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불행한 사건”

글·박태균 서울대 교수, 사진·김석구 기자
2010.05.11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

1980년 5월 <경향신문>을 통해 본 광주

5월이다. <Weekly 경향>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이제 광주로 간다. 30년 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뜨거운 상처다. ‘광주’라는 이름 앞에 사람들은 울거나 분노했다. 그 분노와 슬픔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견인해 한국사회 민주화의 기름진 밑거름이 됐다. 김호기·박태균 교수는 앞으로 4회 동안 ‘5·18’의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돌아보는 글을 기고한다. 이번 호에서는 박태균 교수가 당시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5·18의 시작과 끝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2010년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5월 한 달 동안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다. 사진은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의 격전이 벌어진 옛 전남도청 앞 광장.

2010년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5월 한 달 동안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다. 사진은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의 격전이 벌어진 옛 전남도청 앞 광장.

그날로부터 30년이 지났다. 벌써 30년이다. 지금의 20대들에게 30년 전 ‘그 사건’은 3·1운동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사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386세대에게 1980년 광주는 언제나 살아 있는 삶 그 자체였다. 광주를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면서 안타까워했던 사람들, 진실을 알 수는 없었지만 무엇인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점을 깨닫고 있었던 사람들, 1987년 6월항쟁을 겪으며 그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 모두에게 1980년 광주는 하나의 좌표였다.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386세대에게 삶의 양태와 미래의 목표를 지배했다. 광주는 그 자체로 신화이자 성지였다.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에는 보통 사람과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1980년 5월 현실의 광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프로야구가 없었던 그 시절 고교야구는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였다. 특히 자신의 출신 지역과 출신 학교의 게임을 응원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야구장을 찾았다. 고교야구는 국민스포츠였다. 그 이름이야 어떻든 고교야구 가운데에서도 대통령기·청룡기·봉황기는 3대 야구대회였고, 그 첫 관문인 대통령기가 열렸다. 8일의 경기 기간에 1만명도 들어가지 못하는, 지금은 헐린 동대문운동 야구장에 23만8428명의 유료 관객이 들어 입장료 수입만 1억7130만원을 기록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민주화 요구 학생들 시위 연일 이어져
“30일 전국고교야구 준결승 광주상고와 중앙고전은 과열 응원단의 소주병 공방전으로 팔이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등 10여 명의 관객이 부상을 입고 경기가 30분이나 중단됐다. 사건의 발단은 술에 취한 한 관객의 해괴한 응원 때문. 8회초 중앙고 공격 때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모범운전사 차량의 관객이 왼쪽 폴 꼭대기에 올라가 응원했다. 이를 본 광주상고 투수 김태업이 아슬아슬해서 볼을 못 던지겠다고 주심 배동원씨에게 장내 정리를 요청하여 게임이 중단됐다.”(경향신문 5월 1일자)

이날 경기에서는 광주상고가 이겼다. 광주일고도 충암고를 이기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 광주 지역 두 고등학교가 맞붙게 된 것이다. 무등산이 들썩였다. 결국 광주일고가 5년만에 전국 고교야구 정상에 올라섰다. 광주일고 에이스인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은 대회 MVP로 뽑혔다.

5월 6일에는 무등산 중턱에 있는 원효사 대웅전 복원공사장에서 철제불상과 청동불상, 청기와 등 300여 점의 문화재가 쏟아져 나오는 경사가 있었다. 마치 광주가 보물단지가 된 느낌이었다.(5월 7일자) 그러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경기 침체 여파로 5월 초 실업자가 90만명이나 증가하고 물가가 폭등했다. 광주에서는 3.75kg 한 관에 1만원 하던 마늘 가격이 3만5000원으로 무려 250%나 폭등했다.(5월 12일자)

