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2023년 1월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정부·여권 반발로 철회한 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여가부 직원들을 감찰 조사했다는 경향신문 보도가 나왔다. 그 뒤 여가부 직원들로부터 상반된 반응을 들었다.
대변인실과 고위 관료들은 방어하기 바빴다. 감찰 이후 김종미 전 여성정책국장과 담당 과장이 서면 경고·주의 처분을 받은 건 “민감하고 중요한 사항을 상세하게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탓했다. 장관이 공석인 지난 1년 동안 저출생 등 가족 정책엔 힘을 싣고 성평등 정책은 사후약방문식으로 대응했단 보도엔 억울해했다. “오히려 이 보도로 직원들 사기가 떨어진다”라고 했다.
사기 저하를 운운한 이들과 달리 여가부 직원들은 2년 뒤에야 드러난 감찰 사실에 어처구니없어했다. ‘무슨 이런 거로 감찰을 하느냐’, ‘장·차관이 보고를 못 받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등 반응이 나왔다. 내부 직원을 보호하기보다 꼬리 자르기에 바빴던 당시 장·차관에 대한 분노도 들렸다.
기사가 나오고 며칠 뒤에 만난 국회 관계자는 “정부가 바뀌면 여가부가 조금 달라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손쉽게 “그렇겠죠”라고 답하지 못했다. 정권이 교체돼도 부처들 사이에 끼인 작은 부처가 어떤 압박 없이 성평등 정책을 주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언제나 ‘대의’ 앞에선 성평등 따윈 뒷전이었으니까.
또렷이 기억한다. 지난 대선 기간 민주당을 출입하며 이재명 대표가 대선후보 시절 보였던 반페미니즘 행보를 지켜봤다.
2021년 11월 10일 이 후보는 ‘홍카단’(홍준표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지지자)이라고 밝힌 작성자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쓴 ‘이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야 한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이틀 전인 8일에는 ‘2030 남자들이 펨코(에펨코리아)에 모여서 홍(준표)을 지지한 이유’라는 딴지일보 게시글을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공유했다. 이 글에는 이 후보가 2030 남성의 표심을 얻기 위해선 페미니즘 정책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해 12월 초청 강연차 서울대를 찾은 이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년들에게 “다 했죠?”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닷페이스’ 출연 일정을 잡았다가 한 차례 번복해 논란이 됐다.
그런데도 2030 여성들은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이 후보를 찍었다. 그 배경엔 당시 선대위가 영입한 ‘추적단 불꽃’ 활동가 박지현씨가 있었다. 박씨가 이 후보와 함께 유세를 다니며 국민의힘의 성차별 정책을 비판하자 2030 여성들이 모였다. 민주당은 성평등 의제에 목소리 내온 여성 인사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성평등을 지향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수록 두렵다. 선악 구도로 치러질 것이 분명한 선거판에서 정권 교체 ‘대의’ 앞에 이번에도 성평등은 뒷전이 될까봐. 지금도 그럴 조짐이 보인다. 현역 민주당 의원이 “차별금지법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라고 당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실용’을 위해, ‘먹고사니즘’을 위해 성평등은 잠시 미뤄두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정치세력이 감히 ‘선’의 위치를 차지하도록 놔두는 게 맞을까.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