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미 기병대 몰살시킨 크레이지 호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2025.05.12

큰바위 얼굴 근처에는 이보다 10배나 큰 규모로 원주민 최고의 전사 크레이지 호스 조각이 만들어지고 있다. / 손호철 제공

큰바위 얼굴 근처에는 이보다 10배나 큰 규모로 원주민 최고의 전사 크레이지 호스 조각이 만들어지고 있다. / 손호철 제공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1800㎞를 달려 미 대륙 북서쪽 끝에 있는 시애틀에 도착한 후 다시 기수를 동쪽으로 틀었다. 벌써 1800㎞를 달렸지만, 이번 여정의 15분의 1도 못 달린 것이니 정말 나라가 아니라 대륙이다. 나는 동쪽으로 워싱턴주, 아이다호주를 거쳐 몬태나주 중간을 흐르는 리틀 빅혼이라는 작은 강까지 1600㎞를 1박2일 달렸다. 이 강에는 놀라운 역사가 숨겨져 있다.

“자, 모두 3개 방향으로 공격한다.” 1876년 6월 25일 새벽 미 육군 7기병 연대 소속 3개 중대 268명은 조지 커스터 중령의 명령에 따라 리틀 빅혼강을 건너 원주민 마을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두 개 중대는 좌우에서 공격하고 한 개 중대는 뒤로 돌아가 퇴로를 차단해 원주민을 몰살할 계획이었다. 이 공격은 미국의 원주민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3년 뒤인 1868년 미국은 이 지역 원주민인 라코타족(수족이라고도 부른다)과 샤이엔족 등과 ‘라마리요새 2차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원주민들이 전통적으로 살던 많은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그중 일부인 미주리강 서쪽 다코타 지역을 이들의 영토로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약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약이 보장한 원주민지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백인들이 이 지역에 침입해 채굴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원주민들에게 해당 지역을 팔라고 설득했지만, 원주민들은 그 지역이 성지라며 거절했다.

크레이지 호스 조각이 완성되면 이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 손호철 제공

크레이지 호스 조각이 완성되면 이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 손호철 제공

승리의 역풍…원주민 학살과 고사

라코타족과 샤이엔족 등은 백인들의 지속적인 도발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리틀 빅혼 강가에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 첩보를 입수한 7기병대는 이들을 공격하기로 했다. 특히 원주민들은 밤새 조상들과 교감하는 ‘영혼의 춤’을 추며 의식을 치르고 늦게까지 잠을 자기 때문에 새벽에 기습공격을 하기로 한 것이다.

리틀 빅혼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성조기 아래 하얀 묘비석이 끝없이 이어졌고, 많은 백인이 참배를 하고 있었다. 리틀 빅혼 전투 전사자들이다. 3개 중대 268명 전원이 전설적인 원주민 전사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등의 활약으로 몰살당한 것이다.

“아니 원주민들이 미 기병대를 몰살시켰어!” 묘지로부터 멀지 않은 전투 현장에 서자 답사 준비 중 처음 이 전투를 접하고 느꼈던 충격이 되살아났다. 미국의 서부 개척 하면 미 기병대들이 무기 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원주민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한 것으로만 알고 있던 나는 답사를 준비로 자료를 찾다 이 전투에 대해 읽고 깜짝 놀랐다. 놀란 정도가 아니라 신이 났다. 현장에 세워진 안내판은 고지로 후퇴한 기병대를 포위해 올라오고 있는 원주민들을 그려 놓았다.

비극적인 것은 승리의 결과다. 기병대의 참패에 놀란 백인들은 원주민들의 전투력을 다시 평가하게 됐고, 이 같은 위협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적극적인 원주민 학살, 고사작전에 들어간다. 운디드니 학살(1890)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기병대들은 전투에 참가했던 라코타족, 샤이언족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에 들어가 일부는 캐나다 쪽으로 도주했다. 1877년 5월 크레이지 호스는 부족들을 구하기 위해 자수했다. 그러나 4개월 뒤 기병대 병사에 의해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리틀 빅혼에서 동남쪽으로 300여㎞를 달리다 보면 데블스타워라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기가 막힌 바위산이 나타난다. 다시 여기서 180㎞를 달려가면 그 유명한 러시모어산 국립기념물이다. 이 산에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미국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엄청나게 큰 크기(길이 18m)로 새겨져 있다. 하지만 나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다.

