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계수 역대 최저…자영업자 퇴출·채무자 증가 등 현실과 괴리
지난해 지니계수가 떨어졌다. 그것도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관련 수치가 ‘0’에 가까울수록 평등에 가까워짐을 의미하는 지니계수가 낮아졌다는 건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이 개선됐다는 뜻이다. 매일 수많은 자영업자가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채권추심을 받는 채무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웬 헛소리냐고? 지표가 좋게 나와도 대중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완화되고 있는 소득분배지표는 물론, 계속 벌어지는 자산 불평등도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키운다. 지표와 체감 간의 틈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실제 통계는 제대로 작성된 게 맞을까.
소득분배지표 완화 발표에도 불신 깊어
지난해 12월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가금복·2023년 소득분)가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가계소득 분배 상황을 보여주는 지니계수(처분가능소득 기준)는 2022년 0.324에서 2023년 0.323으로 줄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상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을 하위 20%의 평균 소득으로 나눈 값인 소득 5분위 배율(처분가능소득 기준)도 지난해 5.72배로 전년보다 0.04배포인트 줄었다. 이 역시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낮다.
지니계수가 떨어진다는 건, 제일 많이 버는 사람의 소득과 가장 적게 버는 사람 소득 간 차이가 축소되고 있다는 의미다. 불평등 연구에 정통한 익명의 전문가는 “2010년 이후부터 가금복을 비롯한 여러 지표상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는 추세가 지속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는 대중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실 인식과 괴리가 커 노골적인 반감을 사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해 발표된 논문 ‘20년간 한국의 소득 불평등과 이동성’(장용성 서울대 교수와 한종석 아주대 교수 저)은 지난 20년간 상·하위 10% 백분위수 비율인 10분위 배율로 분석한 소득불평등도가 27.4% 하락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러한 논문이 언론에 보도되자 신뢰도에 의문을 품는 여론이 나타났고, 결국 이 논문은 끝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정인관 숭실대 교수는 “객관적 지표가 나쁘지 않더라도 성장 동력이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며 앞으로 10~20년 뒤가 불안한 상황에서 불평등 완화 지표가 사람들의 공감을 못 사고 있다”며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수치가 오히려 안 좋게 나오는 게 맘이 편할 만큼 불평등이 완화됐다는 사실을 (일반 대중에) 설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지니계수 기준 한국의 소득 불평등도가 캐나다·호주보다 높고, 일본·미국·영국보다는 낮은 수준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빈부 격차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국민 인식이 여전히 높다며, 정부가 불평등 해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층과 최하층만의 변화…중산층은요?
지표와 인식 간의 괴리는, 실제 불평등 완화가 최상층과 최하층의 소득이 조정되며 이뤄진 결과물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간층 소득이 체감 가능할 정도로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 전체의 불평등 분포만 개선됐을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이후 계속된 복지 확대로 공적이전소득이 커지면서 하위계층의 소득은 확대됐다. 공적이전소득이란 공적연금(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양육수당, 장애수당 등 정부에서 개인으로 이전된 모든 복지 소득을 의미한다.
2024년 가금복에 따르면 2023년 공적이전소득은 소득 1분위(하위 10%)에서 596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10.7% 오른 수치다. 소득 1분위의 공적이전소득은 코로나19로 갑자기 큰 폭으로 확대된 직후 주춤해졌던 2022~2023년을 제외하고 2012년(귀속연도) 이래 꾸준히 전년 대비 4~20%가량 커졌다. 공적이전소득 등이 늘면서 소득 1분위의 2023년 전체 소득은 전년 대비 6.8% 증가한 1019만원을 기록했다. 5년 전인 2018년과 비교하면 35.8% 이상 많아진 것이다.
반대로 10분위(상위 10%)는 경기 둔화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사업소득’이 예전만큼 많이 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사업소득은 2023년 각각 3756만원으로 코로나19 전인 2018년(3575만원)보다 낮은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물론 근로소득이 같은 기간 2496만원 늘며 전체 소득은 21% 올랐지만, 그 증가폭은 1분위(36.1%)에 한참 못 미친다. 5분위 역시 전체소득은 같은 기간 22.1% 상승에 그쳤다.
