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우드 에스티로더 한국지사장

2005.11.15

“한국 매력에 푹 빠져 미국 본사 승진도 포기했죠”
유방암 예방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 앞장 선 ‘한국 마니아’

[유인경이 만난 사람]크리스토퍼 우드 에스티로더 한국지사장

‘에스티로더’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하고 제일 잘 팔리는 화장품회사이지만 엘카코리아(에스티로더 한국지사)는 한국에서 제일 큰 외국계 회사는 아니다. 서울 신사동 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은 120명 정도. 하지만 그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인 크리스토퍼 우드 사장(45)은 아마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계 회사 대표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CEO일 것이다.

우선 198㎝라는 커다란 키에 영화배우 같은 수려한 외모가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그가 미국 본사의 사장자리를 포기하고 2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다른 업계에서도 깜짝 놀랐지만 사원들과 백화점 매장의 여직원들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보여준 열렬한 환영은 마치 유명스타의 컴백 무대 같았다.

또 지난 10월 한 달 동안 그는 유방암 예방을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을 벌이며 서울시청을 핑크빛으로 장식하고 전국을 누비며 한국의 유방암 환자 돕기에도 나섰다. 시청 행사 때는 두루마기에 가죽신까지, 완벽하게 한복차림을 갖춰 눈길을 끌었다.

2000년부터 핑크리본 캠페인을 통해 유방암 의식향상을 하고 무료검진은 물론 유방암 환우 돕기에 해마다 1억 원 이상의 돈을 기부하는 엘카코리아는 이 행사 이후 태평양화학, 신영 와코루 등에도 자극을 주어 10월을 유방암의 달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한 달 내내 대한민국을 핑크빛으로 만들었던 크리스토퍼 우드 사장은 대한민국을 너무 사랑해서 결혼도 한국 여성과 했고,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의 이름도 ‘사랑’이며 양식보다 한국음식을 더 잘 먹는다. 그리고 한국에 오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일하는 임원들이 너무나 갈망하는 미국 본사의 사장자리를 포기했다고 한다. 왜 이렇게 그는 한국을 좋아할까, 한국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싫어서 이민을 떠나는데….

한국 여성과 결혼, 한국어 실력도 유창

크리스토퍼 우드 사장을 만날 때는 영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개인 가정교사까지 두면서 배운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일상대화가 가능하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그 나라를 사랑하려면 첫째 관문이 그 나라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한국인 직원들에게 사랑받는(?) 비결도 ‘말이 통하는 외국 상사’이기 때문이란다.

“저는 캐나다인이지만 아버지가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유럽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하고 직장도 가져서 15개국에서 살아봤습니다. 캐나다, 미국, 독일,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 노르웨이, 이탈리아, 일본, 오스트리아, 한국… 또 어디더라? 여러 나라에서 살아보니 그 나라의 언어, 음식, 자연에 애정을 느껴야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일도 성과를 거둘 수 있더군요. 그 여러 나라들 중에서 한국이 제일 좋아요.
한국어는 배우기 어렵긴 해도 정말 아름답고 멋진 언어예요. 또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이 서툴지만 한국어로 말하면 금방 마음을 열어 보이고 친절하게 대해주죠.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선 외국인이 자기 나라 말을 쓰면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심지어 ‘그냥 영어로 말하라’고 하죠.

또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와 같이 가는데 음식이 불쌍한(?) 나라는 문화도 불쌍하더군요. 한국 음식은 다 좋지만 특히 매운 음식을 좋아해요. 마지막으로는 자연인데 한국은 4계절이 확실해서 벚꽃과 단풍 등을 다 볼 수 있어요. 독도와 울릉도를 빼고는 전국을 거의 다 다녔을 겁니다. 어디에서나 등산을 할 수 있고 여름엔 수상스키, 겨울엔 스노보딩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근사한가요. 오래 살았던 외국인들은 다 한국의 매력에 푹 빠지죠. 하지만 한국은 외국인들에게는 김치나 2002년 한·일월드컵 정도로만 알려져 있고, 아직도 아주 위험하고 이상한 나라로 여겨지거든요. 왜 한국이 나라 홍보에 적극적이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크리스토퍼 우드 에스티로더 한국지사장

화장품회사 사장으로서도 그에게 한국 여성들은 매력적이고 고마운 분들이다. 일단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피부나 화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쌀을 씻은 쌀뜨물로 세수할 만큼 전통적으로 피부를 곱게 가꾸고 사우나 등을 즐기는데다 서양인들은 쓸 필요가 없는 ‘화이트닝 화장품’을 발라서 매출 증대에 기여해주기 때문이다. 우드 사장은 “화이트닝제품을 바른다고 얼굴이 백인처럼 하얘지는 것은 아니다. 피부 색깔의 톤을 일정하게 해줘서 비교적 투명하고 하얗게 보이는 것”이라고 정직하게 설명해준다. 또 피부도 곱지만 모든 여성들이 다 립스틱을 바르고 외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마 유일할 거란다.

