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와 한보철강

2007.02.06

[내 마음의 길]필경사와 한보철강

쇠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오라
- 필경사와 한보철강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심훈 ‘그날이 오면’ 중에서

●●● 1999년 1월 1일 아침, 신년 서해 일출을 보기 위해 몰려든 3만여 명의 기록적인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던 왜목마을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하지만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이들을 노린 모텔과 식당이 비좁게 들어서면서 예전에 그토록 정겨웠던 포구마을의 정취는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일출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는 쓸쓸하다 못해 스산하게까지 느껴질 때도 있다. 왜목마을의 일출은 해가 장고항의 용무치(해안의 높은 둔덕) 쪽으로 떠오를 때가 가장 장관이라 하며, 일출과 일몰 못지않게 바다 위로 교교히 떠오르는 달빛 또한 일품이라 한다.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송악IC - 필경사 - 한진나루 - 한보철강 - 성구미 - 석문호 - 장고항 - 왜목마을 - 대호 - 도비도|암반해수탕/난지도유람선

필경사, 녹슨 상록수와 빈 의자.

필경사, 녹슨 상록수와 빈 의자.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서해안 시대의 개막’이라는 부푼 꿈에는 아랑곳없이 사람들은 오로지 서해대교 너머 질펀한 횟감들을 찾아 내달렸다. 송악IC에서 빠지면 ‘서쪽에서 해가 뜬다’는 왜목마을에 이르기도 전에 배낚시로 유명한 한진나루며, 성구미의 간재미, 장고항의 실치회, 왜목을 지나서도 삼길포의 우럭하며, 기어이 ‘굴을 따는’ 서산갯마을에 이르기까지 이 천혜의 ‘횟감벨트’는 한층 신선한 먹잇감에 주린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당연히 길은 북새통을 이루었으며, 포구는 한데를 마다않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서해대교의 긴 그림자를 채 벗어나기도 전인 부곡리에서 왼쪽으로 꺾이면, 잠시 구불퉁한 길을 따라가다 그 길의 끄트머리쯤에 이르러 필경사(筆耕舍)가 나온다. 필경사는 어인 곳인가. 1932년, 심훈은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아버지가 살고 있던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온다. 1934년 자신이 정착하여 살 만한 집터를 물색하던 그는 지금의 필경사 자리에서 우연히 얼마 전 잃어버린 자신의 애장품 상아빨부리를 발견한다. 그 빨부리에 담배를 붙여 문 심훈은 잠시 바다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곳을 자신의 집터로 삼기로 작정했다. 1935년 심훈은 새로 지은 필경사에서 소설 ‘상록수’를 집필하고,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에 부응하는 농촌계몽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그날’이 오기도 전에 병에 걸려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해 그의 나이 36세.

필경사 앞마당에서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그 눈길이 채 바다에 닿기도 전에 고대산업단지의 우람한 굴뚝들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 인근은 온통 철강단지이고, 그 중심에 한보철강이 있다. 1997년 1월 23일, ‘제2의 철강왕국’을 꿈꾸던 한보철강은 무리한 확장을 계속하던 끝에 끝내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한보철강의 부도는 바로 외환위기의 신호탄이었다. 진로, 대농, 기아, 한라 등이 줄지어 무너지더니, 기어이 IMF 구제금융이라는 치욕적인 ‘제2의 식민지시대’가 도래하고 말았다. 그리고 꼭 10년이 지난 지금, 현대제철로 넘어간 한보철강은 각고의 자구노력 끝에 마침내 완전정상화를 이룩해냈다.

왜목마을 일출.

왜목마을 일출.

용광로에서는 다시금 뜨거운 쇳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고, 한때 ‘로비의 귀재’ ‘마르지 않는 돈줄’로 불리었던 한보철강의 원주인은 물경 2127억 원이라는 기록적인(국세청 발표 고액 상습체납자 중 개인최고체납 3년 연속 1위) 체납액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은근히 재기를 도모한다는 소문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기묘하게도 필경사 앞마당에 세워진 상징물은 녹슨 쇠로 만든 상록수이며, 그 뒤편 받침대에는 ‘그날 쇠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오라’는 심훈의 싯귀가 새겨져 있고, 그 앞에는 역시 쇠로 만들어진 의자가 놓여 있다. 그 자리쯤에서 순열한 계몽주의자가 바라보았을 법한 예의 바다 앞에는 이제 개발시대의 우화가 우여곡절로 펼쳐져 있으니, 아무래도 쇠가 흙으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이른 모양이다. 누군가가 뒤에 심어놓았을 진짜 상록수들은 이상난동의 겨울날씨 속에서 까닭 없이 누리튀튀하게 시들어가고 있고, 무엇보다도 정녕 ‘그날’은 오지 않았다.

글·사진/유성문〈여행작가〉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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