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통해 인간의 조건을 묻는다

주영재 기자
2021.06.07

주목받는 비거니즘 웹툰·만화 작가, 탄새·불곰·보선·d몬

“그날 사고 이후 내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많아졌다.”(<아삭아삭 테이블> 중) 마음을 열면 동물의 고통을 들을 수 있을까. 비거니즘(veganism)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채식과 채식을 선택하는 주요 동기인 동물권을 주제로 한 웹툰과 만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리디북스가 지난 5월 12일 공개한 <아삭아삭 테이블>과 지난해 출간된 <나의 비거니즘 만화>(푸른숲), 네이버 웹툰에 소개된 후 지난 3월 단행본으로 출간된 <데이빗>(푸른숲)을 대표 작품으로 들 수 있다. 비거니즘이란 동물의 삶을 존중하고, 동물의 착취에 반대하는 삶의 방식과 철학을 말한다.

왼쪽부터 <데이빗>, <나의 비거니즘 만화>, <아삭아삭 테이블>의 표지 / 푸른숲, 리디 제공

왼쪽부터 <데이빗>, <나의 비거니즘 만화>, <아삭아삭 테이블>의 표지 / 푸른숲, 리디 제공

탄새 글·불곰 그림의 <아삭아삭 테이블>은 교통사고 이후 동물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주인공 ‘마하’가 남몰래 채식을 시작하며 겪는 일상을 담았다. 직장에서 점심을 먹을 때 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거나 육식파 남자친구를 위해 고기 반찬을 준비하면서 겪는 갈등의 순간이 눈에 띈다. 두부 스크램블처럼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면서도 맛있는 채식 요리 정보도 실려 있다. 읽다 보면 직접 채식 요리를 만들어보게 된다.

보선의 <나의 비거니즘 만화>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인 ‘아멜리’가 비건으로 살기로 결심한 이후 겪는 삶의 변화를 일기처럼 보여준다. 비거니즘을 지향한다면, 그것이 비록 불완전한 실천일지라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비거니즘이 필요한 이유를 환경과 동물권, 건강의 측면에서 설명하는데 고갱이만 알기 쉽게 설명해 비거니즘 입문서로도 추천할 만하다.

d몬의 <데이빗>은 <에리타>, <브랜든>으로 이어지는 사람 3부작의 첫 작품으로, 말하는 돼지 데이빗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묻는다. 서커스 구경감에 불과했던 데이빗이 인권단체 스피릿을 만나 자신의 인권을 찾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면서 갈등이 극에 치닫는 과정을 흡인력 있게 그렸다. 데이빗을 통해 사람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서의 동물을 생각하게 한다. 세 작품의 작가를 짤막하게 인터뷰해 작품의 창작 동기 등을 물었다.

-작품을 창작한 계기는.

탄새 “채식에 관한 이야기가 점점 많아져 궁금한 마음에 공부를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채식 소재 웹툰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부분에서 불곰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인기 많은 장르와 소재를 하자고 해놓고, 인간과 동물을 소재로 한 <사랑양장점>, 채식을 담은 <아삭아삭 테이블>을 연재하게 돼서요. 그럼에도 지금 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데이빗> 작품 속 한 컷

<데이빗> 작품 속 한 컷

보선 “비건이 된 후 세상이 넓어지고 각성된 느낌이 좋아서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비거니즘은 동물권과 환경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딱딱하기도 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완독했으면 좋겠다, 대화가 일방적이지 않고 사람들이 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거부감을 덜 느끼는 만화 형식을 택했습니다.”

d몬 “‘돼지의 몸을 지닌 사람’이라는 소재는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어렴풋이 가졌습니다. 돼지와 인간의 장기가 매우 흡사하다는 이야기를 접한 이후입니다. 돼지와 인간의 다른 점이 외형뿐이고 다른 모든 게 인간과 같다면 그 돼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본격적으로 사람 3부작 기획을 세우고 데이빗의 스토리를 구상할 무렵엔 보다 명확하게 데이빗의 외형을 돼지로 설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 작품 속 한 컷

<나의 비거니즘 만화> 작품 속 한 컷

-데이빗을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봐야 할까.

d몬 “데이빗은 계속해 스스로의 인간성을 입증하지만 계속 반대에 부딪힙니다. 그 이유의 절대적인 부분은 바로 그의 외형이 ‘돼지’이기 때문입니다. 데이빗의 인권을 향한 몸부림에도 ‘넌 돼지잖아’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는, 잔인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이며 또한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데이빗의 외형이 돼지가 아닌 보다 인간에게 친숙하고 호감을 주는 동물이었다면 우스갯소리나마 더 쉽게 인권을 인정받았을 거라는 몇몇 독자의 의견처럼 인간과 같은 감각과 인지, 도덕적 판단력 이상으로 ‘사람’다움을 구분하는 건 인간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 외형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삭아삭 테이블> 작품 속 한 컷

<아삭아삭 테이블> 작품 속 한 컷

-채식을 실천하는지,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

탄새 “지향을 하고 있긴 하지만 완전 채식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작품을 기획하기 전부터 주변에 채식을 도전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동물권이나 육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정보를 접했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좋은 점이 없다면 굳이 안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불곰 “이번 작품을 시작하면서 ‘비건에 대한 만화를 그리는데 내가 고기를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고기를 먹어서 운동 후 삼겹살 유혹을 참기 힘들지만, 적어도 제가 직접 차리는 식탁에는 고기를 올리지 않거나, 앞서 말한 유혹을 참기 위해 외식을 줄이는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선 “특별한 계기가 단번에 있었다기보다 차곡차곡 쌓인 편입니다. 특히 <동물의 권리>라는 책을 본 후 그 전엔 전혀 없는 존재였던 비인간 동물이 눈에 들어왔고, 관련 다큐멘터리와 책을 보면서 채식을 결심했습니다. 처음부터 완전채식을 한 건 아닙니다. 고기를 줄이는 건 지금 당장 할 수 있겠다, 어렵지 않겠다 생각해 시작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레 완전채식이 됐습니다.”

-최근 채식이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탄새 “기후위기를 직접 체감하면서 채식이 확산되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환경을 포함해 건강과 윤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지 않았을까요. 저 또한 그랬고요.”

불곰 “이번에 비건 식당을 처음 가봤는데, 사람이 정말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SNS를 조금 둘러봐도 채식에 관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보선 “인수공통전염병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인간과 동물, 환경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채식 인구가 지난 10년간 10배 증가해 150만명 수준에 이르렀고, 그중 완전채식 인구만 50만명에 달합니다. 채식 인구 증가로 시장성이 확보되면서 대기업이 관련 제품을 내고,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중요한 변화라고 봅니다.”

-<데이빗> 등 인간 3부작이 다루는 주제는.

d몬 “생물학적인 인간의 범위가 아닌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람’이라는 개념은 무엇인지 모든 이들이 한 번쯤 생각해보고 의견을 주고받는 경험을 만드는 것입니다.”

-독자평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은.

보선 “책을 읽고 당장 비건이 됐다는 반응도 있지만 어렵게만 느끼고, 죄책감만 느끼고 외면했는데 조금 불완전해도 괜찮다고 말하니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는 분이 많았습니다. 초등학생 고학년 자녀가 있는 부모가 책을 보다 놔뒀는데 아이가 그걸 읽고 자기도 채식을 하겠다고 말했다는 사연도 들었습니다. 육식을 정상으로 보는 사회라 정보 불균형이 심한데 아이가 현실을 보고 직접 선택했다는 점에서 뿌듯했습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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