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부는 ‘탄소 감축’ 바람

2007.09.11

“모든 우편물에 탄소발자국(footprint)이 표시되는 시대를 상상해보라.”

영국의 우정공사 로열 메일의 우편배달 차량.

영국의 우정공사 로열 메일의 우편배달 차량.

지난 6월 열린 국제우편협회(IPC) 고위 집행부 포럼에서 나온 말이다. 탄소발자국을 우편물에 표시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탄소발자국은 사람 또는 동물의 특정 행위로 발생하는 탄소의 흔적을 말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눈 감을 때까지 탄소를 내뿜는다. 전기나 가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생활을 하는 한 탄소 배출을 막을 길은 없다. 냉장고 문을 열거나 에어컨을 켜도, 자동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도 탄소발자국이 남는다.

우편물 송달 행위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제주로 편지를 보낸다면 수송수단인 비행기에서, 부산에서 목포로 택배를 보냈다면 철도 또는 트럭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 배기가스의 총량을 우편물의 무게와 크기에 따라 나눈 뒤 수치화하면 그게 개별 우편물의 탄소발자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편지 한 통을 배달하는 데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를 일일이 계산해 우편물마다 표시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이니 대비책을 세우라는 게 국제우편협회의 충고인 셈이다.

실제 지난 6월 명칭을 이텔라(Itella)로 바꾼 핀란드의 우정공사는 편지 한 통이 보내는 곳에서 받는 곳까지 가는 데 평균 36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공식을 내놓았다. 보통 승용차 한 대가 200m 운행했을 때 내뿜는 탄소량과 같다는 것이다. 탄소 배출량을 그렇게 일일이 수치화한다는 게 우리에겐 신기하지만, 교토의정서에 따라 내년부터 탄소량을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하는 유럽 각국은 온갖 급진적 아이디어들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영국의 우정공사인 로열 메일은 지난달부터 우편물 탄소 중립을 위한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탄소 중립이란 자신이 배출한 탄소발자국에 상응하는 나무를 심거나, 나무를 심는 데 필요한 돈을 냄으로써 배출량을 상쇄(offset)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 시행방안을 보면 우편물 취급업체에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충족시킨 업체에는 남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계산해준 뒤 그에 상응하는 나무를 심는 등 상쇄하도록 유도한다. 나무 심는 일은 우드랜드 트러스트 카본 플러스(Woodland Trust’s Carbon Plus)라는 단체가 대행한다. 그렇게 상쇄하면 해당업체 우편물에는 ‘탄소 중립’이란 로고를 새겨 소비자들에게 친환경 업체라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우편물 업체가 충족시켜야 할 기준은 이렇다. ▲ 사용하는 모든 종이는 최소 50% 이상의 재생물질을 포함한 것일 것 ▲ 포장지는 재생한 것이거나 재생 가능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물질이어야 하며 되도록 부피를 줄일 것 ▲ 식물성 또는 재활용 잉크, 아니면 수성유약을 사용할 것 ▲ 이중포장 또는 속이 비치는 봉투는 재활용을 어렵게 하므로 사용하지 말 것 등이다. 하나같이 환경에 미치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독일의 우편업체 도이치포스트는 이미 2005년부터 고그린(GoGreen)이라는 탄소 감축 프로젝트를 만들어 기업 우편물의 탄소 중립을 유도한 데 이어 올 2월부터는 개인 우편물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발했다. 이곳에서 어떤 종류의 우편물을 어디에서 어디로 어떤 방식으로 보내는지 입력하면 예상 탄소발자국이 계산돼 그에 상응해 상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외에도 프랑스·네덜란드·스위스 등 43개 유럽국가의 모임인 포스트유럽은 향후 5년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10% 감축하는 프로그램을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우정에 부는 탄소 감축 바람이 한국에 상륙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종탁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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