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향할까? 탈레반호 아프간의 항로

박은하 국제부 기자
2021.09.06

경제적 이유 등 국제사회 공인받고자 행동 자제 가능성… 극단주의 세력 집결은 변수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지 아흐레 만인 8월 24일(현지시간) 히잡을 쓴 아프간 여성 5명이 멕시코시티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의 리더는 로야 마흐부브(34). 아프간 여성들로만 팀을 꾸려 국제로봇경진대회에도 참가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과학기술 교육 사업도 진행해온 아프간 최초의 여성 정보통신(IT)기업 최고경영자(CEO)이다. 마흐부브는 20년 만에 탈레반이 재집권하자 함께 로봇대회에 나간 ‘아프간 드리머’팀을 이끌고 망명을 선택했다. 이들은 공항에서 “우리의 꿈이 슬프게 끝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 중부 차만에서 지난 8월 26일(현지시간) 탈레반을 피해 고국을 등진 아프간인들이 국경을 넘고 있다. / 차만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 중부 차만에서 지난 8월 26일(현지시간) 탈레반을 피해 고국을 등진 아프간인들이 국경을 넘고 있다. / 차만 AFP=연합뉴스

아프간은 불안한 나라였다. 미국이 전쟁으로 탈레반을 몰아낸 뒤에도 정부 공무원들은 부패했고, 빈곤율은 탈레반 집권 시절보다는 낮았으나 45%에 달했다. 여성 앵커가 뉴스 스튜디오에서 남성과 나란히 방송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비난에 시달리다 친오빠에게 명예살인을 당하는 사회였고,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3%에 지나지 않았다. 탈레반 공세에 30만명에 달한다는 정부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탈레반이 돌아온 뒤 벌어진 망명 행렬은 탈레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지난 20년간 아프간의 성과를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아프간에는 여성 기업인, 공무원, 가수, 의사, 태권도 선수가 있었다. 여성들은 학교에도 가고 투표도 할 수 있었다. 탈레반의 귀환으로 아프간 여성들의 지난 20년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국제사회는 아프간 여성들의 처지를 통해 ‘정상국가’ 아프간 여부를 가늠할 수 있게 됐다.

1기 집권 때와 달라진 환경

탈레반은 카불 점령 이후 지난 20년간 탈레반도 달라졌다며 “히잡을 쓴다면 여성의 교육과 일자리에 대한 접근이 보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가 탈레반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프간 안팎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탈레반 집권 이후 여성들은 대학 졸업장을 불태우기 시작했으며 부르카 가격이 치솟았다. 일터와 미디어에서 여성들이 사라졌고, 여성 혼자 외출했다가 탈레반 대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경험담·목격담 등이 잇따랐다. 아프간 북부 판지시르 저항군에 합류한 암룰라 살레 아프간 부통령은 지난 8월 22일 “이념적으로 ISIS와 알카에다, 탈레반의 차이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차이와 같다”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란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신념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환경은 달라졌다. 그렇다면 행동이 달라질 여지는 없을까. 좁은 길이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평가받는다. 이웅현 고려대 융합교육원 교수는 “탈레반은 1기 집권 때와 지금 상당한 차이가 있다. 1기 집권 시절 탈레반은 무주공산인 상태에서 여러 군벌 간 벌어진 내전 상태에서 승리해 집권했다. 반면 지금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정상적인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것”이라며 “탈레반으로서도 급작스럽게 나라 전체의 통치를 맡게 된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탈레반 스스로도 당초 아프간 정부를 위협해 평화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했지 카불을 점령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탈레반은 지난 8월 13일 카불 목전까지 진격하고 멈췄다. 숨 고르기를 하려던 의도였는데 그 사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카불을 버리고 달아나 카불을 점령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프간 인구의 3분의 2가 젊은이들로 과거 탈레반 통치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란 점도 변수다. 사상자가 나왔음에도 카불에서는 반탈레반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8월 21일 카불에서 열린 자비울라 무하지드 탈레반 대변인의 기자회견에 히잡을 쓴 여성 기자가 참석해 질문을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지난 8월 21일 카불에서 열린 자비울라 무하지드 탈레반 대변인의 기자회견에 히잡을 쓴 여성 기자가 참석해 질문을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1기 집권 과정은 달랐다. 1987년 수립된 아프간 공산정권은 소련 붕괴 이후 후원자를 잃은 상태에서 이슬람 게릴라 세력인 무자헤딘에 패해 1992년 무너졌다. 민족적·사상적 배경이 다양했던 무자헤딘은 이후 자신들끼리 내전을 벌였고, 파슈툰족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주축이 된 탈레반이 내전의 최종 승리자가 됐다. 이 교수는 “당시에는 군사적 승리가 집권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면 지금 탈레반의 제1관심사는 군사적 역량을 행정적 역량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기반을 뒀다 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인정받는 아프간의 통치자가 되려 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 공인을 받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과거보다는 자제할 가능성이 생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내전

경제는 탈레반이 떠안은 가장 큰 짐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프간의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8억1000만달러(약 23조1600억원)에 불과했다. 아프간 GDP의 42.9%가 원조에서 나왔다. 올해도 국제사회로부터 33억달러(약 3조8620억원)를 받을 예정이었다. 탈레반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조직이 아니라 여러 분파가 연결된 집단이다. 탈레반 분파들은 적게는 4~5개, 많게는 20여개까지 분류된다. 통치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경제가 무너질 경우 지방세력들이 등을 돌리면서 카불의 지도부가 급속히 쪼그라들 수 있다. 탈레반은 북부 희토류 등의 자원을 활용할 구상을 내비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국제사회의 원조다.

전체적인 전망은 어둡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앞으로 아프간을 통치할 12인 위원회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물라 무함마드 야쿠브, 칼릴 하카니, 하미드 카르자이가 포함됐다. 바라다르는 온건파 탈레반으로 분류되며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 및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에 참여해 왔다. 하미드 카르자이는 아프간 초대 대통령으로 1996년의 탈레반이었다면 ‘부역자’로서 숙청대상 1순위이다. 온건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사인이다. 야쿠브와 하카니는 반면 미국의 테러리스트 명단에 오른 인물이다. 특히 하카니가 아프간 제2도시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이끄는 하카니 네트워크는 극렬단체로 분류된다. 국제사회로 인정받기 위한 아프간 탈레반 지도부 성향에 반기를 들 만한 세력이다.

아프간으로 집결하는 극단주의 세력도 변수다. ISIS가 카불공항에서 테러를 벌여 사상자가 나오고 탈레반이 지도력을 잃고 붕괴하거나 내전에 빠져드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유튜브 채널 <솔로비요프 라이브>에서 ISIS의 테러 가능성을 경고한 드미트리 쥐르노프 주아프간 러시아대사는 “그래도 탈레반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탈레반을 현실 권력으로 인정하고 온건파 탈레반이 통제력을 행사하도록 국제사회에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가닥 가능성을 위해 탈레반과의 공존이라는 어려운 과제가 국제사회에도 던져졌다.

<박은하 국제부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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