연구자들은 가금복 지니계수 자체도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니계수는 불평등의 전반적 분포를 보여주는 자료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는 “지니계수는 전 계층의 소득분배를 한가지 숫자로 드러내기 때문에 특정 계층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지 못한다”라며 “세부 데이터로 연구해보면 중간층과 하위층은 격차가 좁아지고 중간층과 상위 계층 간 거리는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산층으로선 자신의 처지를 고소득층에 비교하기 쉬운데, 여기서 불평등을 더 체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벌어지는 자산 불평등도 전반적인 불평등 인식을 악화시킨다. 정인관 교수는 “한국에서 불평등을 인식할 때는 소득보다 자산 효과가 더 크다”며 “돈을 모아서 집을 살 수 없는 시대에 체감하는 불평등 완화 정도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상위층, 조사에서 수두룩 빠진다
불평등 조사 자체가 가진 한계도 있다. 지금으로서 불평등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조사는 소득과 자산을 모두 산출하는 가금복이다. 이 조사는 매년 전국 2만여개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하며,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득분배 지표를 산출한다. 이 조사는 한 번 개선책이 나오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당초 응답자가 답을 적는 설문조사 형식에서, 행정자료로 보완 작업을 거치도록 해 정확도를 끌어올린 것이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 부분에서는 그 전의 설문 조사상으로 생겼던 샘플링 오류를 대부분 제거했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상위층이 과소대표될 가능성에 대해선 우려가 나온다. 대표적인 게 금융소득(배당+이자)이다. 김낙년 전 동국대 교수(현 한국학중앙연구원장)가 2016년 소득자료로 분석한 데 따르면 금융소득 부분은 2만6850가구가 2865만명을 대표하고 있었다. 김 전 교수는 논문에서 “최상층의 금융 소득자가 조사 대상에서 많이 빠져 있다”며 “조사대상 가구로 선정된 경우에는 행정자료 보정이 유효하지만, 누락이 많아 대표성을 갖지 못한 경우에는 행정자료로 바로잡아도 정확성을 높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유종성 연세대 한국불평등연구랩 소장 겸 행정학과 교수도 유사한 연구 결과를 낸 적이 있다. 그는 2021년 귀속자료를 토대로 개인소득 분포를 국세청과 가금복 간 비교했다. 그 결과 근로소득을 포함해 사업소득, 재산소득 등 다양한 소득이 고소득층에서 과소대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 소장은 “2021년 자료만 놓고 보면 고소득층 조사 샘플링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금복의 자산 조사는 소득 부분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행정자료로의 보완이 잘 안 되면서 설문조사 응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금융자산은 금융실명법 적용 때문에 행정 자료를 갖고 오는 데 한계가 있고, 부동산 자산은 실제 거래가격과 공시가 개념 차이 때문에 행정자료로 대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연구자들에 따르면 가금복 조사에서 응답자가 적는 부동산 자산 수치는 한국은행의 주택자산 조사와 비교했을 때 차이가 크지 않은 편이다. 문제는 금융자산이다. 김 전 교수가 소득자본화 방식으로 소득구간별 금융자산을 추정한 결과에 따르면, 연소득 5억원 이상의 최상위 소득구간에서 가금복이 파악한 금융자산은 전체의 2%에 불과했다.
노르웨이 같은 통계는 우리에겐 ‘꿈’
이 때문에 불평등 지표에 대한 신뢰를 끌어올리기 위해 가금복의 지속적 개선, 혹은 이를 대체할 만한 통계자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르웨이가 통계청을 통해 제공하는 ‘가계 소득 및 재산 통계’는 과세 대상 소득과 비과세 소득, 자산과 부채를 모두 포함한다. 주거용 주택과 상업용 부동산 등은 시장가격으로 반영되고, 일부 실물자산은 과세가격으로 매겨진다. 금융자산은 시장 가치에 맞게끔 조정을 거쳐 통계에 반영된다. 여기서 특이점은 노르웨이 통계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모든 가구의 소득·재산 수준과 구성 등을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자산 격차 정보를 공개하기 위해 한국과 같은 10분위 배율뿐만 아니라 상위 0.1%, 1%, 5%가 점유한 부가 얼마나 되는지도 공유한다.
일각에선 노르웨이와 같은 조사를 당장 시작할 수 없다면, 올해 100주년을 맞은 인구주택총조사에서라도 자산과 소득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인구주택총조사는 한국에 사는 모든 내외국인과 그들의 거처 등을 파악하는 전수조사로 5년마다 실시한다. 최 위원은 “주택보유 여부뿐만 아니라 각 부처가 갖고 있는 소득, 사회보장 데이터들을 전수조사하면 불평등 연구의 정확도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자산과 소득까지 전수조사를 하려면 광범위한 개인정보 공유 동의가 필요하다.
입법 연구기관 공익허브가 2024년 7월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통계작성 목적의 자산 정보 수집에 대해 대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통계청이 실물자산의 소유현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86.4%가 찬성했고, 금융자산 관련 정보 수집에 대해서도 74.8%가 찬성했다. 실물자산과 금융자산에 대한 정보수집에 모두 찬성한 비율은 71.4%에 달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