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2007.09.25

그대 고향은 어디 인가

[유성문의 길]부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누워서/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의원은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쓴다./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다. - 백석 ‘고향’ 전문

[유성문의 길]부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불우하게도 이 시대 고향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지 않다. 사람이 고향 밖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고향이 사람 마음 밖을 떠돈다. 기껏 찾아간 고향이래야 길바닥에 나앉아 있거나 포클레인으로 무참히 파헤쳐져 있기 일쑤다. 어떤 운 좋은 이는 고향에서 출마를 꿈꾸거나 넘치는 돈으로 마름의 땅을 사들이기도 하지만, 그때 고향은 천박함으로 구슬프다. 나는 어차피 고향을 찾을 생각도 없고, 찾아봐야 부끄럽기만 할 따름이므로 어쩌다 고향이 생각날 때면 차라리 부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로 간다. 거기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들 사이 버려진 고향이 있다.

원곡동의 한 다방에서 만난 두 여성은 멀리 하얼빈이나 베이징에서 온 조선족들이다. 그들의 고향은 엄연히 중국이지만, 이미 버리고 왔으므로 아니 버림받고 왔으므로 이제 고향은 이곳 원곡동이거나 아니면 없다. 하얼빈에서 온 김향(그들은 ‘양’이란 말보다 향기로울 ‘향’자를 써달라고 했다)은 사십대 중반이고, 베이징에서 온 조향은 삼십대 초반이다.

김향은 원래 중국 오상현 소산자 출신으로, 그곳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함경도 어디 출신이라고 하는데, 관심이 없어 물어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갓 스물에 조선족 남자를 만나 결혼해 그해 딸 하나를 낳았다. 남편은 인물 좋고 체격 좋고 수완 좋은 멀쩡한 위인으로 결혼 후 하얼빈으로 나와 장사를 해서 돈도 좀 벌었다. 그러나 씀씀이가 헤퍼 돈을 모으지는 못한 모양이다. 게다가 밖에 나가면 그렇게 사람 좋은 위인이 집에만 들어오면 폭력적으로 바뀌었다. 거의 매일 매질을 당하면서 숱하게 헤어질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또 막상 헤어져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 참고 살아왔다. 부산 어디쯤에 시숙이 되는 사람이 살고 있어 그의 초청으로 3년 전 남편과 함께 한국에 왔다. 남편은 공사판을 떠돌며 막일을 했고, 그녀는 공장이나 식당 등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원래 몸도 약한 데다 그동안의 고생으로 골병이 들다시피해 그조차 쉽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당연히 원곡동으로 왔다.

[유성문의 길]부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유성문의 길]부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그녀는 3년간의 체류기간이 다 되어서 이제 몇 달 후면 중국으로 일시적이나마 돌아가야 한다. 이제 겨우 한국생활에 익숙해질 만한 그녀로서는 솔직히 고향에 돌아가기가 싫다. 한국에 와서 돈 한 푼 모은 게 없으니 고향에 돌아가서 내놓을 면목도 없다. 들어가더라도 곧 다시 나올 생각이지만, 이제 고향에 가면 맏딸로서 늙으신 부모를 다시 뿌리치고 나오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를 딸네미도 눈에 밟힌다.

조향의 경우는 더욱 어렵다. 부산 출신인 아버지와 북한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딸로 곱게 자라왔고, 대학까지 나와 북경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하다 조선족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끝내 이혼했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어렵게 살던 아버지가 말기암으로 쓰러지자, 치료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아버지를 모시고 한국에 왔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가능성은 희박했고 치료비도 감당키 어려워 아버지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고, 그녀는 한국에 남아서 아버지의 치료비를 벌기로 작정했다. 그녀 역시 당연히 원곡동으로 왔다.

[유성문의 길]부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유성문의 길]부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그리고 또 당연히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께 치료비 한 푼 보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죽기 전에 다시 국적을 회복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 역시 어떻게든 한국에 눌러 살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중국에 있는 아버지와 통화를 해보지만 가뜩이나 말조차 하기 힘든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느라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토록 막내딸을 예뻐하던 아버지에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눈물밖에 없다. 혈혈단신 낯선 조국에 남은 그녀는 한국말조차 서툴러 누구 하나 붙잡고 사정할 사람조차 없으니 매일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다. 울고 또 운다. 그렇게라도 해야 겨우 숨쉴 수 있기 때문에.

[유성문의 길]부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에서

그녀들은 한결같이 한국에서 살고 싶어했다. 비록 중국에서 하루 8시간 일로 끝인 데 반해 한국에서는 13시간이 넘도록 뼈 빠지게 일해야 하지만,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꿈을 깨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헛된 꿈들 밖으로도 고향은 떠돈다. 그들은 어찌저찌해도 한국이 좋다고 했다. 시끄러운 중국말보다 한국말이 좋다고 했고, 부드러운 한국남자가 좋다고 했고, 한국노래가 좋다고 했다. 더구나 아무 힘없는 여자의 몸으로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는 한국이 좋다고 했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돈을 좀 벌면 떳떳이 장사라도 낼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이 땅이 아니라 저 먼 한국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다방 TV 화면에서는 예일대 출신인지 아닌지 모를 전직 여교수의 얼굴이 연신 비치고 있었다.

모든 떠도는 사람들에게 고향은 서럽다. 고향 역시 사람의 마음 밖을 떠도니 서럽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은 유선이 아니라 무선으로도 얼마든지 천리만리 밖으로 갈 수 있게 되었지만 고향은, 사람은 서로 밖으로만 떠도니 상대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신이 부대끼고 있는 삶들이, 살아내 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 그대의 고향이고, 그 삶을 끝내고 돌아가야 할 그 어느 곳이 당신의 고향이다.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든 사이 꿈속에서 누군가 내 맥을 짚는데, 그 손길이 하도 따스하고 부드러워 그 속에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국경 없는 마을
‘국경 없는 마을’은 경기 안산시 원곡동에 형성된 외국인노동자 집단주거지역이다. 이 지역은 인근 시화·반월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몰려 살면서 마치 특구처럼 되어버린 곳이다. 초기 외국인노동자들의 애환을 받아내던 ‘국경 없는 마을’은 서서히 그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국경 없는 마을’은 이 지역 외국인노동자, 코시안, 원주민들의 삶을 담은 박채란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권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이야기책이라면 인권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정직하게 인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 내 관심사는 제도라기보다 ‘각각의 사정’이고 법이라기보다 ‘인간’이다. 그러다보니 어떤 부분은 즐겁고, 어떤 부분은 슬프고, 또 어떤 부분은 패배적이거나 모순되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모든 것의 수용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글·사진|유성문<객원기자>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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