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일체를 꿈꾸다

2007.02.27

산안 마을 사람들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아 즐거운 마을

[유성문의 길]무소유 일체를 꿈꾸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 끊임없이 비하하고 좌절할 뿐이면서도, 한편으로 자기와는 다른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동경을 품는 것은 분명 모순적 태도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자기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유토피아의 본뜻은 ‘그 어디에도 없는’이다)을 버릴 수 없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새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공동체운동이 여럿 있지만, 아예 ‘돈이 필요 없는… 마을’이라니, 이번 설에도 조카에게 뜯길 세뱃돈조차 없어 고민하는 사람과, 가진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는 사람 사이에 잠시 희비가 교차한다.

‘살인의 추억’이 스며 있는 화성의 낮은 구릉들을 지나 향남면 구문천리에 닿으면, 멀리 남양만이 바라보이는 언덕 아래, 바로 ‘돈이 필요 없는… 마을’이 나온다. 5만여 평의 부지 위에 대형 계사(닭장)와 공동숙소 등으로 이루어진 마을 출입구에는 잔설보다 더 하얀 조류독감 방제용 분말이 잔뜩 깔려 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마을에도 디스토피아의 현실은 어김없는 공포로 엄습한다. 산안(山岸)마을. 시적으로 풀어내자면 ‘산에 언덕에’라는 제법 그럴싸한 이름이지만, 알고 보면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代藏, 1901~1961)란 일본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 뿐이며, 그의 실천적 사상을 실현하는 ‘야마기시즘사회 경향(京鄕, 경기도 향남의 약자이기도 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며 찾아가고자 하는 모두의 고향을 말하기도 한다)실현지’가 바로 이곳 산안마을(031-353-3920)이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돕는 야마기시 농법

[유성문의 길]무소유 일체를 꿈꾸다

야마기시는 누구인가. 어린시절 자기가 무심코 던진 물건에 머리를 맞은 한 어른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것을 보고 ‘사람은 왜 화가 나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그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심취하는 일면 ‘화를 내지 않는’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때는 대립과 분열, 전쟁과 모순의 시대였고, 그는 공안경찰을 피해 한 농가의 양계장에 숨어들었다가 닭들의 세상에서 공동체의 새로운 이상모델을 발견한다. 다행히 닭들은 사람을 상대로는 어려웠던 공동체실험의 훌륭한 대상이 되어 주었고, 그때부터 양계는 야마기시 농법의 근본이 되었다.

야마기시 농법을 이해하려면 산안마을 농장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산안마을 양계장에서 닭들은 사람보다 ‘먼저’ 행복하다. 이곳 닭들은 ‘케이지’라 불리는 계단식 닭장의 압살적 구조에서 자라는 닭들과는 달리 널찍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생활한다(농사로 치면 ‘석 섬 거둘 논에서 두 섬 키우는’ 원리). 계사는 가장 양호한 채광과 통풍이 가능하게 설계되었고, 바닥에는 미리 발효시킨 계분을 깔아 새로운 분뇨가 거기 섞이면 같이 발효되어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잘 발효된 분뇨는 유기농 재배지로 옮겨져 최상의 거름이 되고, 그 작물 중 일부는 다시 닭들의 모이로 돌아온다. 알을 낳는 암탉 사이사이 수탉이 섞여 있어 건강한 유정란 생산을 돕는 한편, 암컷들만 생활할 때 생길 수 있는 사회적 역작용(예를 들면, 일부 암컷의 수컷화에 따른 질서의 교란)을 방지한다. 병아리들의 모이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가능하면 모든 모이는 몸집만을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장을 튼튼히 하는 것들이다(다시 농사법으로 말하면 ‘뿌리에 비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비료 쪽으로 뿌리가 자라도록 유도하는’ 원리). 이 모든 것이 닭들이 그렇게 ‘원한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래서 산안마을 양계장의 모토는 ‘닭들이 행복할 때까지’다. 여기서 사람은 단지 닭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만 대신한다.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자유로운 사회

야마기시 농법의 핵심은 자연과 자연,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실현이 바로 유축순환농법이다. ‘야마기시스트’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무소유 공동체(그들은 ‘일체’라 한다)를 추구한다. 산안마을에서는 공동노동을 통한 수입은 있지만 소유는 없다. 공동소유도 아니고 분배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벌기만 할 뿐 쓰지는 않는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소비는 불가피하므로 쓰기는 하되, ‘한 지갑’에서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꺼내다 쓴다. 그리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때 자유로울 수 있고, 그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무소유는 차라리 쉬울 수 있다. 왜, 단지 소유하지 않으면 되니까. 그러나 소비에 이르면 필요의 정도에 따라 차별이 생길 수 있으므로 훨씬 어려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은 그 문제의 해결책으로 사람의 자율성에 대한 신뢰를 든다. 그러나 솔직히 나 같은 속인은 그 말을 믿기 어렵다.

다만 이해의 관점에서 보자면, 무소유의 본질은 가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끊임없이 소비지향을 제어할 때만 가능한 것이고, 역으로 소비지향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할 것이다. 얼핏 이해하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도 힘들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다 하여 외부세계와 단절한 채 지내지도 않는다. 그들 스스로도 불변의 원칙이란 있을 수 없고, 더 나은 해답을 찾아 부단하게 탐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연찬(硏鑽, 문제의 본질을 찾아가는 토론과 강습)’을 통한 ‘무고정전진(無固定前進)’이다.

고향은 아직도 그리운 공동체인가

현재 산안마을의 가족 수는 8세대(그들은 그냥 ‘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32명(성인 18명, 아이 14명). 1965년 일군의 사람들이 이 땅에 야마기시즘을 처음 소개한 이래, 초기 실패기를 거쳐 마침내 1984년 ‘맹물과 누더기’의 정신으로 화성에 정착, 한때 50명이 넘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진해소’와 교류이동(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50여 곳에 야마기시즘 실현지가 있고, 그들은 서로 교류하며 때로는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 이동 정착하기도 한다)으로 현재의 구성원을 유지하고 있다. 전직 회사원, 교사, 사회운동가, 농부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구성원들은 양계부, 채소부, 가공부, 공급부, 생활부, 학육부 등으로 나뉘어 일을 하고, ‘한 솥, 한 지갑’을 쓰는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산안마을에는 유독 미인이 많다. 소유의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레 아름다워지는 것인가. 소유는 미인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무소유는 미인이 ‘되게’ 한다.

[유성문의 길]무소유 일체를 꿈꾸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이여. 북새통이 되어버린 길바닥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차 안에 갇혀 있다면, 핑계 김에 잠시 생각에 잠겨보라. 지금 당신이 찾아가고 있는 곳이 진정 그리운 고향인가. 거기 ‘내 것, 네 것’ 없이 살아가던 이웃이 있고, 사랑으로 보듬어줄 가족이 있는 그런 곳인가.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패거리로 나뉘어 갈가리 찢어진 아픈 상처를 치유해 줄 자연이 있는 고향마을인가. 혹여 어떤 부채의식이나 도피의식으로 마음 무거운 곳은 아닌지. 그 물음에 대답할 때, 비로소 막힌 길을 뚫고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유성문 객원기자 rotack@lycos.com>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