서울에서와 같이 광주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지만 여전히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아야 했고, 개헌을 통한 민주화와 정치 일정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 있었다. 3김씨(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가 정치 일정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거듭 밝히고 있었지만 언제쯤 진정한 봄이 올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전남대를 중심으로 광주 시내에 있는 모든 대학의 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5월 3일 반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장례식이 있었다. 16일 밤에는 금남로에서 횃불시위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학생들이 시위를 자제하기로 결정하고 학교로 돌아간 날이었다. 조선대에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재단 문제로 인해 학생들이 4월 27일부터 계속해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조선대 학생들은 학교 측에서 동원한 체육과 학생 50여 명이 농성을 벌이던 학생들을 습격한 뒤로는 5월 5일부터 총장실을 점거했다.(5월 5일자)

경찰 대신 등장한 군대의 무자비한 구타
이 무렵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감돌기 시작한 것 같다. 당시만 하더라도 양심적인 언론과는 거리가 멀었던 경향신문은 5월 10일자에서 광주공원 시인동산 안에 시비가 세워져 있는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를 특집으로 실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앞 광장에 모인 광주시민들. | 5.18 자유공원 기념관 자료사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앞 광장에 모인 광주시민들. | 5.18 자유공원 기념관 자료사진

시인 김영랑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봄’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이 시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화려하게 피었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모란을 통해 올 듯 올 듯 오지 않는 봄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리고 5월 18일. 피의 광주가, 신화가 시작됐다. 그 신화는 시민들로부터가 아닌 계엄사로부터, 정부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5월 14일과 15일 시위하는 학생들을 에스코트하듯이 지켜보고 있었던 경찰이 사라지고 군대가 진주했다. 이들은 무자비하게 학생들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분명 5월 17일자 신문은 학생들이 ‘평화’적으로 시위에 임했고, 밤 10시쯤 자진 해산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계엄사령부의 시각은 달랐다. 계엄사에 따르면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로 인해 민간인은 1명이 사망했지만 군인과 경찰은 5명이나 사망했다. 한편으로는 유언비어가 횡행했다.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에 와서 여자고 남자고 닥치는 대로 밟아 죽이고 있기 때문에 사상자가 많이 난다.” “18일에는 40명이 죽었고 금남로는 피바다가 되었는데 군인들이 여학생들의 브래지어까지 찢어버린다.” “공수부대가 몽둥이로 머리를 무차별 구타, 눈알이 빠지고 머리가 깨졌다.” “데모 군중이 휴가병을 때리자 공수부대 요원이 군중을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5월 20일자)
또 다른 신화는 ‘불순분자’와 ‘고정간첩’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4·19혁명 당시 시위대를 간첩으로 몰아간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또 한 번 ‘간첩의 추억’이 시작됐다. 5월 21일 계엄사령관은 특별담화를 통해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인물 및 고정간첩들’로 인해 광주가 극한적인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지역감정을 선동하고 난동행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엄군은 이에 따라 “부득이 자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지역을 고립시켜야만 한다. 투명함과 소통은 신화의 적이다. 간첩 용의자 5명이 광주 시민과 학생에 의해 계엄 당국에 인계됐다는 보도가 나왔다.(5월 24일자) 그들이 누구인지,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같은 날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가 처형됐고, 미국 국방부가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국군의 이동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와중에 계엄사는 “불순분자들은 깡패·양아치·건달 등 불량배들이었고, 이들은 약국·금은방에 침입해 약탈은 물론 강도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발표했다.(5월 25일자) 급기야 5월 26일에는 북한의 고정 간첩이 침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간첩 이창용이 20일 오전 2시 안내원 2명의 인도 아래 남해안으로 침투해 21일 야간 순천에 도착, 광주 잠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23일 새벽 서울역에서 경찰에 검거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

박태균 교수(왼쪽)와 김호기 교수가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금남로 방향을 둘러보고 있다.

박태균 교수(왼쪽)와 김호기 교수가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금남로 방향을 둘러보고 있다.

