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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차 프로 백수, 짠돌이의 도(道)를 말하다

2009.03.17

인터뷰 | 주덕한 전국백수연대 대표

주덕한 전국백수연대 대표. <김석구 기자>

주덕한 전국백수연대 대표. <김석구 기자>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야의 최고수다. IMF 경제 한파가 휩쓸고 지나갈 당시, TV에 출연한 그는 ‘백수’로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직접 몸으로 보여줬다. 주 대표가 낸 책 <캔맥주를 마시며 생각해낸 인생을 즐기는 방법 170가지>는 자린고비 생활의 바이블이다. 이왕 백수생활을 한다면, 한껏 즐겨라. 그의 모토였다. 인터넷에는 무료 시사회·전시회 정보가 널려 있다. 비싼 피트니스 이용권은 필요 없다. 지하철이 한적한 시간에, 무빙벨트를 거꾸로 걸으면 그게 웰빙이 아닌가. 인터넷에는 그가 개척한 정보를 실천하는 카페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그리고 2009년. 백수생활 13년차다. 그는 명실상부한 프로 백수다.

홀서빙에서 인구조사 아르바이트, 남자 파출부업까지 안 해본 일이 없지만 중간 중간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은 적도 있다. 그가 주도한 ‘백수연대’는 서울시에 정식NGO로 등록되었다. 주 대표를 처음 만난 장소는 강남 삼성동 코엑스. 왠지 백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노동부에서 위탁한 ‘청년층 뉴스타트’ 프로그램의 홍보를 맡았는데, 행사를 기획한 컨설팅업체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프로젝트명은 ‘0시클럽’. 청년실업자들이 정오에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다시 자정에 온라인에서 모임을 갖는 프로그램이다. 주 대표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카드를 찍는, 일종의 취업 예행연습인 셈”이라고 설명한다.

프로백수의 생활 노하우
그의 근검절약정신은 생활에 밴 듯했다. 다음 날. 인터뷰를 보강하기 위해 경향신문사에서 다시 주 대표를 만났다. 그는 “서울 시청 쪽에 싸고 푸짐한 곳이 있는데 안내하겠다”고 했다(기자는 그에게 점심을 사겠다고 전날 약속했다). 전날과 옷차림은 똑같았다. 설마, 집에 안 들어간 건 아니겠지. 그는 “너무 자주 빠는 것도 자원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티나게 더러워지면 빨아 입죠”라고 말했다. 그는 세탁기는 쓰지 않고 손빨래를 한다. 더러워진 목 칼라와 손목 부분을 중점적으로 빠는 것이 ‘노하우’.

또 하나의 ‘노하우’는 옷을 살 때 같은 옷을 사는 것이다. “두 번째 사면 깎을 수 있다”는 것. 현재 입고 있는 와이셔츠는 동대문에서 1만7000원에 구입했다. 두 벌째는 2000원 깎았다. 와이셔츠 구입비는 단일 품목으로 올 겨울에 가장 큰 지출이다. 한 달에 도대체 얼마를 쓰는 걸까.

“지난달 휴대전화 요금과 교통비가 각각 3만5000원 정도였습니다. 기타 한 달에 평균 10만 원 정도 쓴 것 같아요.” 그렇다면 식사는 어떻게 했을까. 이에 대해 그는 “주로 집에서 먹기 때문에 거의 안 듭니다”라고 말했다.

3월 6일 오후, 노동부 주관의 청년실업 극복 프로그램 ‘청년층 뉴스타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실업자들이 관련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있다. <라이트매니지먼트코리아 제공>

3월 6일 오후, 노동부 주관의 청년실업 극복 프로그램 ‘청년층 뉴스타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실업자들이 관련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있다. <라이트매니지먼트코리아 제공>

주 대표의 올해 나이는 40. 경조사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곤혹스럽죠. 누나와 같이 사는데, 집안일의 경우 같이 가거나 최소한도로 하는 식으로 줄이고 있어요.” 식사 문제와 관련해서 그는 할 말이 더 있다. “아무리 백수로 공인되었다고 하더라도 얻어먹는 것은 한두 번이에요. 그게 지속되면 관계가 끊겨요. 제일 중요한 것이 관계인데.” 서로 부담이 안 되도록 저렴한 식당을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노하우’와 관련해 너무 ‘테크닉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를테면 전시회 같은 행사에 가서 먹는 것에만 집중하면 그건 본말전도라는 것이다. 전시회든 영화든 감상하고 나면 평을 올리는 등 최선을 다해왔다고 주 대표는 말한다. 백화점 같은 곳에서 하는 시식도 마찬가지다.

“사실 한 달에 400만 원 월급 받는 사람이 백수처럼 사는 것은 개인은 몰라도 사회로서는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쓸 사람은 써야 합니다. 회사원이 안 쓰면 주변 가게들은 다 망하겠죠. ‘자기 자신을 위한 짠돌이’가 아니라 ‘사회를 위한 짠돌이’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백수들조차 쓸 때는 써야 합니다.”

‘프로 백수’로 주 대표가 알려지면서, 사실 백수생활 초기와 같은 여유는 조금 사라졌다. 주중에는 백수연대와 관련한 각종 사업을 하고 주말에 여가활동을 한다. 그의 여가생활 무대는 홍대 앞 클럽이다. “나이트는 비싸서 못 가고, 클럽은 꽁짜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5000원짜리 맥주 한 병 시키고 아침에 첫차를 타고 돌아가는… 그것도 일종의 문화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주 대표는 오프라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사회를 위한 짠돌이가 되라
최근의 경제위기는 백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한편으로 주위에 백수가 많아지니까 위안을 받는 것도 있는데, 반면 그 사람들이 또 같은 취업경쟁 상대가 되기 때문에 걱정도 늘어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백수회관’의 분위기는 다소 우울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래도 우리 카페가 이 계통에서는 제일 밝은 분위기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취업 스트레스나 우울증과 관련한 고민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나마 어떻게라도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앞날이 불투명한 현재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회원이 많다는 것이다.

주 대표는 청년실업에 관한한 ‘88만 원 세대’ 담론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계약직뿐 아니라 직장인도 언제든지 백수가 될 수 있는 시대이거든요. 실업이 29세 이하 20대 세대들만의 문제가 아닌데, 이게 더 사람들을 큰 수렁으로 몰아넣는 것 같아요.” 그는 일본 사례를 자주 거론했다. 프리터·NEET 문제에 관한 한 우리보다 일찍 경험한 일본에 배울 것이 있다는 주장이다. 능력보다 나이와 외모, 학벌을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 사회의 백수들에게 그가 해주고 싶은 말은? 궁색함과 같은 스테레오타입을 떨쳐버리고 유쾌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그는 주문한다. 기왕이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것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 “일단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동네마다 전봇대에 ‘잃어버린 강아지 찾는다’는 전단이 붙어 있는 거 봤죠? 그렇다면 ‘강아지 탐정’을 해보면 어떨까요. 강아지를 잃어버린 사람이 회사원이라면 실제 탐문하고 찾아다닐 시간이 없지요. 그걸 대신해주는 것입니다. 다른 경쟁자가 없으니 일종의 블루오션인 셈이고 또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겠죠.”

일단 착수하라. 하다 보면 노하우와 전문성은 따라붙는다. 그가 프로 백수로 삶을 개척해온 방식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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