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형규 한나라당 의원

2006.01.17

조용히 안살림 챙겨온 ‘정책 브레인’… ‘국가적 재앙’ 막으려 서울시장 출마

[유인경이만난사람]맹형규 한나라당 의원

새해 들어서자마자 열린우리당은 초상집 분위기다. 노무현 대통령이 유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입각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자 열린우리당원들은 “부모(노 대통령)가 자식(열린우리당원)을 버렸다”며 고아선언(?)을 하는가 하면,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 “곧 탈당하겠다”는 등의 극단적 표현을 하며 비통한 표정이다.

반면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은 은근히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남의 불행이 나의 기쁨’이란 유치한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예언이 적중했음에 흐뭇해하는 듯하다. 맹 의원은 지난해 말, ‘여권발 4가지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제기한 바 있다. “여권이 이대로는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생각에서 DY·GT의 당 복귀 후 어떤 식으로든 당을 흔들 것”이라고 전망했고, 열린우리당측은 ‘고민의 수준이 아주 낮은 공작 정치 시나리오’라고 비아냥거렸다.

10여 년 정치 경력에다 3선의원이자 한나라당의 정책위의장이란 핵심자리에 있으면서도 평소에 자신의 주장이나 빛깔을 잘 드러내지 않던 맹형규 의원의 목소리가 최근 부쩍 커졌다.

오전 9시, 남들은 막 출근할 시간에 이미 한 모임에 참석하고 의원회관으로 돌아온 맹의원은 영화 ‘애수’의 주인공 로버트 테일러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다가 열린우리당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노무현 대통령, 유시민 의원 모두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원칙이 없어서죠. 그게 어느 쪽이건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가 다르잖습니까. 시민단체 등에서도 유 의원 장관내정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말이 너무 자주 바뀌어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정치란 국민들을 배부르게 해주고, 눈물 닦아주고,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주는 것 인데 이 정부는 국민들의 아픔에는 눈을 돌리고 자기들 주장만 앞세웁니다. 제가 열린우리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은 국가적인 재앙이니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홍보를 덜해 안 팔린 ‘최상품’

맹형규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자신의 능력이나 포부를 강조하기보다는 ‘국가적 재앙인 열린우리당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서울시장부터 한나라당이 차지해서 대권주자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선의 전초전으로 서울시장은 반드시 한나라당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능력에 상관없이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니 걱정이 된다. 일단 이명박 시장이 너무 미지에 화려한(?) 업적을 자랑해 그를 압도해 시민들을 감동시킬 메뉴를 만들 수 있느냐가 문제다. 불도저란 별명답게 Can Do 리더십을 강조하며 밀어붙이는 이 시장 후임으로는 누가 시장이 되어도 심심해보일 것 같아서다. 또 큰 행사를 치른 자리엔 쓰레기도 많이 남게 마련인데…. 물론 눈물나게 매운 불닭을 먹은 후에는 밍밍한 숭늉이 혀를 달래주고, 다른 사람의 뒷자리를 말끔하게 정리하는 모습도 아름답긴 하다. 또 한나라당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도 현재 4명에다 외부인사도 영입한다고 하고 열린우리당 역시 강금실 전 장관이나 이해찬 총리 차출설까지 나오니 여의도에서 시청 시장실로 가는 길은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그래도 맹 의원은 자신감에 찬 표정이다. ‘대한강(大韓江) 르네상스’란 이름의 프로젝트도 발표했고 ‘한강 한자 표기 변경을 위한 세미나’도 한강사랑시민연대와 함께 개최했다. 서울의 중국어 표기인 한청(漢城)이 ‘서우얼’로 바뀌었듯이 한강(漢江)도 한강(韓江)으로 바꿔야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하는 한강문화시대가 열린다는 것이 세미나 주제의 요지.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프로젝트로 성공했으니까 청계천보다 더 큰 한강으로 승부를 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다”라며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계에 한국의 능력을 알린 ‘한강의 기적’을 다시 이뤄보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한강이 서울의 한강만은 아니고 우리의 열정, 땀과 눈물을 상징하는 한강 아닙니까. 청계천 복제품은 아닙니다.”

그밖에도 강남북의 불균형 해소, 재산세의 절반을 공동세 명목으로 거둬 낙후된 지역개발에 사용하는 것, 한강 유역의 생태환경 복원, 하수 종말 처리장의 재활용, e스포츠 전용경기장 건립, 당인리발전소 공간 활용 등등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서울시장을 준비한 듯 다양한 정책들을 신명나게 소개했다. 태스크포스팀도 가동 중이며 각계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도 했다.

함께 동석했던 김현호 특별보좌역은 “맹 의원은 정책위의장을 맡아 정책을 리드하며 야당인 한나라당을 정책정당으로 이미지업시킨 분인데 모든 공을 동료나 후배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별로 나서지 않는다”며 “상품이 훌륭한데도 스스로 ‘광고’를 하지 않아 ‘컨텐츠가 부족하다’는 오해를 받는다”고 답답해했다.

