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자 진술에만 의존한 중간 조사발표 의혹만 더욱 키웠다
1979년 10월 7일, 가을이 깊어가는 파리.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리도 극장 근처에서 이상열 공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그는 자신의 중앙정보부 부하였던 이 공사에게 돈을 꿔달라고 전화로 부탁했다.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잔데다 술까지 마신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이 공사의 관용차 푸조604가 도착했다. 이 공사는 “돈 빌려줄 사람을 데려왔다”며 뒷자리의 유럽인 2명과 한국인 부하라는 신현진(가명)을 소개했고 김형욱을 옆 조수석에 태웠다.
차가 어둑어둑해진 파리 시내를 뚫고 외곽순환도를 건너가던 틈을 노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유럽인이 김형욱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쳤고 그는 이내 고꾸라졌다. 승용차는 유유히 파리 시내를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작은 숲속에 도착했다. 뒷좌석에 탔던 유럽인 2명은 실신한 김형욱을 끌고 50m 가량 떨어진 숲속으로 사라졌다. 7번의 총소리가 들렸다. 유럽인들은 그의 바바리코트, 시계, 여권, 지갑 등을 챙긴 뒤 숲속에 가득한 낙엽으로 김형욱의 주검을 적당히 감췄다. 다시 파리 시내로 돌아온 그들은 기다리고 있던 중정의 연수생 이만수(가명)로부터 10만 달러가 든 가방을 전달받았다. 신현진은 이 공사에게 사건을 보고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계는 세느강에 던졌고, 바바리코트와 벨트는 가위로 잘게 잘라 자신이 살던 하숙집 근처 쓰레기통에 버렸다.
10월 13일. 서울로 귀국한 신현진이 ‘그림(살해경과)에 대해서는 신군한테 들으십시오’라는 이 공사의 보고문을 보여주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수고했어. 잘했어. 근무하고 싶은 데가 어딘가. 정책연구실에서 근무하는 게 어떤가. 내 직속기관이야.”
“김재규 지시로 파리서 살해했다”
김재규 부장은 비서실장을 불러 신현진을 정책연구실로 발령냈다. 또 그에게 이만수에게도 주라며 현금 300만 원과 20만 원씩이 든 봉투 두 개씩을 두 손에 쥐어주었다. “나라를 팔아먹고 은혜를 모르는 그런 자식은 제거해야 해”라던 김 부장은 보름 후쯤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다.
이렇게 그 어떤 시나리오 작가도 구성하기 어려울 만큼 드라마틱한 내용이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실종사건의 진실이라고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는 5월 26일 중간 조사결과를 통해 발표했다.
1979년 10월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로 프랑스에 있던 중정 거점요원들과 이들이 고용한 제3국인에게 피랍, 살해됐으며 파리 근교에 유기됐다는 것.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신현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사체유기 장소를 진술하지 않아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진실위는 설명했다. 또 이상열 공사에 대해 3차례 면담조사를 했으나 정보요원답게 사건 개입사실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진실위는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김형욱의 반국가행위 처리 문제에 깊이 관여한 사실은 밝혀졌지만 살해를 직접 지시한 부분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이번 조사에서 국정원 존안자료 1만900여 쪽과 공판기록 및 군 수사기록, 대통령 의전일지 등 9500여 쪽 등에 대한 자료 검토와 사건 당시 중정 주프랑스 거점 요원 및 연수생 8명, 최모씨 등 관련 여성연예인 3명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포함해 관련 인물 33명을 면담했다. 진실위 측은 이날 “세간에 무수한 억측이 쏟아져 국민에 혼란을 주고 국정원 진실규명 노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줘 이를 정리할 필요성 제기돼 중간발표를 하게 됐을 뿐 사건조사가 결코 종결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일에는 미 국무부 비밀문서가 공개되었는데 김형욱의 실종시기가 10월 9일이며 한인 남성 한 명과 파리를 떠나 스위스 취리히를 경유해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으로 간 것이 확실하며 거기서 행적이 묘연해졌다는 내용이다. 지난달에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에 자신이 김형욱의 암살조장을 했으며 파리 근교 양계장 분쇄기 살해설을 고백한 전 공작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관련자 유족 등 곳곳서 반론 제기
그러나 진실위는 ▲김재규 부장이 즉시 귀국한 연수생 신현진을 당시 직원들이 보는 자리에서 칭찬하며 부속실에 발령낸 것 등의 정황이 김 부장의 단독지시가 확실하며 ▲이 공사는 ‘공무상 안 정보에 대해서는 무덤까지 갖고 간다’는 공작원의 기본원칙에 충실해 입을 열지 않는 것이며 ▲미 국무부의 문서는 동아태과에서 차관보에게 올린 주례보고이긴 하나 다른 정황 자료가 없고 ▲암살조장이란 이모씨의 양계장 살해설 주장은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신현진씨의 진술이 너무 자세하고 확실해 조사과정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오충일 진실위 위원장은 “신현진의 진술에 의존한 점은 시인한다”면서도 “이번 발표는 중간과정이며 앞으로 국정원 자료를 중심으로 외교 국방 검찰 등 외부기관 자료를 통해 진실 고백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느 영화보다 더 극적인 김형욱 실종 미스터리. ‘진실위’의 진실 주장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개입은 물론 왜 신현진은 카페 이름까지 기억하면서 사체가 묻힌 곳은 기억하지 못하는지, 선진국 프랑스에서 왜 25년간 사체가 안 드러났는지 등 초등학생들도 이해 못할 의혹만 더욱 커졌다.
한편 이번 사건에 결정적이고 충실한 증언을 했다는 신현진씨는 사건 후 곧바로 중정을 떠났으며 협조자 이씨는 고위공직까지 올랐고 침묵으로 일관한 이상열 공사는 이란 대사 등을 지내고 은퇴했다. 그리고 김형욱, 김재규, 박정희 등 주인공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다. 진실은 정말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다고 믿고 싶어하는 이야기 아닐까.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