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2021고단286호, 피고인 A에 대한 근로기준법 제40조 위반 혐의 심문을 시작합니다. 검사님, 공소사실 진술해 주시죠.”
검사 “피고인은 헬스클럽 대표입니다. 해고된 트레이너 B를 겨냥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영상엔 B가 등장하고, 그 아래엔 ‘C’, ‘이런 사람 채용하지 마세요’라는 문구, 그리고 해시태그(#)까지 걸어 지역 헬스장 대표들이 볼 수 있도록 배포했습니다. 취업 방해 목적의 통신 행위로서 근로기준법 제40조 위반에 해당합니다.”
재판장 “변호인, 변론하세요.”
변호인 “네. 재판장님. 피고인은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개인 SNS에 글을 올린 것입니다. 실명은 언급하지 않았고, 특정인을 공격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취업을 방해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무죄판결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재판장 “그러나 피고인의 글엔 ‘이런 사람 채용하지 말라’는 직접적인 문구가 있었고, ‘피해자의 스승이 누구다’, ‘주변 분들은 다 아신다’는 식의 언급도 있었습니다. 피해자 이름이 없어도 업계 사람이라면 충분히 특정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취업 방해 목적으로 통신한 사실이 인정됩니다. 피고인을 벌금 200만원에 처합니다.”
“이런 사람 채용하지 마세요”
위 사건은 임금 체불로 갈등이 있었던 근로자에 대해 SNS에 알 만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표시하면서 “이런 사람 채용하지 마세요”라고 명시한 글이 문제가 됐습니다. 취업방해죄라고 하는 근로기준법 제40조 위반 사건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자사 근로자 D가 타 화장품회사로 취업하는 것을 알게 되자 “근로자 D를 쓰지 마라. 쓰면 가만있지 않겠다. 너희가 계획하고 사람을 빼갔다”라고 한 통의 전화를 한 사건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2014고정1932). ‘E를 채용하지 말아 달라’라는 취지의 내용으로 다른 택시회사 이사와 통화한 경우도 유죄(벌금 300만원)였습니다(2019노497).
이렇게 사업주가 특정 근로자에 대해 ‘이런 사람 채용하지 마세요’라는 식으로 취업을 막는 행위는 근로기준법상 ‘취업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40조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취업 방해 목적으로 ‘통신만’ 해도 처벌되고, 비밀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는 경우만도 처벌됩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경우를 처벌하려는 것이 위 조항의 주된 목적입니다(2018고합557: 대법원 2020도11559 확정).
일찍이 1970년대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면서 해직된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의 재취업을 막는 등의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인정되고, 1500만원의 손해배상이 인정된 사례가 있습니다(2020다205455). 최근에는 기업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2021년의 마켓컬리 물류센터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일부 현장 관리자가 약 500명에 달하는 계약직·일용직 근로자 명단을 작성했고, 이 명단이 “성과가 저조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구분하는 데 활용됐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일부 근로자들은 해당 명단으로 인해 재계약되지 않았고, 외부 인력업체와의 정보 공유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이에 대해 마켓컬리 본사는 현장 관리자 일부의 자의적인 판단이었고, 본사 차원의 개입은 없었으며, “자사 내부에서만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변호를 했습니다. 해당 사건은 결국 취업 방해의 고의성과 외부 유포의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됐습니다.
2024년 초,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약 1만6450명의 근로자 이름이 포함된 내부 명단이 존재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명단에는 근무 태도나 성과, 문제 제기 여부 등이 기준으로 기록됐고, 이 명단이 재고용 여부에 영향을 주었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근로자들은 이 명단이 사실상 ‘취업 방해 목적의 블랙리스트’로 기능했다고 주장하며 근로기준법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쿠팡과 경영진을 고발했습니다. 반면 쿠팡 측은 명단은 단지 내부 인력 운영 자료일 뿐이라며, 회사 내부 자료를 유출한 이들을 명예훼손 및 영업비밀 누설로 맞고소했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수사와 행정조치가 진행 중이고, 국정감사에서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2025년에는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더본코리아 산하 ‘새마을 식당’ 점주 전용 온라인 카페에 ‘직원 블랙리스트’라는 게시판이 존재하고, 일부 점주가 경험한 문제 직원의 신상 정보와 사례가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더본코리아 측은 한 명의 직원 사례만 공유한 것이며, 특정 개인을 식별하기 어렵고 명단 전체를 작성한 것도 아니므로 법 위반 소지는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앞선 사례에서 보듯이 한 명에 대해 성립하는 사례도 있고, 법상으로는 명부에 포함된 인원수가 아니라 취업 방해 목적 여부가 중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회사가 오죽하면 그럴까’라는 의견도 있고, 인사팀의 다른 대안도 딱히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블랙리스트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고, 법이 엄중하니 회사 차원에서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블랙 기업 구인방해죄
‘CEO는 회사경영에 관심이 없음’, ‘보고체계가 경영진의 기분에 따라 바뀌어 알려주지도 않음’, ‘일 잘하는 사람보다 남 까 내리고 아부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음’ 이런 내용이 국내 최대 회원을 보유한 구인·구직 중개 플랫폼에 올라오면 기업 입장에서는 굉장히 곤란할 것입니다. 해당 기업(갑)이 구인·구직 플랫폼 회사(을)에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갑 기업의 플랫폼 회사에 대한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문제가 된 표현들(예: CEO는 회사경영에 관심 없음 등)은 객관적 사실 적시가 아닌 주관적 의견 또는 가치 판단으로 평가되고, 장점도 함께 기재돼 있고, 전직 직원의 경험에 기반한 평가로 보이며, 피고(을)는 기업회원에게 알림·댓글 기능, 신고 버튼, 삭제 요청 절차 등을 제공하고 있고, 실제로 문제 된 게시물은 피고가 사후 삭제했다’는 이유였습니다(서울중앙지법 2022가단5293022).
“F 대표 선고 공판이 있습니다. 취업 구직자의 면접비 20만원 등 금품갈취로 인해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로 고소가 됐던 F 대표의 최종 선고가 있습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아래에 나와 있는 날짜에 선고가 있을 예정이오니 참고 바랍니다.(방청 가능)” 이렇게 구직자가 취업 게시판에 게시한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이 사건은 1심에서 유죄(벌금 300만원·집행유예 1년)였으나, 항소심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원은 ①채용과 관련된 범죄사실로 형사재판을 받는다는 것은 순수한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②게시한 글에 드러난 정보가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고, 인신공격적 표현 등은 사용되지 않은 점 ③F 대표가 입사 지원자들로부터 금원을 받은 것은 명백한 사실로서,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어느 정도 자초한 측면이 있는 점 등을 이유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봤습니다(서울동부지법 2022노365).
현행법상 취업방해죄는 있어도, 구인방해죄는 없습니다. 법원도 구직자들이 공유하는 블랙 기업 정보는 표현의 자유와 정보 공유의 측면을 더 높게 사는 것 같습니다. 다만 구직자들의 정보 공유도 정확한 사실에 기반해야 하고, 악의적인 목적으로 허위 정보를 유포할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새겨봐야겠습니다.
<한용현 변호사 lawyer_h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