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아직도 시민의 생명은 존엄하지 않다

2017.01.17

‘세월호 1000일’ 맞아 생명 지키는 의무 다하지 못하는 정부와 기업에 확실한 책임 물어야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한 노동자가 숨졌다. 나이는 열아홉 살,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과 같은 나이였다. 공고를 다니다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졸업과 동시에 그 하청업체에 정식 입사한 그 노동자는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하다 달려오는 열차에 치여 숨졌다. 그 노동자는 죽어가는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까? 꿈도 많았고 의지도 굳세어서 매달 100만원씩 저축을 하던 이 젊은 노동자의 생명은 그렇게 쉽게 스러져갈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죽지 않아도 될 생명이 한 해에 2400명이나 사라진다. 열심히 일만 해왔던 이들이 일터에서 죽어간다. 아직도 노동자의 생명은 존엄하지 않다.

생명과 안전을 자신의 역할로 여기지 않는 정부

그 생명이 존엄함을 인정받은 것은 시민들의 눈물이 땅을 적셨을 때였다. 시민들은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국화꽃을 바치고 포스트잇을 붙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사람의 생명이 기업의 이윤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눈물과 공감 앞에서 ‘작업자 과실’이라던 서울메트로의 주장은 힘을 잃었다. 서울메트로는 결국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진상조사를 약속했다. 진상조사 결과 생명·안전업무를 무분별하게 외주화했고, 같은 사고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도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서울시는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노동자들 및 다른 안전업무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으로 전환시켰다.

많은 이들이 청년의 영전에 국화꽃을 바치고 포스트잇으로 자신의 뜻을 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시민들은 이 죽음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겼을까? 이 청년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지만, 안전장치 하나 없는 위험한 일터로 내몰리고, 운이 나빠 다치거나 죽으면 모두 개인의 책임이 되고, 결국 최선을 다한 나의 노동이 죽음으로 끝나는 게 나의 삶일 수도 있다는 자각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작업자 과실’이라는 서울메트로의 주장을 거부하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하며 ‘가만히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5월 스크린어 사고가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 추모 쪽지와 국화꽃이 매달려 있다. 이곳에서 작업하다 사망한 19세 비정규직 청년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김창길 기자

지난해 5월 스크린어 사고가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 추모 쪽지와 국화꽃이 매달려 있다. 이곳에서 작업하다 사망한 19세 비정규직 청년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김창길 기자

‘가만히 있지 않음’은 또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이 청년을 위해 흘린 눈물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하루에 7명씩 죽어나가는 산재는 흔하디흔한 것이 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죽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이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시작된 질문이다. 누구라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 죄 없는 이들이 돈만 생각하는 기업과 정부 때문에 죽음에 내몰릴 수 있다는 자각, 사람이 죽는 것이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자각이 세월호 참사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구해야 했던 의무를 가진 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국민의 죽음을 방기하는 현실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은 바뀌는데 정부는 변하지 않았다. 진실을 가로막기 위해 특조위를 해산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법원에까지 압력을 행사한 이 정부는 세월호 참사 1000일이 다 되도록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후안무치함은 이 정권의 정책을 가로지르는 정서이며, 책임자들에게 각인된 행동지침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정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뻔뻔함은 이 정부 책임자들의 머릿속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는 인식이 아예 없음을 보여준다.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정부의 역할로 생각하지 않으니, 공공기관인 코레일도 승객의 생명을 우습게 여긴다. 2015년 대법원은 KTX 승무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승무원들은 코레일의 직원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KTX 승무원들이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코레일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1000명이 타고 있는 고속열차의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안전교육도 받지 않고 응급처치도 할 수 없다면, 도대체 승객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는가. 철도공사는 승무원을 비정규직으로 계속 사용하기 위해 이런 억지를 부렸다. 승객들의 생명과 노동자의 권리는 철도공사의 이윤논리 뒤로 밀렸다.

안전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은 늘 허술하다. 2016년 1월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부품을 만들던 20대 파견노동자 5명이 메탄올에 중독돼 이 가운데 4명이 실명했다. 노동건강단체들이 또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확인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자 고용노동부는 전수조사를 하고는 ‘추가 피해자는 없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주장이 무색하게 그해 10월에 2명의 추가 피해가 확인됐다. 이미 고용노동부가 전수조사를 했다던 사업장 노동자들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사고였지만, 고용노동부의 허술한 감독은 20대 노동자들의 소중한 빛을 빼앗아갔다.

삼성전자 휴대전화 부품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파견 노동자들이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산재 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확인된 실명 피해자만 현재까지 6명이다. / 이준헌 기자

삼성전자 휴대전화 부품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파견 노동자들이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산재 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확인된 실명 피해자만 현재까지 6명이다. / 이준헌 기자

정부는 안전과 생명을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이 ‘안전산업 발전대책’이었다. ‘안전산업 박람회’를 하고 ‘안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안전상품의 해외진출을 돕는 내용이다. 이때 안전산업의 사례로 든 것이 ‘의료민영화’인 원격의료산업이다. 생명과 안전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심지어 안전을 파괴하며 돈벌이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부의 인식이 이 수준이니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난 6일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제조·판매 책임자들은 최고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고, 존 리 전 대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 나라에 정의가 있느냐’고 울부짖었다.