국감때도 핏대를 올리거나 단상에 뛰어오르지 않는 맹형규 의원은 ‘온건하고 합리적’이란 형용사가 붙는 신사의 이미지, 앵커 시절의 모습으로만 기억된다. 산자위 위원장 시절에는 3년 연속으로 원자력발전과 관련한 자료집을 내서 최우수 국감 스타로 뽑혔고, 여·야 의원 모두 뒤풀이 자리에서 ‘수고했다’고 헹가래를 쳐줄 만큼 실력을 발휘했다. 한나라당 사이버위원장을 맡은 사이버선거전의 주인공이며 엄지족대회에 출전할 만큼 젊은 감각의 소유자인데 말이다.

“전부터 소년소녀가장을 후원해 오셨는데 그 소녀가 성장해 선생님이 되었어요. 또 아직도 청운초등학교 시절의 은사를 찾아뵙기도 하고요. 기억력이 좋으신지 전 학년 담임선생님의 이름을 다 아시더군요. 경복고등학교 때는 암벽타기도 하고 축구도 잘하는 만능스포츠맨이었다는데 재미있는 일화가 많고, 정치적 성과도 많은데 전혀 내색을 안 해요.”

김 보좌역이 이렇게 말하자 맹 의원은 빙그레 웃기만 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긴 해도 측근이 전하는 미담은 언제나 아름답다. 맹 의원은 “제 자랑을 하거나 생색을 내는 게 쑥스럽고 선배들에게 공을 돌리고 후배를 스타로 키워주고 당을 위해서 일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절대 ‘맹’하지 않은 ‘깡다귀’

[유인경이만난사람]맹형규 한나라당 의원

언제나 맏형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맹형규 의원은 실제로 장남이다. 경기도 양평에서 정미소를 하는 아버지와 떨어져 서울 청운동의 할아버지 집에서 자란 그는 당시 유명한 교장선생님이셨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할아버지와 지내는 시간이 사춘기 소년에게 재미있을 리 있나, 수시로 인왕산을 찾아 암벽타기도 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단다. 1965년 대학 1학년 때 단체미팅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부인 채승원씨의 증언(?)에 따르면 맹형규 학생은 ‘카키색 군복 바지에 하얀 셔츠, 팔을 둥둥 걷어붙여 입고 레이방 선글라스를 주머니에 꽂고 손수건을 목에 묶고’ 나타났다니 공부만 하는 ‘범생이’는 아니었나보다.

대중들에게 맹형규란 이름이 알려진 것은 SBS 방송의 앵커를 맡으면서다. 합동통신 기자로 출발, 연합통신-국민일보-SBS 등 통신·신문·방송 등 모든 매체를 섭렵하고 영국과 워싱턴특파원을 역임한 그는 기자시절 주로 정치부에서 활동했다. 피터 제닝스와 비슷한 스타일의 앵커로 각광받던 그는 1995년 민자당의 러브콜을 받고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다음해 15대 총선에서 당선,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은 후 총재비서실장, 기획위원장, 재·보선 공천심사위원장, 정책위의장 등 주요당직을 맡아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줬다. 정치인 가운데 운동권 등 질곡의 삶을 산 이들이 많아서인지 무난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온 그가 정치인 생활을 잘하는 것이 신기하다.

“기자나 국회의원 모두 제 적성에 잘 맞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스스로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국회 대회의장에 들어서면 후배 기자들의 시선 때문에 뒷목이 뜨뜻해질 때도 있죠. 특히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할 때는 ‘내가 왜 이 짓을 하나’란 자괴감도 들더군요. 하지만 보람을 느낄 때가 많고, 정치의 희망이 보이니까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하고도 안 지치나 봅니다.”

그는 ‘너무 심심하다’ ‘특징이 없다’는 지적에도 수긍했다.
“제 이미지가 선명치 않다고 하더군요. 그건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는 것은 좋지만 유비처럼 부드럽고 연한 빛깔이라도 결국 권력을 잡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후배들에게도 항상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면서 자기 일에 충실하면 언젠가 정치인도 존경받는 시대가 올 거라고 얘기합니다.”

과거 정치부 기자 시절의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의 별명은 ‘맹다귀’였단다. 성처럼 맹한 것이 아니라 성실하고 부지런한 ‘깡다귀’ 정신을 보여줘서란다. 늘 즐거운 듯 웃고 있지만 항상 현장을 지키고 있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과거의 취재원들에게 사랑받았다고 전했다. 어떤 이는 맹형규 의원을 ‘한나라당의 긍정적인 면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남들에게 열려 있고 따뜻하게 개선을 향해가는 보수주의자라는 것이다.

“오늘은 괜히 자랑을 늘어놓은 것 같다”고 부끄러운 듯 소년 같은 미소를 짓는 그의 나이를 따져보니 올해 환갑이다. 그리고 손주도 있는 할아버지다. 그런데 포장이 왜 그리 신선할까.

“환갑이란 말 하지 마세요. 8월까지는 59세예요. 그리고 손주에게도 제가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는데….”
외손자에게 ‘삼촌’도 아니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협박(?)하고 엄지손가락으로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맹형규 의원. 그에게 ‘오빠!’라고 부르려다가 참았다. 손자와의 관계가 애매해질 것 같아서….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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