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재명에게 닥친 가장 큰 난관

2025.06.16

백악관의 한국 대선 결과 첫 반응에 중국 이례적 언급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4일 국무총리 후보자 등 새 정부 첫인사를 발표하기 위해 용산 대통령실청사 브리핑룸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4일 국무총리 후보자 등 새 정부 첫인사를 발표하기 위해 용산 대통령실청사 브리핑룸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 6월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 앞에 펼쳐질 길은 ‘꽃길’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불법 계엄 이후 6개월간 이어진 정치적 혼란과 극단적 분열을 극복하고 침체된 경제를 끌어올려야 할 막대한 과제가 놓였다.

혼란은 국내에만 있지 않다. 6개월간 이어진 정치적 공백기 동안 대외관계는 숨 가쁘게 변했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후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각국 정상을 만나 면박을 주거나 항공기를 선물 받으며 ‘비즈니스’를 벌이는 가운데, 한국은 협상을 책임지고 이끌거나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화에 나설 ‘머리’가 없었다.

한국의 21대 대통령이 된 이재명에게 닥친 가장 큰 대외적 난관은 분명 트럼프 대통령이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이 대통령 앞에 ‘꽃길’은커녕 ‘불길’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새 대통령-뜨거운 프라이팬에서 불길 속으로’, 차 석좌가 한국 대선 결과와 향후 전망을 분석한 글의 제목이다.

트럼프가 지핀 뜨거운 불길 속으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과 이후 세계 질서가 완전히 달라졌지만, 한국은 그 기간 계엄에서 탄핵, 대선으로 지나는 긴 터널을 통과하느라 변화하는 대외관계에 대응할 여력이 없었다. 차 석좌는 “한국의 정치 위기와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가려졌지만, 한·미동맹에 조용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백악관의 첫 반응은 이전 한·미관계의 온기를 품고 있었지만, 동시에 차가운 냉기와 뜨거운 불씨도 품고 있었다.

지난 6월 4일 백악관은 이 대통령 당선에 대해 “한·미동맹은 여전히 철통같다”고 밝히면서도 갑작스레 중국을 언급했다. 백악관은 “한국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렀다”면서도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국, 그것도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 중 하나인 한국 대선에 대한 첫 반응에서 민감한 지정학적 이슈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가파르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 어디쯤 설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한국에 닥친 큰 난제 중 하나다. 백악관의 이례적인 ‘중국 개입’ 언급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잡힌 관계를 추구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에 대해 견제구를 날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략할 경우 대만을 지원할 것인지 묻는 말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려고 할 때 그 답을 생각해보겠다”며 거리를 두는 답변을 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국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는 “백악관 발언은 한국의 새 대통령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라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미국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도모하려는 국가들을 향해 중국과 거리를 둘 것을 압박하고 나섰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아시아 안보회의)에서 중국 억제가 최우선이라며 동맹국들을 향해 ‘안미경중’(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 기조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6월 4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에선 ‘코리아 패싱’을 연상시킬 법한 장면도 있었다.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반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레빗 대변인은 준비해온 자료에 있을 것이라며 서류를 뒤지다 “없네”라고 말한 뒤 “구해다 주겠다”고 말했다. 한국으로서는 뼈아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정상과의 직접 담판과 개인적 관계 형성을 중요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공백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정치적 혼란기에 있는 한국을 지속적으로 패싱해왔다. 일례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두 차례 아시아 지역 순방에 나서며 한국은 건너뛰었다.

미국의 방위비 인상 압박,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를 지출하겠다고 한 점을 언급하며 “아시아 핵심 동맹들이 북한 등 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국방비를 적게 지출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또한 중국 억제를 대외정책 1순위로 내세우면서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도 검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관세라는 더 큰 불길

미·중 사이의 관계 설정이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라면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경제 침체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 대통령 취임일인 6월 4일, 미국은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한 품목별 관세를 25%에서 50%로 인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까지 주요 교역국에 관세 협상과 관련한 ‘최상의 제안’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는데, 한국 정부는 이를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다.

한국은 현재까지 미국이 부과한 10% 기본 관세, 25% 자동차 관세, 50% 알루미늄·철강 관세 등을 인하하기 위한 진전된 상황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차 석좌는 “90일간의 상호관세(미국은 한국에 25%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유예 기간이 7월 8일 종료되기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임기 초반 가장 중요한 과제인 트럼프와의 협상 타결에 임할 시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미·중 간의 무역전쟁으로 한국의 수출주도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202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 1.5%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내수 침체와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인한 수출 둔화 등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USCIT)이 상호관세에 대해 “권한을 넘어서는 위법”이라며 제동을 걸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추진 동력이 한풀 꺾이는 듯했지만, 항소법원이 법원 판결 효력을 일시 정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교역국을 상대로 더 거센 관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 대통령은 그간 관세 협상과 관련,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는 대선 직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트럼프) 다리 밑이라도 길 수 있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나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미국과의 협상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진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외교는 누가 일방적으로 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그건 약탈이며 조공을 바칠 때나 하는 일”이라며 “주권국들끼리의 외교는 쌍방에게 윈윈, 모두 득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르면 이달 15~17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첫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면박을 당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연상하며 “우리는 카드를 꽤 많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드가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자신 앞에 펼쳐질 트럼프라는 불길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