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로 회귀? 미국, 중동 완전히 털지 못할 것”

김찬호 기자
2021.09.06

중동문제전문가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아프가니스탄 국가 재건을 위한 미국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아프간 정권은 미군의 단계적 철수가 시작된 지 약 4개월, 탈레반이 주요 거점도시를 장악한 지 불과 10일 만에 수도 카불을 내줬다. 아프간에서 미국의 20여년간의 노력은 흔적을 남기기 어렵게 됐다. 탈레반의 국가 재건은 미국이 추구한 자유,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와는 반대 방향으로 질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변화는 아프간 내부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아프간 주변국들은 돌아온 탈레반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동쪽으로 중국, 서쪽으로 이란, 남쪽으로 인도와 파키스탄, 북쪽으로 러시아 등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국가들로 꼽힌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중동 일대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9·11테러로 촉발된 아프간전쟁 이후 2003년 ‘대중동 구상(The 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을 발표한다. 민주주의가 부재한 중동 국가들의 정치개혁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성립된 대중동개념에 아랍연맹 22개국과 이란, 터키, 이스라엘,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간이 포함됐다. 결과적으로 약 20년을 간격으로 아프간은 또다시 중동정세 변화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미국이 만든 힘의 진공상태에서 앞으로 지역질서는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중동 국제관계를 연구한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와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인터뷰는 지난 8월 25일 경향신문에서 진행했다.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힘의 공백을 감수한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 국내적으로 이라크전쟁이나 아프간전쟁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중동지역에서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는 것에 대해 미국 여론이 더 이상 우호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이전의 트럼프,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기조를 이어서 아프간 철군을 결정한 것이다.”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이 모두 같은 정책을 공유한다는 것인가.

“해외 군사개입을 줄인다고 하는 부분에서 같다. 트럼프 역시 아프간 철군을 위해 탈레반과의 평화협정을 시도했다. 만약 재선된다면, 즉각 철수를 결정할 수 있게 이미 방향을 잡고 있었다. 바이든의 아프간 철군이 독특한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논란은 있다. 현재 트럼프가 바이든이 ‘탈레반에 항복했다’고 비판하지 않나. 똑같이 철수를 고려했지만, 자신은 ‘조건부 철수’이기 때문에 차별화된다는 논리다. 트럼프는 아프간에서 철수한 뒤 탈레반이 몇몇 조건을 위반하면 다시 들어갈 방침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 트럼프 재임 당시 탈레반과 협상이 잘 진행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결국 누가 됐든 미군이 아프간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정보 실패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아프간 정부군이 이렇게 빨리 무너질지 몰랐던 것이다.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2~3년 내에 탈레반이 득세할 가능성 정도만 예상했던 것 같다. 미국은 지난 20여년간 아프간에서 국가건설에 실패했고, 철수과정에서도 실패가 있었다.”

-탈레반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미국이 키워준 것과 다름없지 않나.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 책임론이 있다. 미국은 ‘아프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련이 아프간에서 군사적 소모전을 펼칠 수 있게 ‘무자헤딘’이라는 전사들을 양성할 수 있게 도왔다. 미국이 만든 무기 등 많은 것들이 지원됐다. 그런데 미국은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이 떠난 뒤의 상황은 고려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나가고 난 자리에서 탈레반이 생겨났다.”

-미국은 중동 일대에서 더 이상 세력균형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가.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는 미국의 핵심이익 문제가 있었다. 이념문제는 제외하고 실질적 문제만 살펴보자. 당시 아프간이 소련에 넘어가면 페르시아만 지역이 위험할 수 있었다. 이는 원유수급 전략에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다. 결국 당시에는 사활을 걸어야 할 이익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에너지 수급 부분에서 중동지역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에 더해 미국이 20여년간 이 지역 문제에 개입하며 얻은 학습효과도 있다. 중동 인접지역에 직접 군사를 파견해 소모전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요인들로 미국의 대외전략이 바뀐 것이다.”
-전략변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기본은 군사개입을 자제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라크는 전투병력은 철수하고, 비전투병력만 남았다. 앞서 시리아 내전 때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화학무기 사용이 확인되면 개입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사우디의 석유시설이 외부 공습을 받았을 때도, 이란의 공격에 의해 미군의 드론이 격추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계속 무엇인가 할 것처럼 말만 하고 실상 힘을 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책의 연속선상에 아프간 철군이 있다. 이제 문제는 미국이 빠진 힘의 진공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보인 외교적 행보로 추론해볼 수 있다. 일례로 아랍과 이스라엘의 데탕트(화해)를 시도한 ‘아브라함 협정’이 있다. 미국은 크게 보아 중동지역에 있는 역내 동맹국들을 활용해 계속 이 지역의 위험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정책적 레버리지도 있다. 경제원조 같은 부분이다. 즉 역외에서 동맹국들을 움직여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뢰성’의 문제가 생긴다. 이번 아프간 철군 결과가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신뢰성 문제는 무엇인가.

