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도시형생활주택은 ‘탁상주거대책’

조득진 기자
2010.11.30

집값 억제나 전세난 해결 어렵고 수요층 1~2인 가구 한정

최근 부동산 시장의 화두는 단연 ‘도시형 생활주택’이다. 정부가 서민 주거안정과 전세난 완화를 위해 마련한 방안으로, 비교적 좁은 면적에 단기간 공급이 가능해 주목 받고 있다. 게다가 각종 건축규제를 완화하면서 건설업계가 뛰어들자 최근 분양시장에서도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최근 소형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아산이 서울 길동에 분양한 현대웰하임 전경.

최근 소형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아산이 서울 길동에 분양한 현대웰하임 전경.

그러나 도시형 생활주택 같은 초소형주택으로는 집값 억제나 전세난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도시형 생활주택이 열악한 주차장 등 삶의 질에서 떨어지고, 수요층 또한 기존 아파트에서 살던 가구가 아닌 오피스텔이나 고시텔에서 살던 1~2인 가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룸의 다른 이름’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년대비 공급량 470% 급증
올해 들어 도시형 생활주택의 공급은 급격히 늘고 있다. 국토해양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도시형 생활주택의 인·허가 물량은 총 2496가구로 전달(1471가구) 대비 70% 증가했고, 1월(341가구)보다는 631% 폭증했다. 올해 전체적으로 봐도 1∼9월 누계가 9010가구에 달해 전년(1580가구)보다 470% 늘었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정부가 지난해 5월 도입한 것으로 도심지역에 전용면적 85㎡ 이하를 150가구 미만으로 짓는 주택을 말한다. 지난해 5월 도입 이후 1580채에 불과했던 인·허가 물량은 올해 상반기에 3908채로 늘었고, 7∼9월 3개월 동안에는 5102채로 급증했다. 최근 국회 국토해양위에서 내년 3월부터 가구수 제한을 300가구 이내로 완화키로 해 공급량은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단지형 다세대주택, 원룸형 주택, 기숙사형 주택 등으로 구분된다.

최근 도시형 생활주택의 인기는 분양 경쟁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경기 침체로 서울지역 신규 아파트 분양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도시형 생활주택이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10일부터 사흘간 청약을 진행한 현대아산의 도시형 생활주택 ‘현대 웰하임’은 총 267가구 공급에 1619명이 청약해 6.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0월 말 분양에 나선 한미파슨스의 도시형 생활주택·오피스텔 ‘마에스트로’는 292실 분양에 1530명이 몰려 평균 5.2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 중 84실을 공급한 도시형생활주택은 약 1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지난 9월 서울지역의 신규 분양 아파트 평균 청약 경쟁률이 0.6대 1(부동산114 자료)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놀랄 만한 결과다.

이는 도시형 생활주택이 소액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1억∼2억원의 여윳돈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중산층 투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라는 것. 부동산업계에서는 “비슷한 투자처인 고시원이 보증금 없이 임대료만 받아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도시형 생활주택은 보증금을 받아 초기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수목건축이 서울 제기동에 지은 ‘마이바움 제기’의 실내 모습.

수목건축이 서울 제기동에 지은 ‘마이바움 제기’의 실내 모습.

실제로 부동산 투자자들은 원룸 및 도시형 생활주택 등 수익형 부동산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예비 투자자 12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동산 상품 중 원룸·도시형 생활주택에 투자하겠다는 응답자가 28.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아파트 급매물 24.8%, 토지 14.4%, 오피스텔 10.0%, 상가 8.3%, 신규 분양 아파트 6.4%, 미분양 아파트 4.9%의 순이었다. 응답자의 46.4%가 원룸·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을 꼽은 것으로, 부동산114 관계자는 “과거에는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부동산 투자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현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임대사업이 뜨고 있다”며 “이는 ‘제2의 월급’이라고 불릴 만큼 매월 고정수익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각종 규제 완화로 건설업계 ‘입맛’
투자자들의 발길이 몰리자 건설사들도 하나둘 도시형 생활주택에 뛰어들고 있는 추세다. 소형주택 시장은 수익률은 약한 데 비해 민원이 많아 꺼리던 분야였지만 부동산 침체로 대형아파트 분양 성공률이 낮아지자 사업 전환을 한 것이다.