“정말 놀라워요. 떡볶이를 파는 아줌마부터 여사장이나 여장관까지, 학생부터 할머니까지 립스틱을 다 바르더군요. 지난해 명품 화장품 사용의 경우 미국에 이어 한국 여성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시장을 주목하고 있죠.”
이런 한국의 매력과 또 몹시 사랑하는 부인과 어린 딸이, 본사가 있는 미국 뉴욕에서는 너무 외로울 것 같아 ‘출세’를 포기하고 ‘가족사랑’과 ‘진정한 행복’을 위해 다시 한국 근무를 자원했단다.

“딸아이를 매일 제가 목욕시키거든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또 한국인인 아내가 친구나 친정 식구들과 교류를 해야 행복하니까 한국 생활을 선택한 거죠.”

그의 부인 최지숙씨는 프랑스 보석회사인 카르티에에서 근무했던 재원으로 우드 사장은 사교적이고 유능한 최씨를 자신의 회사에 스카우트하려고 노력하다가 자기 아내로 스카우트했단다. 그는 “아내는 나의 가장 확실하고 훌륭한 투자”라면서 “착하고 귀여운데 결혼 후에 더 예뻐진 것 같다”고 아내 자랑이 늘어진다. 그래도 한국어를 완벽히 배워 ‘마누라 자랑하면 팔불출’이란 말은 아는지 아내 자랑을 하면서 얼굴이 빨개지기는 한다.

한국어, 음식, 자연, 한국 여성까지 모두 사랑하는 그가 한국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음, 사실 별로 큰 관심은 없어요. 하지만 이명박 시장은 참 재미있는 분으로 보이더군요. 지난해와 이번 핑크리본 행사를 서울시청 광장에서 했는데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고 ‘한다’고 말하면 진짜 하더군요. 청계천도 그렇고, 버스 노선도 그렇고…. 말만 번드르르한 정치인이 많으니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데 정치인들이 잘 해야 국가 이미지가 좋아지거든요.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뉴스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온통 데모하는 장면뿐이었어요. 지금도 미국 본사의 중역들 가운데는 서울 출장올 일이 있는데도 위험하다고 안 오겠다는 이들이 많아요. 미국 언론에서는 김정일이 굉장히 위험한 인물로 묘사되니까 그렇기도 하겠죠. 한국은 국제적으로 정말 중요한 나라인데 제대로 홍보가 안 되었다는 걸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크리스토퍼 우드 에스티로더 한국지사장

기록적 판매신장 이뤄내 실력 인정받아

캐나다 온타리오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인 그는 유럽에서 일하고 싶어 프랑스 INSEAD 경영학 석사를 따고 화장품회사인 로레알에서 근무했다. 에스티로더 그룹과의 인연은 1993년부터. 크리니크의 독일 브랜드 매니저, 캐나다 부사장 등을 맡으며 기록적인 판매신장을 이뤄 실력을 인정받았다. 유능한 리더의 조건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들어주되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

에스티로더 한국지사의 경우 최고급 화장품을 마음껏 쓸 수 있는데다 미국 본사 연수 및 각종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선망받는 직장이기도 하다. 우드 사장은 인재를 고를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

“우리는 공개채용보다 수시로 사원을 뽑는데 중견사원의 경우 ‘People’s Person’을 고릅니다. 똑똑한 실력파보다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화장품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은 여성이 대부분이고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데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노래방에서도 흥겨운 시간을 나눌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 다음은 열정을 갖고 일하며 투명한 사람입니다. 업무를 확실하고 투명하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유능해도 위험부담이 크지요.”

대부분의 화장품업계가 그렇지만 이 회사도 여성 비율이 80%나 된다. 전무·상무 등 관리직들도 온통 여인천하다. 우드 사장은 “여성들은 자신이 할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남성들은 직급 등 타이틀에 너무 연연해하고, 또 변화하는 환경에도 더 잘 적응하는 것이 여성들이어서 아무래도 여성들을 더 많이 뽑는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남자들이 실세다. 화장품 코너가 입점된 백화점의 경우 판매하는 이들은 모두 여성이지만 그 매장과 직원들을 관리하는 백화점 직원들은 거의 남성들이다. 반면 미국, 싱가포르, 대만 등은 백화점 관리직도 거의 여성이란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CEO로 필요한 점은 무얼까. 우드 사장은 ‘스피드’란 단어를 선택했다. 물론 요즘은 커다란 것이 작은 것을 먹는 세상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기고 지배하는 스피드 시대이긴 하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행은 물론 사업환경 등 모든 것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그 변화를 잘 파악해 신속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수라는 것.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의 1년은 유럽에서의 5년과 같고 한국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짜릿함과 충격을 준다’고 한다.

“변화에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기고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입니다. 항상 현재에 충실하면 어떤 변화가 닥쳐와도 흔들리거나 당황하지 않으니까요.”

198㎝의 미국인인 그가 손가락 크기의 립스틱이나 엄지손톱만한 샘플을 여직원들에게 설명해주거나 떡볶이를 먹으며 미소짓는 모습은 아름답다. 한국인과 잘 지내기 위해 한국어를 완벽히 익히고, 혀가 얼얼해지는 매운 음식에도 도전하고, 기사를 잘 써달라며 여성잡지사까지 일일이 방문하는 그의 성실함은 더욱 아름답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그는 매일 기도를 한다는데 혹시 그가 “대한민국 여성들이 더욱 더 화장을 많이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기도 덕분인지 화장하는 여성은 물론 남자들도 화장하는 이들이 늘어서 말이다.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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