“아프간 사태로 결국 가장 충격을 받는 것은 미국의 동맹국들이다. 쉽게 말해, 중동이나 그 인접지역 동맹국 사이에서 ‘미국이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간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심겠다고 들어가서 이게 잘 안 되니까 그냥 나가버리는 모양새다. 향후 분명히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중국은 이런 상황에서 차츰 중동지역에 대한 경제적 관여를 늘리고 있다. 이제 역내 친미국가들도 중국과의 관계를 헷징(위험회피) 전략으로 고려할 것이다. 이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가 문제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오른쪽)이 지난 7월 28일 탈레반 공동 설립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중국 톈진에서 회담을 가진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톈진 신화=연합뉴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오른쪽)이 지난 7월 28일 탈레반 공동 설립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중국 톈진에서 회담을 가진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톈진 신화=연합뉴스

-아프간을 신호탄으로 중동 일대에서 미국에 대한 연쇄적 반발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나.

“중동지역에서 미국이 유지한 패권에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다만 이 지역 국가들 역시 한국처럼 미중 사이에서 명확한 입장을 밝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묘한 문제인데 일단 미국에 대한 신뢰성이 하락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헷징 전략이 먼저다. 반미 국가들이 미국에게 이제는 중동에서 떠나라고 재촉할 수는 있겠다.”

-반대로 미국이 중동에서 완전히 빠질 가능성은 어떤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이 유지된다고 봐야 한다. 미국이 새로운 전략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지정학적 중요성에 더해 이스라엘 안보문제, 에너지 수급문제가 걸려 있다.”

-중국이 중동 일대에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은 없나.

“중국이 안보적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자칫 수정주의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국이 미국을 비판한 것은 타국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고 내정간섭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군사력을 투입하면 미국과 다를 것 없는 상황이 된다. 중동에서 미중 군사대결이 벌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탈레반 지도자를 만난 것처럼 계속해서 협력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탈레반은 종교지상주의고, 중국은 기본적으로 무신론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다. 이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나.

“종교적 문제로 관계가 좋지 못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중국은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종교가 현실 정치에서 중요한 변수가 되지는 않는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탈레반을 인정할 것이고, 상호 협력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다만 중국이 원하는 것은 탈레반이 과거 1990년대처럼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 아프간 내 여러 집단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형태가 될 것을 원한다. 최악은 탈레반으로 인해 아프간 내전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정치·안보적 불안은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정책에 도움이 안 된다.”

-판지시르 지역에서 아흐마드 마수드를 중심으로 탈레반에 맞서고 있다. 사실상 내전 아닌가.

“그들은 미국의 지원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더 이상 군사·안보적 개입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중국이 아프간이 내전으로 치닫길 원하지 않는 것처럼 미국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이 저항으로 아프간에 포괄적인 정부가 구성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런데 이 역시 궁극적으로 탈레반이 리더가 되는 것이다. 중동 일대의 역사는 이미 연립정부가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에서도 연립정부가 구성됐지만, 국가 성립이나 거버넌스가 만들어지는 것은 어려웠다. 이제는 탈레반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1990년대와 달라진 이른바 ‘탈레반 2.0’을 주장하는 만큼 얼마나 상대를 포용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과 단절되지 않으면서 국가 재건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도 이끌어내야 한다. 탈레반이 이걸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가 향후 아프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반 탈레반 저항군이 지난 8월 24일(현지시간) 북부 판지시르주 다라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 판지시르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반 탈레반 저항군이 지난 8월 24일(현지시간) 북부 판지시르주 다라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 판지시르 AFP=연합뉴스

-향후 중동국가들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라고 보나.

“미국은 아프간에 일방적으로 개입했다가 떠났다. 중동에서의 영향력 감소와 쇠퇴가 따를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 세력이 무너지고 중국이 들어올 수 있다는 문제에서 미국의 타격도 클 것이라고 본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미국 스스로 반성적 고찰이 있을 것이다. 역내국가들 역시 기존 미국의 패권에 의존해왔던 상황을 다변화하는 데 관심이 생길 것이다. 그 형태는 자력방위나 중국의존 혹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는 중동국가들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동아시아에서 대중국 봉쇄 라인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연장선인데 사실, 이 부분도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 때 그렇게 아시아로 간다고 외쳤지만 정말 중동에서 군사적 연루를 피할 수 있었나. 이슬람국가(ISIS) 문제가 터지자 오바마는 결국 다시 중동에 개입했다. 중동에 군사적·자원적 문제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다 털고 아시아로 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시아로 힘을 집중하는 것은 미국이 원하는 방향은 맞다. 다만 중동의 구조적 현실이 미국이 발을 쉽게 뺄 수 있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또 미중경쟁은 아시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중동에서도 미중경쟁이 있다. 지금은 동아시아에 대만, 한국 등 안보적 문제가 있다. 중국이 위치한 곳이 아시아다 보니 더 부각되는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국이 중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중동은 미국이 오랜기간 군사적으로 관여한 곳이다. 많은 인명 희생이 따르면서 반전여론도 형성됐기때문에 미국이 떠날 조건이 됐다. 우리와는 비교 대상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중동과는 다른 동아시아의 정치적 맥락이 작동한다. 중국 봉쇄가 대표적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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