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호 증권업협회장

2005.11.29

“청소년 경제교육이 건강한 국부 초석”
따스한 봄날 맞은 증권시장의 숨은 공로자… 30년 ‘My Way’ 걸어온 자칭 ‘한량’

[유인경이만난사람]황건호 증권업협회장

요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겨울철 수은주처럼 뚝뚝 떨어지고 나라경제도 어렵다고들 난리인데 유독 증권가만 따스한 봄날을 노래한다. 종합주가지수와 고객예탁금은 11월 17일 현재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대우증권은 최근 연달아 포럼을 열어 “내년 종합주가지수가 1550선까지 진입할 것”이란 희망적 전망을 내놓았다.

한때 ‘바이(Buy) 코리아’ 붐을 일으켰던 이익치씨가 “곧 주가가 2000, 3000도 갈 것”이라기에 찰떡같이 믿고 주식 샀다가 ‘빠이빠이(Bye-Bye) 머니’를 한 후 우리 회사 주식밖엔 단 한 주도 없다. 그런데 냉정한 분석가들도 ‘내년 주식시장은 핑크빛’이라고 한다.

이런 열기 덕에 한국증권업협회는 11월 15일,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고객만족 경영대상 시상식’에서 고객서비스 혁신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5일로 창립 52주년을 맞는 증권업협회는 21일부터 한 주를 ‘증권인 주간’으로 선포하고 심포지엄(21일), KBS홀에서 불우이웃돕기 자선음악회(23일) 등 다양한 행사도 갖는다.

‘협회’가 상을 탔는데 언론에서는 “과거 회원사들로부터 ‘상전노릇’을 한다며 불평을 샀던 협회가 황건호 회장 취임 이후 확 달라져 각종 심사기간을 단축하고 관행적인 보고 절차들을 과감히 폐지했으며 전화응대 모니터링, 옴부즈맨 등을 실시해 회원사의 업무 편의를 배려한 결과”라며 황 회장의 업적(?)을 칭찬했다.

“우리 협회가 돈버는 곳도 아니고 정책갖고 좌지우지할 권한도 없는 곳이라 적당히 일하는 나태한 조직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부와 증권사가 서로 일일이 직접 챙길 수 없는 것을 관리조정하는 중간자적 위치라는 ‘좌표설정’을 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이런 상을 탄 것 같아요. 노조위원장도 ‘조직과 직원들은 그대로인데 요즘 협회가 하는 일마다 성공해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뭔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거든요. 제대로 된 리더십으로 그걸 끌어내 풀가동하면 어떤 일이나 성공할 수 있죠. 그러느라 머리도 이렇게 하얗게 셌지만….”

수상축하 덕담에 황건호 회장은 타고난 ‘포커페이스’인지 별로 기쁜 표정도 아니고 어조도 차분하고 겸손한데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은 자기자랑까지 다 했다.

군림하던 협회 ‘납작’ 엎드리다

지난해 2월, 증권업협회장에 취임했을 때 황 회장과 협회의 ‘화려한’ 오늘을 예견한 이는 드물었다. 주가지수는 800선. 53세란 나이도 너무 젊다고 했고 증권사들은 모든 게 다 불만투성이였다. 게다가 곧이어 탄핵정국에 차이나쇼크, 금리인상, 고유가 등 3대 악재의 직격탄을 맞은 국내 주식시장은 맥을 못추고 휘청거렸다.

취임식부터 딱딱한 행사가 아닌 서서 김밥 먹고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대신한 그는 곧바로 운영체계 개선 및 서비스 보완 등 탈바꿈 작업에 착수했다. 증권전문인력개발위원회, 증권시장발전심의위원회를 만들어 실질적인 수요를 반영한 업무체계를 개편했다. 증권사 전 직원을 대상으로 사이버 증권윤리과정 무료교육을 실시해 금융선진국의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다양한 사례를 알려주고 금융인으로서의 윤리의 필요성과 구체적 실천방법론을 교육시켰다. 지난해 7월부터는 황 회장이 직접 덕천초등학교에서 25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시작, 증권사 사장단이 청소년 경제증권 특강을 실시해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또 전 국민을 대상으로 ‘주식으로 저축하기’ 캠페인을 벌여 광고도 했다. 처음엔 “너무 의욕만 앞서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던 이들도 “군림하던 협회가 봉사하는 협회로 거듭났다”거나 “3년 임기 중에도 다 하기 힘들 일을 불과 1년 새에 해치웠다”며 황 회장의 패기와 추진력에 놀랐다고 한다. 정작 그는 “취임할 때 약속했던 일”이라며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증권업무엔 별로 관심도 없지만 초등학생들까지 찾아가 직접 강의를 하는 정성이 놀라웠다. 회장님이 초등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우리 투자문화를 바꾸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투자가 아니라 투기고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라 집단광기 같은 쏠림현상이나 소위 ‘강남 아줌마’들의 파워로 부동산시장이 움직이잖습니까.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받아 금융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경제, 금융, 기업의 중요성, 저축의 의미를 알려주고 투자하는 법을 지도해 금융능력을 키우는 것이 결국 나라의 부와도 연결되지요. 얼마 전 청소년 신용불량자가 사회문제화되기도 했는데 모두 우리 탓인 것 같아 가슴이 아팠어요.”