“조상들이 묻혀 있는 모든 곳이 우리 땅이다”

나는 공원 입구에서 ‘큰바위 얼굴’을 간단하게 찍고 다시 30분을 달려갔다. 그러자 블랙힐스의 바위산에 정말 거대한 얼굴 조각이 나타났다. 아직 건설 중이지만 높이가 러시모어 큰바위 얼굴의 10배에 달하는 172m, 길이가 192m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다. 이 조각은 바로 리틀 빅혼 전투의 주인공이자 ‘원주민 역사상 가장 용맹스러운 전사’로 알려진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이다. 1948년 의식 있는 한 조각가가 시작한 이 조각은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순수한 모금에 의해 건설되고 있다. 근 80년이 지난 2024년 현재 얼굴 전면과 손이 완성됐고, 2037년까지는 팔 등 상반신과 말의 머리 정도가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말을 탄 그의 전신 조각이 끝나려면 얼마가 더 걸릴지 모른다.

큰바위 얼굴 근처에는 이보다 10배나 큰 규모로 원주민 최고의 전사 크레이지 호스 조각이 만들어지고 있다. 손호철 제공

큰바위 얼굴 근처에는 이보다 10배나 큰 규모로 원주민 최고의 전사 크레이지 호스 조각이 만들어지고 있다. 손호철 제공

원주민들의 구전에 따르면, 크레이지 호스는 1841년 사우스다코타 블랙힐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얼굴과 머리카락 색이 밝고 곱슬머리를 해 ‘곱슬머리’로 불리다가 1858년 첫 전투에서 용맹을 보여 아버지의 이름인 ‘크레이지 호스’를 물려받았다. 영혼을 찾기 위한 단식에서 전투에 나가기 전 말 위에 먼지를 뿌리고 귀밑에 돌을 매달라는 계시를 받아 이후 이를 따랐다.

성인이 된 1866년 그는 자신들의 영토를 침범한 백인기병대 80명을 유인해 몰살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다음 해에는 백인 요새 공격에도 참여했다. 1868년 백인들에게 더 많은 영토를 양보한 제2차 조약에 서명했지만, 크레이지 호스는 이에 불만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행동했다. 이후 1876년 리틀 빅혼강 근처에서 벌어진 로즈버드 전투에 참여해 기병대 중 일부가 리틀 빅혼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게 발목을 묶었고, 1주일 뒤에는 리틀 빅혼 전투에서 가장 용감하게 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전이라는 전달 수단의 한계 탓도 있겠지만, 그의 이야기는 ‘원주민 최고의 전사’라는 명성에 비하면 소박하다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는 유럽의 거짓 약속과 압도적 군사력에 속절없이 짓밟히면서도 자신들의 문명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저항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조각은 그의 일화에 의해 팔을 뻗어 먼 곳을 가리키고 있다. 너희들의 땅은 어디 갔느냐는 한 백인의 질문에 대해 그는 먼 곳을 가르키며 말했다. “우리 조상들이 묻혀 있는 모든 곳이 우리의 땅이다.”

러시모어 공원에 만들어진 미국 대통령 4명의 큰바위 얼굴 / 손호철 제공

러시모어 공원에 만들어진 미국 대통령 4명의 큰바위 얼굴 / 손호철 제공

지역 원주민들이 성지로 모셨던 데블스타워 / 손호철 제공

지역 원주민들이 성지로 모셨던 데블스타워 / 손호철 제공

동물 가죽에 리틀 빅혼 전투를 그린 원주민 역사책이 워싱턴 인디언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손호철 제공

동물 가죽에 리틀 빅혼 전투를 그린 원주민 역사책이 워싱턴 인디언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손호철 제공

리틀 빅혼 전투 현장에는 당시 상황을 그려놓은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 손호철 제공

리틀 빅혼 전투 현장에는 당시 상황을 그려놓은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 손호철 제공

리틀 빅혼 전투에서 원주민들에게 몰살당한 미 기병대의 묘지 / 손호철 제공

리틀 빅혼 전투에서 원주민들에게 몰살당한 미 기병대의 묘지 / 손호철 제공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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