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감시는 통하지 않는다

2008.05.20

[목진휴의 눈]강제·감시는 통하지 않는다

정부는 군림이 아닌 봉사하는 위치에서 국정을 꾸려가야 한다. 그런 정신이 이명박 정부의 실용 정부이고 섬기는 정부의 기본이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국내 휘발유 가격도 조만간 ℓ당 2000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우리는 가뭄에 하늘을 쳐다보는 일손 놓은 농부의 심정으로 마냥 국제시장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을 순 없는 실정이다.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인 우리는 에너지 소비에서 세계 10위권의 취약한 국가기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비용을 증가시킨다. 그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제품 가격을 올려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킨다. 대책 없는 에너지 소비 대국은 추락하는 비행선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최근 국무총리의 주재로 국가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를 열어 에너지 가격의 급등에 대처하는 ‘신고유가시대 에너지절약대책’을 발표했다. 이의 일환으로 기업과 가정을 대상으로 에너지 소비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소비를 줄이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 방안의 가장 큰 특징은 가정을 대상으로 냉·난방 온도를 일정 수준까지 허용하고 이의 준수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지침을 어기는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개인의 가정까지 에너지소비 절감 여부를 감시해야 하는가라는 절박감도 갖게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정부 방침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문제를 바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가정까지 감시할 수 있다는 발상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과 그러지 못한 일을 구분해야 한다. 정부가 올바른 대안을 만들지 못하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가 된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자유주의적 가부장주의’(Libertarian Paternalism)가 국정의 운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권을 손상하지 않되 ‘슬쩍 자극 혹은 유도(Nudge)’하여 그러한 선택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모습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유와 구속이 합성된 모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접근이 사회를 운용하는 데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청소년들이 건강식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학교 급식대의 가장 손이 가기 쉬운 곳에 건강식품을 배치하고 그렇지 못한 식품을 불편한 곳에 둔다는 것이다. 그러면 굳이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건강식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강제와 감시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성숙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특히, 정부는 군림이 아닌 봉사하는 위치에서 국정을 꾸려가야 한다. 그런 정신이 이명박 정부의 실용 정부이고 섬기는 정부의 기본이다. 경제 살리기와 국가경쟁력 확보라는 정책 목표는 섬김과 실용의 정부 의지에 더하여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이 성공의 필수불가결한 요인이 된다. 어떤 ‘자유주의적 가부장주의’(Libertarian Paternalism) 방식이 국민들로 하여금 강제와 감시를 당한다는 느낌을 갖지 않고도 에너지 위기의 극복에 국민들이 앞장서야겠다는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만들 수 있는지 정부는 시급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는 살아남는 국가만이 강한 국가가 된다.

<목진휴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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