황 회장은 ‘초등학생 때 용돈을 아껴 사둔 우량주 몇십 주를 20년 뒤 팔아 결혼자금이나 사업자금으로 사용했다’ 등의 감동적인 증권스토리를 기대하며 특강만 아니라 초·중·고생들을 위한 증권교재도 발간, 학교와 기관에 배포했단다.

[유인경이만난사람]황건호 증권업협회장

맡은 일 많아도 일중독은 아냐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1976년 대우증권으로 출발, 30년간 고집스럽게 ‘증권밥’만 먹은 황 회장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취미인 것 같다. 금융인으로서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최초‘로 시도한 일이 많다. 국제금융전문가로 1984년엔 일종의 한국투자전용 컨트리펀드인 ‘코리아펀드’를 설립, 천신만고 끝에 성공시켰고 2001년엔 국내 최초로 부동산을 이용한 금융상품인 ‘리츠’를 선보여 다산금융상도 받았다. 증권업협회장으로서도 계속 최초의 일들을 쏟아내며 증권사를 써나가고 있다.

물론 비단길만 밟은 것은 아니다. 남이 안 간 길을 개척하느라 상처도 받았고 자신이 몸담았던 대우가 해체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아픔도 겪었고 20위권이던 허약한 회사를 막강하게 키웠던 메리츠증권에서도 자의 반 타의 반 물러났다.

그런데 주가변동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증권시장, 히스테릭한 여성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주가를 부여잡고 어떻게 30년을 ‘선두주자’로만 살아왔는지 신기했다. 또 지금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상장회사협의회 자문위원, 한국증권분석사회 회장, 이대 경영대 겸임교수 등 맡은 일이 많아 “일중독이시냐”고 물었더니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불쾌한 듯했다.

“제가 놀 때는 참 잘 놀거든요? 여행도 좋아하고 술도 잘 마시고 노래도 잘 부릅니다.(옆에 있던 김강수 이사도 ‘성악가 수준’이라고 동의했다) 일중독이 되면 곤란하죠. 일에 푹 빠져 정작 떠날 때를 모르고 얼쩡대면 얼마나 추합니까.

미국에서 근무할 때 ‘라이프’란 화보 잡지에서 프랑크 시나트라의 고별공연 장면을 봤습니다. 마지막 무대에 불이 꺼지자 어둠속에서 그가 담배를 붙여 물었는데 그 파르스름한 담배 불빛을 페일블루라고 하는데 아, 예술이더군요. 그리곤 그가 부른 노래가 바로 ‘My Way’예요. 술을 마시면 제가 부르는 노래도 마이웨이랍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즐겨 암송한다는 그는 자신의 판단과 자기 스타일로 ‘마이웨이’를 걸어온 것을 자부심으로 느끼는 듯했다. 남들이 걱정하는데도 증권회사를 지켰고, 대형 증권사 사장으로 가려다가 증권업계가 살아나야 할 것 같아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며 협회회장에 도전해 성공했다. 그의 열정 때문인지 혹은 운이 좋은지 증시도 좋고 증권업계도 활성화되어 ‘회장님’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다.

그러나 증권보다 더 황 회장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꽃과 나무란다. 여행광이면서도 원예가 취미여서 문익점처럼 네덜란드에서 몰래 들여온 튤립을 연희동 집 마당에 심어놓고 내년 봄에 아름답게 피기를 기다린다. 헤르만 헤세도 정원 가꾸기가 취미여서 ‘정원일의 즐거움’이란 책을 썼다며 “정원일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는 법과 봄을 기다리는 자세를 배웠다”고 했다. 갑자기 ‘경제교실’에서 ‘문화·인생교실’로 분위기가 바뀌었고 황 회장도 행복한 표정이었다.

인터뷰 전에 증권업협회와 황 회장에 관련된 자료를 요청하자 “그런 자료없이 그저 편안하게 이야기나 하자”더니 정작 책상엔 ‘유인경이 만난 사람들’ 기사가 스크랩되어 있었고 자신을 표현할 다양한 화제까지 준비해두었다. 명사인명록에 그가 직접 기록한 생활신조가 ‘진인사대천명,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자’라는 것이 그때야 기억났다.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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