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아프리카인…‘짐바브웨 영웅’ 코번트리 세계스포츠 대통령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131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위원장이 탄생했다. 유럽·미국 출신이 아닌 첫 위원장이다. 게다가 역대 최연소다. 주인공은 커스티 코번트리(41·짐바브웨)다.
코번트리는 지난 3월 20일 그리스에서 열린 제144차 IOC 총회에서 제10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6월 부임할 코번트리 임기는 2033년까지 8년이다. 한 차례 4년 더 연장할 수 있어 최장 임기는 12년이다.
코번트리는 1차 투표에서 전체 97표 중 당선에 필요한 과반인 49표를 얻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주니어(65·스페인) IOC 부위원장은 28표를, 강력한 경쟁자로 거론된 세바스티안 코 세계육상연맹 회장(68·영국)은 8표를 얻는 데 그쳤다. 코번트리는 “여러분이 내린 결정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다”며 “여러분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앞선 IOC 위원장 9명은 모두 남성이었다. 8명은 유럽, 1명은 미국 출신이다. 토마스 바흐 현 위원장은 “우리가 진정으로 글로벌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순간”이라며 “여성, 아프리카 출신 위원장의 등장은 올림픽에서 다양성과 성평등 가치를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수영선수 출신이자 정치인·국제 스포츠 행정가
코번트리는 1983년 9월 16일생이다. 그는 미국 오번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짐바브웨 출신 전직 수영선수이자 정치인, 국제 스포츠 행정가다. 선수 시절 총 7개 올림픽 메달(금 2·은 4·동 1)을 따내 짐바브웨 국민에게 큰 자긍심을 안겼다. 은퇴 후에는 IOC와 자국 정부에서 중책을 맡았다. 그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을 수확했다. 배영 200m 세계기록을 세워 ‘아프리카 인어’로 불렸다. 2013년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고, 2018년부터 IOC 선수위원장을 맡았다. 일부 선수들은 그가 바흐 위원장 정책 노선을 지나치게 따랐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짐바브웨는 오랫동안 민주주의 탄압과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 제재 대상국이다. 고(故)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 시절, 코번트리는 ‘짐바브웨 황금 소녀’로 불리며 국가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무가베 정권은 백인 농장 강제 몰수와 경제 파탄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됐지만, 코번트리는 인종과 계층을 초월해 국민적 자긍심의 상징이 됐다. 코번트리는 무가베가 축출된 2017년 군사 쿠데타 이후 후임 정부에서 장관이 됐다. 당시 34세인 코번트리의 등장은 정치 경험이 부족한 백인이라는 점에서 논란을 낳았지만, 동시에 신선한 변화로도 받아들여졌다. 장관 재임 중에도 짐바브웨 스포츠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아프리카축구연맹(CAF)은 2020년부터 짐바브웨 경기장들이 기준 미달이라며 국제경기 개최를 금지했고, 그 여파로 짐바브웨 축구대표팀은 지금도 다른 나라에서 ‘홈경기’를 치른다. 2022년에는 정부 개입을 이유로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코번트리가 저소득층이 주로 참여하는 축구 등 대중적인 스포츠보다 수영, 럭비, 크리켓 등 상류층 중심 스포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코번트리는 여성 스포츠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천명했다. 짐바브웨 체육부 장관 시절 성희롱 의혹이 제기된 축구협회 이사회를 전격 해임한 경험이 있다. 그는 “여성 카테고리와 스포츠 보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파리올림픽 복싱에서 이마네 켈리프와 린유팅이 금메달을 따내면서 성별 기준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트랜스젠더 여성 출전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코번트리는 “성발달 차이(DSD) 조건을 가진 선수에 대한 과학적 기준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러시아올림픽 귀환·트럼프와 관계 개선 주목
러시아가 국제스포츠계로 귀환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현재 IOC는 러시아 올림픽위원회를 자격 정지시킨 상태다. 코번트리는 국가 전체를 배제하는 방식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현재 일부 러시아 선수들은 중립국 소속으로만 국제대회 출전이 가능하다.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2026년 2월)에서 이 제한이 유지될지, 풀릴지 관심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코번트리의 위원장 선출은 세계 스포츠계의 높은 권위를 입증하며, 탁월한 개인적 성취에 대한 국제적 인정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코번트리가 새로운 역할에서도 성공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앞서 러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코번트리가 만일 신임 위원장이 될 경우 러시아의 올림픽 참여를 재개할 수 있도록 전향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도 주요 과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국제대회에 특정 국가 선수의 입국을 제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코번트리는 “20대 때부터 ‘까다로운 남성 권력자’들과 일해왔다”며 “내가 배운 건 소통이 핵심이라는 점”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2026년 월드컵 공동 개최국 중 한 곳이 미국이다. 2028년 올림픽 개최지는 LA다.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도 있다. 2036년 올림픽 개최지 결정이다. 인도, 카타르, 튀르키예, 한국 등 여러 국가가 의지를 드러냈다. 현재는 인도와 서남아시아(중동) 간 2파전 양상이다. 코번트리가 바흐 체제가 추진해온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 방식’을 유지할까. 이게 유지된다면 아시아 최고 부호 무케시 암바니 가족과 가까운 코번트리가 인도에 힘을 실을 수 있다.
지구온난화는 올림픽 일정과 개최지 선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번트리는 “하계·동계 올림픽 모두 일정에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선 무더위를 피해 마라톤이 삿포로에서 열렸다. 바흐 위원장은 “지금처럼 덥다면 하계올림픽을 8월에 치를 수 없는 곳이 늘어날 것”이라며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2030년 프랑스 알프스처럼 지역 분산 개최 방식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미국 NBC는 최근 IOC와 2036년까지 4년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30억달러를 투자했다. 영국 가디언은 “코번트리는 향후 8년간 인도, 사우디 등에서 신규 톱티어 스폰서를 유치하고, 젊은 세대와의 연결 고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