독침 사건도 일어났다. “25일 밤 10시 30분쯤 도청 구내식당 근처에서 학생시민수습반의 일원인 장계범씨가 25세 가량의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으로부터 독침으로 습격 당해 오른쪽 어깨에 상처를 입고 전남대 부속병원에 입원했다”는 보도였다.(5월 26일자) 이쯤 되면 신화를 넘어 소설이다.

고립된 광주에서 ‘신화’와 ’소설’이 만들어지는 동안 시민들은 생필품 부족에 시달렸다. “거북선·선 등 고급담배가 거의 자취를 감춰 애연가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으며, 라면·청량음료·빵·인스턴트식품들도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값도 3~4배나 비싼 형편”이었다.(5월 26일자)

최규하 대통령은 5월 26일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담화가 발표된 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을 대동하고 광주에 내려가 계엄군만 만나고 돌아왔다.

신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업이 곧장 시작됐다. 27일 새벽 계엄군이 광주 시내에 진입한 것이다. 계엄사의 5월 31일자 발표문은 이 모든 일에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계엄군은 광주교도소를 습격해 간첩과 좌익수 170여 명을 풀어주려고 했던 폭도들은 사라지고 자위권 발동마저 자제한 군이 광주를 일상으로 돌려 놓기 위해 재건작업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군은 또 민간인 144명이 죽었으며, 이 가운데 28명은 교도소 습격 과정에서 죽었고 32명은 음주 및 과속으로 인한 버스 전복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밝혔다.

고립된 광주서 만들어진 ‘신화와 소설’
그래, 이제 신화에 마침표를 찍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동포애’를 발휘해 광주시민돕기 운동이 시작됐다. 체신부는 통신요금 납기를 연장해 주고, 관세청은 수출 검사를 완화하고, 육군은 절미운동을 벌여 쌀 6000가마를 광주에 보냈다. 농수산부는 생필품 공급지도반을 조직했다. 사망자 유가족에게는 “사망자 1명당 위로금 500만원, 장례비 100만원 등 모두 600만원을 지급하고 부상자에게는 중상자 40만원, 경상자 10만원씩 지급키로” 했다.

소박하지만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도 시작됐다. 경향신문은 ‘취재 기자들의 방담으로 엮어본 광주 그 10일’(5월 29일자)이란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기자들은 말했다.

“지난 22일 광주 도청 앞 광장에서 이번 사태의 상흔을 보고 있을 때 기자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 모두들 슬픔 속에서 취재할 기력도 없어지더군.”
“지난 18일 첫 시위 당시만 해도 시민들은 비교적 냉담했던 것 같아. 그러다가 19일 하오부터 시민들 분위기가 이상해졌지. 분위기는 과열됐고, 경찰의 데모 진압에도 문제가 있었고. 게다가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소문이 퍼진 것도 급격한 과열 분위기를 만들었고.”
“큰 관공서 건물로 세무서만이 방화한 것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점이야.”
“일단 수습은 됐으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으로 보긴 어려워.”
“물질적인 지원보다 민심을 무마하는 시책이 더 중요할 것 같아. 이번 사태로 지역감정이 고조된다면 광주시민이나 전남도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상처를 받게 될 거야.”
“취재하는 동안 단 한 순간도 착잡한 심경에서 헤어나지 못했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불행한 사건이야.”

1980년 5월 30일 예년보다 장마가 빨리 올 것이라는 보도 속에 광주의 낮 최고기온은 30.8도까지 올랐다. 그리고 신화는 계속됐다. 신화를 벗기기 위한 작업은 계속됐지만 또 다른 피를 흘려야 했다. 민주화를 통해 신화가 한 꺼풀씩 벗겨지기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쓰러져 간 사람들은 지금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많은 이의 노력에 의해 진실이 밝혀졌지만 1980년의 광주는 아직도 신화에 갇혀 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일부가 아니라 아직도 타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글·박태균 서울대 교수,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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