일 박 전 비서관이 선진국민연대 조찬 행사에 참석하면서 제기된 얘기다. 이 단체는 MB연대 등 한나라당 경선 기간 중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단체들의 연합체였다. 이 단체의 조직화 작업은 박 전 비서관의 작품이다.

박 전 비서관은 이에 대해 “내가 조직을 담당하지 않았느냐”면서 “전국을 돌면서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과 밥 한 끼, 차 한 잔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민연대의 조직 부활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 그는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공기업 인사에서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발탁된 것과 맞물려 ‘박영준 재활프로젝트’가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했다. 그는 “황당하고 무책임한 얘기”라면서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민연대 재정비설 나돌아
어떻든 지난 대선 과정에서 MB의 사조직의 양대 축은 선진국민연대(436만 명)와 국민성공실천연합(30만 명)이었다. 공교롭게도 국민성공실천연합은 드러내놓고 조직 재정비를 서둘고 있다. 청·장년이 중심이 되어 유세 지원 역할을 담당했던 국민성공실천연합을 이끌고 있는 박창달 전 의원은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면서 “이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보호막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쇠고기 파동에서 확인한 진보세력에 대항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국민성공실천연합은 이미 8월 초에 조직 부활 선포식을 하고 구체적인 조직 정비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전위조직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국민성공실천연합이 움직이고 있다면 선진국민연대도 손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문제는 이 대통령의 심중이 얼마나 반영되어 있느냐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 전 비서관은 “이 대통령을 자주 만나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까지 묻느냐”면서 말을 흐렸다. 뉘앙스는 ‘YES’였다. 물론 그게 MB의 지시에 의한 조직 복원을 뜻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길고 길었던 촛불정국을 지나면서 MB는 자신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할 ‘충성스러운 심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라는 게 정가의 일치된 분석이다. 그런 상황에서 박 전 비서관이 나선 것이다. 정치는 뜻이 있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예술이다. 물론 그 기초는 믿음이다.

2003년 이상득 의원 보좌관을 지내던 박 전 비서관은 서울시로 ‘투입’됐다. 마땅한 직책이나 직함도 없었다. 서울시장 선거 때 ‘참모 중 참모’역할을 알고 있는 직원은 그를 ‘국장님’으로 불렀다. 2004년 초 그는 회의체를 하나 만들었다. ‘정무회의’였다. 당시 이춘식 정무부시장이 있었지만 이 회의체의 중심은 박 전 비서관이었다. 그를 위해 ‘정무국장’이라는 직함도 새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이명박 대권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정책 연습과 함께 대선조직화 작업이 구체화된 것이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비서관의 관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정치권은 권력의 흐름에 민감하다. 박 전 비서관의 힘을 확인한 순간 반대파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박영준과 통하면 이명박 후보에게 직통으로 연결된다” “이명박의 눈과 귀를 독점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대선 과정에서 전국을 순회하던 MB는 박 전 비서관에게 ‘침’을 놨다. ‘박영준은 (처신을) 조심해야겠다’고 언급했다. 일시적이지만 박 전 비서관은 MB 일정에 개입할 수 없었다. 인수위 과정에서 정두언 의원이 “경기고와 호남 인맥을 챙긴다”는 소문이 돌자 인사 개입 불가 명령이 내려졌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이 측근의 준동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박 전 비서관은 어떻게 자신의 위상을 굳혀갈 수 있었을까.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가족주의자”라면서 “박 전 비서관은 이상득 의원과 관계(보좌관) 때문에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폄훼했다. 박 전 비서관이 독자적 정치 역량을 발휘할 정도로 정치적 역할이나 발언이 없었다는 게 그 이유다. 박 전 비서관은 오직 몸과 마음을 다하여 MB에게 봉사했고 또다시 그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NO’할 줄 모르는 참모의 정책적 조언은 먹기 좋은 독약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자신에게도 해악을 끼친다는 얘기가 새삼스럽지 않게 들린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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