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 내면의 소리

2007.09.18

청각장애 서예가 우보 김병규

[유성문의 길]들어라, 내면의 소리

샛별아.
이 밤길을 너는 먼저 달려가 새벽 산길을 비추고 있거라.
이 어둠 저편 누가 플래시를 버르장머리 없이 비추며 온다.
두려워 말라. 그도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어둠 자체가 무서운 것은 아니다.
무서운 것은, 다가오는 물체를 크게 보는 내 마음 속에 있다.
네가 자라서 너의 미래로 가는 길목에서 몇 차례
불심검문을 당하고 굴욕을 통과하여 더 탄탄해진
내 길을 갈 때 너도 알게 되리라.
쉽게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먼 새벽 산정에 이르는 길을.
- 황지우 ‘나는 너다’ 중에서

[유성문의 길]들어라, 내면의 소리

우보 김병규

‘문도(聞道)- 도에 대해 듣다’, 57×35㎝

‘문도(聞道)- 도에 대해 듣다’, 57×35㎝

1962년 전남 순천 출생
10세 때 벽강 김호 선생 문하 입문
14세 때 한국서예공모전 최연소 입선
호남대학교 미술학과(한국화) 졸업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 및 한국화 부문 입선
전라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중국·대만·일본·미국·뉴질랜드·몽골·터키 등 교류 및 초대전
2007년 국내 첫 개인전 (순천문화예술회관, 5. 29~6. 4)

우보는 오랜만에 아내의 손을 잡고 나들이길에 나섰다. 광주에 있던 서실을 접고, 서울로 올라온 지도 벌써 세 달이 다 되어간다. 아내는 임신 3개월째다. 첫딸 지인이를 낳고 3년 만의 임신. ‘미운 세 살’이라던가. 지인이는 요즘 자기 고집을 곧잘 내세운다. 아내는 그 고집이 영락없이 아빠를 빼닮은 것이라고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고집 없이는 살아낼 수 없는 40여 년 세월이었다. 들을 수 없는,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 것은 내면에 가득한 어떤 집념이었다. 아이인들 미래로 가는 길목에서 숱한 장애를 만나지 않겠는가. 그럴 때면 아이도 알게 되리라. 그 장애를 헤치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 삶임을.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혼이 있어 그토록 어렵게라도 살아가게 하는 것임을.

[유성문의 길]들어라, 내면의 소리

우보가 찾아간 곳은 종로에 있는 구민 판소리 교실이었다. 고등학교 2년 후배인 구민 배일동은 그 나름 어렵게 소리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소리로서 길을 가고, 나는 소리 없는 길을 간다. 우보는 구민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니 소리를 볼 때마다 어떤 뭉클한 것이 가슴 속에 고여드는 것을 느낀다. 그가 득음을 위해서 지리산에서 산공부를 할 때 우보는 순천에서 지리산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득달같이 달려가곤 했다. 폭포의 언저리쯤 그는 가슴에 맺힌 소리를 풀어냈고, 우보는 그 곁에서 가슴 속에 맺힌 절절함으로 바위에 연신 획을 그어댔다. 그것이 소리든 글씨든 오로지 가슴 속의 절절함으로만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것이었다.

우보 김병규(45)는 1962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인 일곱 살 때 청각을 잃었다.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를 따라 거문도에 놀러 갔다가 뇌척수막염을 앓게 되면서다. 요즘 의학이라면 너끈히 고칠 수 있는 병으로 영민하던 아이는 어이없이 소리를 잃었다. 후에 순천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가르친 아버지 김종홍 교수는 맏아들에게 닥친 불행 앞에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는 청각을 잃으면서 발음까지 어눌해진 아이를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냈다. 어떻게든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키워내고자 하는 의지였지만, 아이는 거기서 숱한 놀림과 따돌림을 홀로 이겨내야 했다. 그 고통의 그늘에서 아이는 마음의 위안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은 그림이었다.

[유성문의 길]들어라, 내면의 소리

[유성문의 길]들어라, 내면의 소리

그러나 완고한 아버지는 아이가 ‘환쟁이’의 길로 나서는 것을 영 마뜩해하지 않았다. 그래도 끝내 아이의 뜻을 꺾기는 어려웠던지 그림이 아니라 글씨를 배운다는 조건으로 서실 출입을 허락했다. 그는 열 살 나이에 벽강 김호 선생 문하에 입문했다. 벽강 선생은 그에게 우보(又甫)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다. 똑같이 청각 장애를 지니고 산 운보 김기창 화백처럼 되라는 뜻에서다. 벽강 선생은 그에게는 여러모로 그리고 유일한 스승이었다. 선생은 너무나도 엄격했다. 가르침을 들을 수 없는 아이가 선생의 글씨를 그대로 흉내 내어 그리면, 자기만의 글씨를 쓰지 못한다고 매질을 했다. 아이는 울면서 붓을 잡았고, 이를 악다물며 서도를 깨쳤다. 그 눈물이 화선지 위에 먹빛으로 번져 마침내 그만의 글씨가 되었다.

구민 판소리 교실을 나온 우보는 아내와 함께 종로통을 거닐었다. 종로는 그에게 소중한 인연을 맺어준 곳이다. 5년 전 인사동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처음 지금의 아내 장혜영씨(40)를 만났다. 당시 전남대학교 미술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한국화를 그리던 아내는 인사동을 돌다가 우연히 그 전시회에 들렀다고 한다. 솔직히 처음 우보의 장애 때문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보의 우직함에 끌려 이내 그의 반려가 되기로 했다. 운보 김기창의 곁에 우향 박래현이 있었던 것처럼, 아내는 우보의 반려이자 예술적 동지이자 세상과 소통하도록 도와주는 통역사이기도 했다. 아내는 가끔 세상의 풍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보에게서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세상과 제한적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그의 운명이고, 오히려 그 운명이 그의 예술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힘인 것을.

장혜영 ‘봄’, 제40회 전라남도 미술대전 한국화 대상작(2004)

장혜영 ‘봄’, 제40회 전라남도 미술대전 한국화 대상작(2004)

우보는 얼마 전 그의 고향 순천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그 전시회를 통해 문자 추상의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서화들은 거리낌없는 붓의 놀림 속에서, 먹이 지난 자리에 남는 자유로운 기운과 함께 원초적인 생명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랫동안 그를 옥죄어온 신체적 침묵조차 맺고 풀어지는 그의 문자 속에서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우보는 ‘자연지리(自然之理) 세체지법(世諦之法)’이라는 불경의 한 구절을 특히 좋아한다. 그 글귀 속에서 그는 자연의 이치와 세상의 진리에 따르되, 기어이 그를 넘어서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보가 그의 소망대로 서울 어느 곳에 부부의 화실을 내고 둘째 아이가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면, 그의 내면 역시 더욱 깊어 갈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시련은 그 자체로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크게 보는 마음 속에만 두려움으로 남게 되는 것을. 어쩌면 그가 침묵 속에서 건져낸 문자야말로 ‘불립문자(不立文字)’의 더 깊은 세계인지도 모른다.

글·사진|유성문<객원기자>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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