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2 올해의 판결

걸림돌 판결 - 나쁜 정리해고 판례 더 나쁘게 한 콜텍 판결

인권보호 가로막은 노동분야 가장 많아

2007년 콜트·콜텍, 2009년 쌍용차, 2010년 한진중공업….

‘긴급한 경영상의 필요’를 내세운 기업의 정리해고로 숱한 이들과 가족들이 거리에 나섰고, 철탑에 올랐으며, 23명은 세상을 등졌다. 시간이 갈수록 사회는 이들을 잊어갔다. 법과 국가의 손은 너무 멀리 있었다.

지난 9월 18일 인천 콜트 부평공장에서 콜트·콜텍 노조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홍도은 기자

지난 9월 18일 인천 콜트 부평공장에서 콜트·콜텍 노조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홍도은 기자

지난 2월 23일에는 2007년 정리해고된 후 5년 동안 함께 거리에 나서 직장 복귀를 외쳤던 노동자들의 명암이 엇갈렸다. 이날 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기타생산업체인 콜트악기가 20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콜트악기의 자회사인 콜텍의 대전공장에서 근무하다 공장 폐업으로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부당한 정리해고”라고 한 원심을 깨고 다시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전공장 폐쇄가 회사 전체의 경영 악화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좀 더 심리해 판단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패소를 확정지은 판결은 아니지만 판결문에 담긴 대법원의 정리해고에 대한 법 해석은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기업의 전체 경영실적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더라도 일부 사업부문이 경영 악화를 겪고 있는 경우, 그러한 경영 악화가 구조적인 문제 등에 의한 것으로 쉽게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면 장래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어 잉여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합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정리해고라는 ‘지옥의 문’ 연 대법원
콜텍은 2006년 7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등 2000년부터 상당한 이익을 내왔다. 부채비율도 동종업계 평균부채(2006년 168.35%)에 못 미치는 30% 수준이었다. 2심은 이 같은 사정을 들어 해고가 부당하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상황에 따라서는 기업이 전체적으로 흑자여도 일부 사업부문을 폐쇄하고 정리해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봤다.

이는 선정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올해 ‘최악의 판결’에 선정됐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정리해고 판례를 더 나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 선정위원은 “정리해고라는 ‘지옥의 문’을 대법원이 연 것”이라고 했다.

근로기준법에서 기업의 정리해고를 제한하는 요건은 간단하면서도 모호하다. 제한 요건은 근로기준법 24조의 3개 항이 유일하다. 이에 따르면 정리해고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해고일 50일 전에 노조에 통보하고 성실히 협의해야 한다. 프랑스처럼 근로자 대표가 공인회계사를 선임하도록 한다거나, 독일처럼 근로자의 이익 대표기구인 사업장협의회의 동의를 요구하는 규정은 없다. 해고근로자 보호를 위한 계획이나 방안을 세울 것을 강제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지난 10월 서울대 노동법연구회 학술대회에서 조임영 영남대 교수는 “경영해고(정리해고)가 근로자의 삶에 미치는 충격을 생각하면 적어도 프랑스 경영해고법제 두께 정도는 돼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게 아닐까. 경영해고가 빚어낸 우리 사회 비극에는 부실한 법률도 큰 몫을 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 조항이 형식적인 만큼 사법부가 판례를 축적해 상식적인 제한선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지만, 올해 ‘최악의 판결’과 같이 몇 안 되는 요건도 매우 느슨하게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군대·과거사 분야 판례도 ‘걸림돌’에 뽑혀
‘최악의 판결’ 이외에도 올해 우리 사회 정의 실현과 인권보호를 가로막은 ‘걸림돌’ 판결에 노동분야 판결이 다수 선정됐다. 불법파견으로 시정지시를 받은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에 대해 “파견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광주지법 민사5부(조정현 부장판사) 판결과 KTX 여승무원과 한국철도공사 간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승소한 1심을 뒤집은 서울고법 민사1부(정종관 부장판사)의 판결을 하나로 묶어 걸림돌로 꼽았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 태도에도 배치되는 등 시대를 역행하는 판결이라는 평이다.

스트레스 내성이 평균보다 낮았던 사람이라면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라도 산재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 판결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퇴거명령 집행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도 노동분야에서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

지난 11월 콜트·콜텍 해고자들과 이들과 연대한 사진작가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경향신문

지난 11월 콜트·콜텍 해고자들과 이들과 연대한 사진작가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경향신문

군대 관련 판결 2건도 걸림돌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이우재 부장판사)는 지난 5월 실천문학 등 4개 출판사와 저자들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국방부의 손을 들어줬다. 국방부는 2008년 7월 시중에 23종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영내 반입을 금지했다.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씨의 ‘소금꽃나무’, 동화작가 권정생씨의 ‘우리들의 하나님’ 등이 포함됐다. 재판부는 이러한 국방부의 조치가 군의 정신전력 보전을 위한 행위로서 정당하며, 저자 및 출판사에 대한 명예훼손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불온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 이는 “불온이라는 불명확하고 왜곡된 사실이 국군장병뿐 아니라 일반대중에게 전달될 우려가 있는데, 이런 점에 대한 판단을 모두 회피한 시대착오적 판결”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현역대위가 자신의 트위터에 ‘가카새끼’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린 데 대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상관모욕죄를 인정해 처벌한 7군단 보통군사법원 판결도 사실상 유신시대 국가원수모독죄와 같은 수준의 판결이라는 평과 함께 꼽혔다.

과거사 분야에서도 걸림돌 판결이 나왔다. 부여보도연맹 희생자 유족에 대해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해 원고 패소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장진훈 부장판사)의 판결이다. 재판부는 유족이 경찰서에 끌려간 지 3일 만에 백마강 인근에 버려진 시신을 유족이 수습했으므로 피해 발생을 그때 알았으며, 전시 중이었다고 해도 당시 피해구제를 주장할 수 있었다고 봤다. 이는 “전시중 희생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힌 유사 사례의 대법원 판례와도 배치된다는 평을 받았다.

이밖에 공무원의 국가정책 반대행위를 금지한 공무원복무규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과 어린이집을 미설치하고 보육수당도 주지 않은 기업체의 행위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 2명이 모인 경우도 집회로 인정돼 집시법으로 처벌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함께 걸림돌로 선정됐다.

[특집| 2012 올해의 판결]걸림돌 판결 - 나쁜 정리해고 판례 더 나쁘게 한 콜텍 판결

<유정인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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