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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린고비로 살아가기’ 해외 사례

2009.03.17

친환경·대안적 삶이 해답이다

한 프리건 운동 참가자가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상가 쓰레기더미에서 버려진 과일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freegan. info

한 프리건 운동 참가자가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상가 쓰레기더미에서 버려진 과일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freegan. info

멜라니 번티차이씨는 파이 재료를 사기 위해 식료품 가게로 가지 않는다. 대신 인근 산에 올라 산딸기를 따와 유기농 밀가루로 반죽해 파이를 해먹는다. 패트릭 바버씨 역시 달걀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에 가지 않는다. ‘도시농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기르는 닭이 낳은 신선한 유정란을 매일 직접 거둔다. 최근 유튜브 등에서 인기리에 소개하고 있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한 비디오다. 이들 비디오는 텃밭을 이용해 친환경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부터 조리하는 방법까지 자세히 다루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충격과 불안은 세계 어디서나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의 푸드뱅크 단체인 피딩아메리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푸드뱅크(개인이나 기업이 음식을 기탁하면 소외계층에 배분하는 사회 서비스)를 찾는 이는 30% 이상 증가했다.

경제위기가 가장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곳은 어디일까. 일단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곳은 아미시 공동체다. 현대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18세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고집하는 폐쇄적 신앙 공동체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영화 <빌리지>의 모티브를 여기서 따왔다. 그러나 오하이오 주 웨스트버지니아에서 발행하는 지방지 <인텔리젠서>의 2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아미시 공동체 역시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마을 주민들은 차 대신 마차나 자전거를 사용하고 전기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해 기름값 파동 때문에 램프나 난로에 쓰는 기름을 구하는 데 많은 애를 먹었다고 마을 주민들은 전한다. 제재소와 같은 아미시 공동체의 사업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난관에 봉착했다.

아미시 공동체도 경제위기 직격탄
문학작품에서 샤일록이나 스크루지와 같은 ‘구두쇠(miser)’는 조롱과 규탄의 대상이다. 하지만 서구 가치관의 근간인 프로테스탄티즘에서 근검절약이나 청빈한 삶은 존경의 대상이다. 언론보도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충고하는 ‘자린고비로 살아가기’ 항목을 살펴보면 한국 ‘고수’들의 처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용하지 않은 전기 코드는 뽑아놓는다든가 ▲반드시 계산기를 들고 쇼핑하고 ▲목적지와 계획을 세우지 않고 차의 시동을 걸지 않는다 등등.

하지만 한국의 정보들이 실용적인 것에 머문다면 외국은 다양한 철학·사상적 배경을 근간에 깔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앞서 사례를 든 아미시 공동체 역시 국가교회와 전쟁을 반대하고 병역을 거부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아미시 교도 남자들은 턱수염을 기르는 대신 콧수염을 깎는데, 그 이유는 아미시 교도가 탄압받던 당시 군인들이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천에서 청빈을 넘어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대표적인 문서가 <아나키스트 쿡 북>이다. 원래는 윌리엄 포웰이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반대하며 저술한 172쪽짜리 소책자지만, 온라인으로 넘어와서 다양한 판본의 <아나키스트 쿡 북>이 존재한다(포웰의 책은 지금도 아마존 등에서 합법적으로 팔리고 있다). 내용의 상당 부분은 폭탄 제조 방법을 다루고 있지만, 최근 판본에는 복제 휴대전화를 만드는 방법, 가짜 신용카드를 만드는 방법부터 뉴욕 시에서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지하철을 사용하거나 잠자리를 구하는 방법 등의 내용도 다루고 있다. 사실 <아나키스트 쿡 북>이 제시하는 방법을 실제로 실천에 옮긴다면 대부분 불법이다.

2004년에는 한 무리의 아나키스트가 “포웰의 책은 실제 아나키즘의 사상을 담은 것도 아니며 아나키스트가 낸 것도 아니다”며 <재난에 대비한 레시피: 아나키스트 쿡 북>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원래의 책이 폭발물 제조법에 치우쳤다면 이 책은 전통적인 집회 시위 말고도 다양한 집단행동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낙서하기’ ‘스쿼팅(빈집 점거)’ ‘히치하이킹’ ‘쓰레기차 뒤지기’ ‘대형 할인마트에서 물건 훔치기’ 등이 모두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에 저항하는 방법’이다.

대안적 삶 실천 다양한 사상적 뿌리

한 생태운동가가 기금을 모으기 위해 마련한 파티 안내 포스터. 대안적 삶의 다양한 실천 형태를 담고 있다. | mockmeat.worldpress.com

한 생태운동가가 기금을 모으기 위해 마련한 파티 안내 포스터. 대안적 삶의 다양한 실천 형태를 담고 있다. | mockmeat.worldpress.com

그중 하나가 1990년대 말부터 나타난 ‘프리건’이다. 프리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프리건을 “반소비주의 라이프스타일이며, 인습적인 경제에 제한적으로 참여하고, 자원의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에 기초한 대안적인 삶의 전략”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진 음식물이나 슈퍼마켓 쓰레기통에서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찾아먹는다. 얼핏 보면 노숙자나 거지들의 행동강령(?)처럼 보이지만 프리건주의의 주창자들은 “전 세계적인 가난과 궁핍이 존재하는 가운데, 잉여 농산물이 버려지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인 정신은 공유다. ‘돈이 오 가지 않은 시장’에서 이들은 자신이 발견한 먹을거리를 물물교환하기도 한다.

사실 ‘대안적 삶의 가치관으로 근검절약’의 사상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미국 작가 소로의 <월든>이나 스콧 니어링 부부, 생태사회주의자들의 삶과 결합된 실천으로 이어진다.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만 ‘에코 빌리지’와 같은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에코 빌리지는 ▲로컬푸드 ▲지역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지역구매 ▲객체적 소비를 반대하는 도덕적 소비 ▲재생에너지 ▲생태적 다양성의 보존 등을 특징으로 한다.

미국 이타카에 있는 에코 빌리지가 유명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310여 개의 에코 빌리지가 현존한다. 한적한 시골의 폐쇄적 삶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 LA의 코리아타운 인근에도 에코 빌리지가 있다. 버려진 땅에 토종작물 기르기, 자전거를 이용한 인간 동력 세탁기 등 대안적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각 에코 빌리지의 실험 결과나 정보, 이벤트 등은 웹사이트나 블로그에서 공유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잡지 발행인이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 칼슨은 지난해 발표한 저서 <나우토피아> (now와 utopia의 합성어)에서 “사람들은 점점 협동실천 경험이나 사회적 네트워킹을 통해 자본주의에 맞서는 새로운 전략의 토대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여기에서’ 대안적인 삶의 실천이 경제위기를 초래한 체제를 바꿀 수도 있다는 희망인 것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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