건설대기업에서는 GS건설이 최근 도시형 생활주택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기존 중견 건설사 주택상품과 차별화된 5개 신평면을 개발해 저작권 등록을 마쳤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건설회사인 현대엠코도 중소형 위주 주택 평면을 최근 개발해 저작권을 등록했고, 대림산업도 도시형 생활주택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이다. 특히 대형 건설사들은 기존 중견 건설사의 소형주택 상품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아예 소형아파트 브랜드를 새로 론칭하는 곳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이미 1∼2인 가구를 겨냥한 소형아파트 브랜드인 ‘롯데 캐슬미니’를 공개했고, 우미건설은 최근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에 적용할 소형주택 전문 브랜드 ‘쁘띠-린’을 선보였다.

민간건설사뿐만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SH공사 등도 소형주택 공급에 나설 예정이다. LH는 최근 ‘스튜디오 주택’ 평면을 개발해 내년부터 도심 역세권과 상업·업무지역, 대학가 등 인구 밀집지역의 다가구주택을 매입해 전용면적 50㎡ 이하의 ‘스튜디오 주택’을 지을 계획이다. 또 SH공사는 강서구 방화동과 서초구 우면2지구에 단지형 도시형 생활주택 시범단지를 선정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건설사들의 전망이다.

이처럼 도시형 생활주택 건설 붐이 일어난 것은 정부와 건설업계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치솟는 전셋값을 잡을 카드로 도시형 생활주택을 선택했고, 건설업계 또한 완화된 규제를 발판 삼아 활로를 찾아 나선 것이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 받지 않으며, 가구당 전용면적 상향이라는 규제 완화 때문에 사업성이 크게 높아졌다. 보유해야 하는 주차시설도 가구당 1대 꼴이 되지 않아 원룸형은 0.2~0.5대, 기숙사형은 0.1~0.3대만 지으면 된다. 과거의 원룸형 다세대주택은 가구 수에 비례해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했지만 이런 규정을 가구 수에서 총면적 기준으로 바꾸면서 주차장을 과거보다 훨씬 적게 만들어도 되게 한 것이다.

[특집]도시형생활주택은 ‘탁상주거대책’

게다가 일정 정도 규모 이상의 아파트의 경우 어린이놀이시설 등 편의시설이 설치되어야 하지만 도시형 생활주택은 이 규정에서도 자유롭다. 고시텔·원룸·오피스텔에 비해 건설 기준이 까다롭지 않아 건설업계가 선호한다는 분석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도시형 생활주택은 기존 원룸과 제도적 차이에 불과할 뿐 새로운 다른 상품이 아니다”라며 “과거에 다가구·다세대주택 공급으로 수요를 맞추었던 정부가 이번엔 규제 완화를 통해 소형주택의 공급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시형 생활주택 같은 초소형주택 정책으로는 전세난을 잡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부 교수는 “집은 좁은 데 살아도 승용차 한 대씩은 소유하고 있는 게 요즘”이라며 “승용차 소유욕이 높은 젊은층에게 주차장 시설 미비는 치명적이며, 이 같은 편의시설 부족은 도시형 생활주택이 장수하기 힘든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주거환경 악화·공급과잉 등 주시해야
또 다른 문제는 한달에 60만원 정도의 월세를 내면서 살 수 있는 서민층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김선덕 소장은 “도시형 생활주택은 자가 수준이 아닌 임시 거주처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의 수요처가 아닌, 1인 가구가 잠시 머무르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말이다. 김 소장은 “1억원이 넘는 보증금을 내고 60만원 월세를 내면서 1~2인용 주택에 거주하고자 하는 수요는 많지 않다”며 “그동안 오피스텔이나 고시텔에서 거주하던 자영업자나 일부 샐러리맨, 서비스업 종사자 등이 옮겨오는 식으로 도시형 생활주택의 수요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또 “원룸의 다른 이름인 도시형 생활주택보다는 평수가 좀 더 큰 오피스텔을 과감히 주택으로 끌어들여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제3의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정부는 역세권을 개발하면 용적률을 높여주겠다고 하는데, 그 안에 상업시설보다는 도시형주택 공간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도시형 생활주택의 과잉 공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도시형 생활주택의 형태나 특징이 오피스텔과 유사해 수요층이 겹칠 수 있고, 최근 늘어나는 오피스텔 공급을 생각하면 2~3년 후에는 공급과잉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준환 교수는 “비교적 짧은 공사기간과 선호도 상승에 부응해 건설사의 소형주택 진출 러시가 이뤄지고 있지만 2012년 하반기 이후 도시형 생활주택 시장은 한계에 이를 것”이라며 “공급이 늘고 수요가 한계에 이르게 되면 집주인은 공실을 피하기 위해 월세를 낮추는 수밖에 없어 투자자 입장에서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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