노동자의 목숨값으로 이윤을 더하는 기업들

정부가 변하지 않으니 기업들도 변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안전을 ‘비용’으로 여겨 아끼려고만 하는데,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외주화’다. 2015년 30대 기업 산재 사망 노동자의 95%가 하청노동자다. 경주 지진으로 KTX가 연착했을 때 선로를 유지·보수하던 하청노동자들은 사고를 피하기 위해 자갈이 든 손수레를 밀어넘기고 열차에 치여 숨졌다. 이 노동자들은 열차 연착 정보를 알지 못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 하청노동자들도 한 해 10명 가까이 떨어져 죽고, 압착으로 죽고, 지게차에 치여 죽는다. 핵발전소 하청 정비노동자의 피폭선량은 정규직의 18.9배이다. 기업들이 절감한 ‘비용’은 노동자들의 목숨값이다.

노동자들에게 권한이 없으면 위험은 더 커진다. 경주 강진이 발생했을 때 고용노동부는 경주 인근 사업장에 작업 중지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러니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계속 작업시켰다. 현대자동차만이 노조의 요청으로 긴급하게 작업을 중단했다. 만약 이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졌다면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사망했을 것이다. 2012년 구미에서 불산이 누출됐을 때에도 인접 산업단지 노동자들은 가장 늦게 대피통보를 받았고, 지난해 세종의 한 렌즈회사에서 유해물질이 누출됐을 때에도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2시간이 넘도록 작업을 계속해야만 했다. 위험을 알고 대응할 권리가 노동자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죽거나 다치는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삼성반도체는 20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죽었는데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피해소송 증거채택을 위해 자료제출을 요구했으나 ‘영업비밀’이라면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2013년 삼성공장 불산누출 사고 때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은폐를 시도했다. 이때도 삼성반도체 공장 안전보건 종합진단 보고서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유성기업에서는 한 노동자가 민주노조를 탈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노조 탄압을 기획한 원청 현대자동차도, 부품업체인 유성기업도 모두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한다.

기업이 아직도 노동자의 죽음을 개인 책임으로 떠넘긴다. 2015년 말 현대건설의 대구 현장에 배치된 안전간판에는 ‘안전수칙을 지킵시다. 사고가 나면 당신의 부인 옆에 다른 남자가 자고 있고, 그 놈이 아이를 두드려 패며, 당신의 사고보상금을 없애는 꼴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돼 있었다. 현대건설은 노동자들이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았다거나 산재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으며, 지난 10년간 무려 110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최악의 살인기업이다. 최저낙찰제로 하청에 재하청을 반복해서 위험을 만들어놓고는 산재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노동자 가족에 대한 폄훼로 일관하고 있다. 기업들이 생명을 존중하도록 만드는 것은 법적·사회적 통제뿐이다.

지난해 4월 28일 '세계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희생자의 영정을 들고 거리행진을 했다. / 서성일 기자

지난해 4월 28일 '세계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희생자의 영정을 들고 거리행진을 했다. / 서성일 기자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돼야

박근혜의 탄핵 사유에 ‘생명권 침해’가 포함돼 있다. ‘생명권’이 탄핵 사유로 인용되는 것은 정부가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근혜가 꼭 탄핵돼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기업의 이윤논리 아래에서 ‘생명권’은 중요한 권리로 제기되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호 1000일을 맞은 지금,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돼야 한다는 깨달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가치 위에 서 있을 때 안전을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생명을 지키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처벌방안이 제대로 마련될 수 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기 위해서라도 생명·안전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부여돼야 한다. 비정규직인 노동자들이 승객들의 안전을 제대로 담보할 수 없고, 짧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시민의 안전을 위한 훈련을 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부여돼야 위험에 대해 사회에 알리고, 그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기업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또한 생명과 안전을 우리 사회의 가치로 만들기 위해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시켜야 하고, 안전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한 기업의 이윤도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제 노동자와 시민은 변화하고 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징계와 손배를 무릅쓰고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지진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다.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노동자를 기억하며,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할 권리를 위해 노조와 회사, 서울시와 시민들이 지하철 안전을 논의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지역사회와 힘을 합해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알권리 조례’를 제정하기도 한다. 전국 곳곳에서 알권리 조례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알권리법 제정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노동자와 시민을 위험에 빠뜨린 기업과 최고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힘을 모으기도 한다.

세월호 1000일이 돼 가도 지금 정부와 기업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이런 정부와 기업을 시민들이 제대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한다. 기업에 유해위험정보를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하고, 지역사회가 함께 안전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생명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지역마다 기업과 지역 행정기관을 통제하는 안전지킴이를 구성해야 한다. 촛불광장에서 우리가 정치의 주체로 서 나가듯이 우리의 일상에서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주체로서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고 확실하게 통제하겠다는 선언을 해야 할 때다.

<김혜진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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