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우리가 갖고 있는 미국에 대한 편견과 환상

2013.06.11

이 글을 청탁 받았을 때 뇌리를 스친 생각은 그간 우리는 워낙 미국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들어왔으니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미국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객관적 정황을 열거해 제시함으로써 그동안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들이 알지 못했던 미국의 모습을 그려보려 한다.

먼저, 그간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비쳐졌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부인하기 어려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 안고 있는 빚더미를 생각하면 그 세계 최강대국의 이미지는 속빈 강정의 이미지와 중첩되기에 충분하다. 미국 연방정부가 짊어진 빚은 현재 17조 달러에 달한다. 

지난 2011년 10월 15일 미국의 월가 점거 시위대가 뉴욕 맨해튼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미국의 극소수 상위 1%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고, 빈곤층은 더 늘어나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난 2011년 10월 15일 미국의 월가 점거 시위대가 뉴욕 맨해튼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미국의 극소수 상위 1%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고, 빈곤층은 더 늘어나고 있다. | AP연합뉴스

1초에 1달러씩 쓴다고 가정할 때 무려 3만2000년을 써야 고작 1조 달러밖에 쓸 수 없다. 17조 달러는 그것의 17배이니 엄청난 액수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는 고작 공식적 부채일 뿐이다. 은퇴 후의 서민들의 기초생활과 의료비를 책임져야 할 비공식적 비용을 감안하면 그것이 무려 220조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것의 진위 여부를 논외로 하더라도 2차대전 이후 태어난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가 약 8000만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곧 은퇴자의 반열에 들어서는 시점이라 더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주택시장 붕괴로 가정경제에 타격을 받은 사람들이 대다수인 현 상황에서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 세대가 정부의 재정지원에 더욱 더 의존해야 하는 것이 뻔한 이상 국가의 부채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공식 부채규모만 봐서도 그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지금 부채 산정에서 아예 빠져 있는 이런 사항까지 합쳐 고려한다면 상황은 최악이다.

중산층의 나라? 부익부 빈익빈 심화
둘째로, 미국은 이제껏 중산층의 나라로 알려져 있었다. 해서 개발도상국가들의 눈에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음 이야기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해준다. 그러기는커녕 미국이야말로 소득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양극화의 나라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금융위기 발발 직전까지의 통계치를 미의회예산국(C.B.O.)은 2011년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8년 사이 미국인의 소득은 평균 62% 증가했다. 그러나 그것의 분배는 형평을 잃은 모습을 보여준다. 

상위 1%의 국민 소득은 이 기간 무려 275% 상승했으나 하위 20%에 속하는 국민들의 소득은 불과 18% 오른 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산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소득 전체에서 21~80%에 해당되는 국민들의 같은 기간의 소득 증가는 37%, 81~99%에 속하는 계층의 소득 증가는 65%에 머물렀다. 즉 과거 28년 동안에 빈부격차가 심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빈부격차의 심화, 즉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의 심화 속에서 중산층은 설자리를 잃고 빈곤층으로 급격히 전락하고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상황은 더 비관적이다. 

CNN은 작년 8월, 미국의 중산층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10년을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LA타임스도 작년 6월, 한창 일할 나이인 35~44세 연령대의 재산이 경기침체 이전보다 무려 59% 감소했음을 알리며 중산층의 몰락을 재확인했다. 반면, IMF는 작년 10월 미국의 소득 상위 1%가 미국 전체 소득증가분의 약 93%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극소수 상위 1%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고, 빈곤층은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중산층의 나라이므로 자수성가를 위해 미국을 선망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임에 분명하다.

셋째, 미국을 부정과 비리가 매우 드문 청렴한 나라로 보는 것이다. 특히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우리와 비교를 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부패가 없는, 그래서 투명하기 이를 데 없는 미국을 언급하는 것이 거의 당연시되어왔다. 과연 사실일까? 대표적인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먼저 대사들의 인선이 직업외교관들이 아닌 대통령선거 공신들에게 나누어 돌아가는 엽관주의적 인사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2009년 영국의 <텔레그라프>는 이를 ‘패거리주의’(cronyism)로 칭했는데, 이런 패거리주의에서 대사로 임명되려면 단연코 선거자금을 많이 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사는 전체 대사직 중 무려 3분의 1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린내가 진동하는 행태는 오바마 정권 2기를 맞는 올해도 여전히 이어져 전체 188개의 대사직 중 약 100개가 이런 식으로 바뀔 수 있다며, 실제로 그 선정 대상자 명단을 얼마 전 시사주간지 <타임>이 제시하기도 했다.

인권의 수호국? 테러 용의자에 고문 자행
사실 이는 다음의 사안에 비하면 약과이다. 이른바 회전문 인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의 경우도 이것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미국의 그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회전문 인사는 민간기업의 고위직에 있던 이가 정부의 고위관리로 기용되고, 거기서 물러나면 다시 민간기업체의 고위직으로 옮겨가는, 그야말로 말 그대로 회전문처럼 돌고 돌아가는 인사를 말한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될까? 엄정하고 공정해야 할 정부의 정책이 민간 사기업체의 이익을 위해 농단되고 악용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 주무부처의 수장이 바로 민간기업체의 CEO나 고위직 출신이고, 또 임기를 마치면 바로 그곳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후 국민의 혈세로 대형 금융기관에 무차별 살포된 구제금융이란 명목의 돈다발이 여실히 증명해준다.

마지막으로 미국을 인권의 수호국 또는 종주국 정도로 여기는 믿음이 있다.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인권침해 소지가 있기만 하면 간섭을 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과연 이럴 자격이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관타나모 테러 용의자 수용소가 보여준다. 이 수용소에 재판도 없이 수감된 용의자들은 그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간헐적으로 설로만 떠돌던 이러한 만행은 지난 4월 미국의 초당적 시민단체인 ‘헌법 프로젝트’의 보고서에 의해 낱낱이 밝혀졌다. 이 보고서는 전직 장성, 판사, 대사 등 총 11명의 전문가가 전직 CIA 관리 및 관타나모 수용소 핵심 관련자 수십명을 면접함으로써 작성되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미국 정보기관 요원 및 미군이 관타나모 기지는 물론 외국에 설립한 수용소 등에서 수감자들에게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고문을 자행”함으로써 “미국 국내법과 국제조약을 위반했으며 이는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와 헌법상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비열한 행위였다는 것이다. 

2002년 인권침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며 전 세계 여론이 들끓자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1년 내에 수용소를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그 약속은 지금도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되레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1월 수용소를 폐지하지 않겠다고 서명했다. 미국이 인권의 종주국으로 행세하는 것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각종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편견과 환상에 기초한 한·미동맹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파악에 근거한 한·미동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광기 <경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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